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2): 거친 세상에서 온유함으로 사십시오  

5:5

 


오늘 코넬에 졸업식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을 다시 한번 더 축하하며 격려의 박수를 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졸업생들과 나누는 마지막 말씀이라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세상은 참 거칩니다.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누워도 무거운 짐을 벗지 못하게 만듭니다. 직장에 출근하면 동료나 후배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또 경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약점 보이지 않기 위해 다들 센척하며 살아갑니다.

 

철저히 숨길 것 숨기고 들어낼 것 드러내고 삽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부드럽게 살기 바랍니다. 좀 애매한 말인데요. 약하지 않고 내적으로 힘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표현은 온유하게 사는 것입니다.

 

5:5절의 온유의 뜻은 다가오는 억압과 고난에 대해 거칠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가진 힘으로 결사적으로 대항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괴로움과 어려움을 주는 상대방에 대한 미음과 복수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평강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사랑과 인내와 친절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입니다. 보기에는 매우 소극적이고 심지어 무기력해 보일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없어 보이고 저항도 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면적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닥쳐오는 상황을 대처해 갑니다. 나를 격동케 하는 생각과 요동치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해결자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어떤 누구에게도 일관성을 갖고 따듯하고 친절하게 반응합니다. 알고 보면 강적입니다.

 

우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살았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53:7절은 예수님에 대해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이 잠잠했다고 말씀합니다. 이어 12절 하반부에는, 실상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괴롭히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런 주님의 온유한 모습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 가를 말해줍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주님처럼 살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결단이 서 있는지요?

 

나를 어려움으로 몰아가고 해치기까지 해도 그런 죄를 짓고 있는 그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지요?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이 훈련 잘 받으셨는지요? 우리 교회는 이 훈련을 잘 시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사명을 앞으로도 감당할 것입니다.  

 

세상은 계략에 능수능란하고, 힘세고 강해 보이고, 실력과는 무관하게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온유한 사람들을 전쟁에 나갈 전투원으로 선택합니다.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군사들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온유하게 행동해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합니다.

 

5:5 하반부를 보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은 가나안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나중 누리게 될 천국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텐데, 굳이 살면서 남의 땅을 차지해야 할까요? 아니라면 실제로 싸우고 전쟁해서 땅을 차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옥과 같은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위해 온유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친절하고 성격이 유순하며 원만한 삶의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삶은 세상 어떤 종교나 윤리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세상 사람들은 신실하게 삽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모순처럼 고난이 다가옵니다. 이때 세상은 평소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말하는 하나님께 손가락질 하며 달려듭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온유한 사람은 이 때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뜻으로 순복하며 주님이 해결해 가는 답을 기다립니다.

 

모세를 직장인으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12:3절에 의하면, ‘온유함이 이 땅에 어떤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칭찬합니다. 그런 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왜 이러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끌고 온 수고와 공로를 앞세우며 떼를 쓰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잘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냥 산으로 올라가 눈으로만 가나안을 들러보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배신당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 모세가 먼 훗날 예수님과 함께 가나안 땅에 있는 변화산이라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모세에서 다윗까지 대략 오백 년 시간과 다윗에서 주님까지 천 년이란 시간입니다. 아주 긴 시간을 기다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여유입니다. 온유한 자는 반드시 주님이 인정하고 높여주는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천성적으로 성품이 느긋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에는 지독스럽게 완고한 분들이 있습니다. 조금 불이익을 당하는 어려운 시험이 와도 참지 못합니다.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떠납니다. 이런 것은 온유함이 아닙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그 주인공이 되실 줄 믿습니다. 세상은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인격 위에 주님의 온유한 성품이 더해지기를 성도들에게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온유함을 닮은 사람만이 지옥 같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는 각박한 경쟁 사회 속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그곳에는 늘 긴장과 지친 삶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경쟁하며 열심을 다하면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면 기대를 갖고 힘을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세상은 늘 허탈감을 주며 더 지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경쟁하는 환경을 견디지 못해 지치고 마음상해 뒤로 처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의 온유함을 배운 성도는 그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충실히 해내지 못한다면 세상에는 직무유기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우리에게는 소명유기와 책임회피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거친 세상 속에서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부드러움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함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삶에서 상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거친 세상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온유한 사람이 되어 이 땅을 천국과 같이 바꾸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