새 출발(1): 예수의 좋은 병사로 시작하십시오 

딤후 2:3-4


 

지난 주까지 요한계시록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일곱 가지 인을 통해 앞으로 세상에서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계획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도전만 남습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어떻게 새롭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과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 출발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8월 한 달 동안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실 새 출발이란 의미는 오늘 본문의 디모데에게도 관련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28:16, 30절에 의하면 바울은 1차로 로마에서 수감이 됩니다. 그때는 어느 정도 자유가 허용 되었습니다. 2년이 지나 석방이 되고 스페인 전도도 마치게 됩니다.

 

그 이후 다시 2차로 수감이 됩니다. 딤후 1:162:9절을 보면 1차 때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감옥에서 죄수와 같은 취급을 받아 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서신을 쓰고 곧 순교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바울은 디메데를 아들과 같이 대해 주었습니다. 이제 디모데에게는 홀로 서야만 하는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늘 힘이 되었던 바울입니다. 경험도 없고 나이 어린 자신을 위대한 사도의 동역자라 불러주었고 늘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위해 홀로 서야 했고 달려가야만 합니다. 이런 출발을 하게 될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애틋함과 조언이 담겨 있는 서신이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은 3절 상반부에서 그리스도의 병사라는 말을 합니다. 그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도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현실을 앞에 둔 디모데에게 군사 비유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힘든 환경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라는 믿음을 가지고 힘을 내기 바랍니다

 

3절 하반부는 좋은 병사의 첫째 덕목은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이라 말합니다. 세상은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여전히 미워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복음을 위해 살면 시대에 따라 강도와 방법은 다를지 모르지만, 고난은 늘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늘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성도에게 고난을 함께 받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본래 의도는 고난만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군인들은 먹고 자고 모든 것을 함께 생활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병사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세 가지를 함께 해야 합니다.

 

첫째, 사도행전을 보면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함께 해야 할 영역들을 초대교회를 통해 잘 말해 줍니다. 예배, 교육, 전도와 선교, 구제와 봉사, 친교의 영역들입니다. 이 다섯 가지 영역들은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사역이기에 온 성도가 함께 해야 합니다.  

 

둘째, 성도가 함께 할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각 교회의 사명입니다. 코넬한인교회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 이루기 위해서 1)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2) 계속 훈련 받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3) 삶의 현장인 가정과 직장과 학교로 나가 복음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성도는 우리 교회가 직면한 과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일을 모두 함께 해결하며 45년을 지내왔습니다. 우리에게 직면한 과제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앞으로 수년 내에 안정적인 예배 처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온 성도가 함께 기도하며 풀어갈 줄 믿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4절 상반부를 보면, 하나님의 좋은 군사의 두 번째 덕목이 나타납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생활은 생계를 이어가는 일에서부터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군인에게 자기 생활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일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을 우리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될까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자기 생활과 단절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된 성도는 자신의 신분을 잊게 만드는 개인적인 삶을 단호히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성경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없다면 곤란하겠지요. 성도라면 누구든지 매일 기도와 성경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겨 나갈 때 해야 할 예배, 기도, 말씀 묵상 등이 멈추어 설 정도라면 자기생활에 얽매여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스스로가 무엇에 빠져있는지를 생각나게 만드실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가 자기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 일은 선하고, 교회 일은 거룩하고, 직장, 학교, 가정 일은 다 나쁘고 악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에도 관여하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의 일상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중요한 삶의 일부입니다. 이것 역시 하찮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상이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될 때 위험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 하반부를 보면, 성도가 자신의 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기쁘게 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나를 병사로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내가 좋으면 하나님도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만 내가 즐거운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일에 얽매이지 않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주님을 따르고 있는 가정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이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 자기 일에 얽매이지 않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를 부른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까?’ 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바울 사도가 살던 당시 로마 사회를 알아야 합니다. 그때 병사들을 모집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심지어 그들의 가정까지도 책임져 주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부른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뿐인 독생자를 내어주시며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영광된 자리를 버리고 인간이 되었습니다. 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수치스럽고 모멸감을 받는 십자자형이었습니다.

 

성령님은 가장 부패하고 거짓된 우리 속에 들어와 내주 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배신하고 따르기를 거부하는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좌절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격려하시고, 주저 앉은 저와 여러분을 날마다 일으켜 세우십니다. 다시 주를 바라보게 하시고 주의 일을 하도록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은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자신의 일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내 것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좋은 주님의 병사가 되어, 새롭게 가을을 향해 출발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