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읽는 시대(4): 넷째 인 

6:7-8

 


요한 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재앙들을 일곱 개씩 세 세트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소개합니다. 첫 인을 뗄 때 영적 혼란을 가져오는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인은 앞서 일어난 혼란으로 인해 전쟁이 찾아옵니다. 셋째 인은 전쟁 후에 이어지는 기근을 말합니다.  

 

오늘은 네 번째 인을 떼는 모습을 계6:7절에서 보게 됩니다. 이어서 8절을 보면 청황색 말이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흰말, 붉은 말, 검정말인데 이번에는 혼합색인 청황색입니다. 공동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푸르스름한으로 번역합니다. 대부분 영어성경은 창백한으로 번역합니다.  

 

색깔만으로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탄 자의 이름을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죽음의 색깔을 가진 청황색 말은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그것으로 인한 공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네 번째 인이 떼어질 때 무엇으로 사람들을 죽이거나 고통 받게 하느냐입니다. 특이한 사항은 흰 말 탄 자는 화살을, 붉은 말 탄 자는 큰 칼을 그리고 검은 말 탄 자는 저울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네 번째 말 탄 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14:21절이 잘 보여주듯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은 하나님이 구약에서 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던 세트입니다. 그런데 계6:8절 하반부를 다시 보면 그들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고 말씀합니다. 네 가지 재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그들은 앞에 나온 말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구약에서처럼 칼과 기근과 짐승도 나오는데 전염병이나 온역이란 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여기 사용된 헬라어 사망온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현대인의 성경은 질병으로 번역합니다.

 

그리고 영어 성경NIV NASB는 좀더 구체적으로 역병’(plague, pestilence)으로 번역합니다. 결론적으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계6:8절 상반부에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라는 말씀 가운데 음부역시 죽음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계6:8절 상반부를 다시 보면 청황색 말을 탄 사람의 이름은 사망이니 온역으로 많은 사람에게 죽음이 임하더라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먼저 흰 말 이후 혼란으로 인해 전쟁이 발생하고(),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각종 질병이 찾아오는(청황) 자연스런 현상인 것입니다

 

4주 동안 재앙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산다는 인식이 확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14세기 때 흑사병으로 칠천만 명이나 죽고,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스페인 독감으로 최대 오천만 명이나 죽었을 때도, 말세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지금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전세계적으로 사망자가 육백만 명을 넘긴 하지만, 그 숫자 가지고는 아직은 말세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으신지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이미 마지막 때는 시작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6:8절 하반부를 보면, 청황색 말이 나타나면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전체 땅의 1/4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보면 너무나 무서운 현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더 심화되어서 계8:7절에는 땅의 1/3이 해를 입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남은 3/4의 땅이 다시 1/3의 해를 입게 되면 결국 절반 정도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남게 됩니다. 이것은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놓이게 된다고 보아야겠지요. 더 놀라운 것은 계 16:3절에 둘째 대접 재앙입니다.

 

바다가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의 재앙은 인에서 나팔 그리고 대접으로 갈 때 점점 심화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놓이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종말에 대한 인식을 지금이라도 확실히 갖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바라보며 이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 가야겠다는 결단이 서야 합니다. 이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가장 먼저 끝까지 나를 힘들게 만들려고 하는 사탄의 계략을 무력화 시켜 주는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살전 5:16-18).

 

모든 것이 주님의 주권적 통제하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온다 해도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해 주십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이 허락하시는 기쁨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힘들어질 수록 더 힘 주시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영역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건이 내 눈에 보이고 들릴 때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로 기도제목을 듣고 나중에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듣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은 당연히 범사에 감사가 있는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감사는 제로(0) 감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안 되도 없어도 감사하고, 잘 되면 더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는 끝이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승리입니다. 낙원입니다. 영생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허락하신 구원 때문에 가능합니다. 주님은 죄 가운데 빠져 허덕이는 저와 여러분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심판과 사망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고난을 감당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구원의 감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영원한 사망의 불 가운데 던져질 나를 불쌍히 여기며 양손에 못 박히는 아픔을 참으셨습니다. 나의 허물 때문에 군인들의 조롱과, 살을 떼어내는 채찍을 견디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원히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장 큰 구원의 감사가 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까지 나눈 네 가지 재앙은24:8절처럼 재난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4:6,10 절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기근과 칼과 전염병 등의 재앙을 주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인식하며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항상 살아가는 기쁨의 자리로, 범사에 감사가 회복되는 자리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자리로 다들 다시 돌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