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1): 의에 목마른 자가 되세요 

5:6

 


다음 주일은 졸업생들을 위한 졸업 예배가 오전과 오후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도 오시고 해서 다들 분주하기 때문에 한 주 전부터 말씀을 전하곤 합니다. 미리 졸업하는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매듭을 짓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힘든 과정 잘 견디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홀가분하게 이곳을 떠나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가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들을 맞이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해온 것처럼 잘 대처하며 승리할 것입니다. 주님이 그곳에서도 늘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며 지혜와 건강과 능력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의 꿈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의 배를 고프게 만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배고플 때 먹다 보면 평소보다 폭식하게 됩니다. 또 평소에는 음식이 조금 상한 것 같아 보이는 것에는 눈도 안 가는데 너무 배고프면 뭐든지 집어 먹고 배탈도 나곤 합니다.

 

세상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오는 배고픔입니다. 이것을 유혹이라 부릅니다.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이 배고픔은 세상 정욕과 안목의 자랑입니다. 그래서 이제 막 세상으로 나가는 여러분들은 단단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이 배고픔이 늘 주위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견딜 만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참지 못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유혹은 하루 아침에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야금야금 조금씩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변질시켜 나갑니다. 우리의 믿음 안으로 잘못된 생각들을 집어 넣습니다.   

 

양심이 떳떳하기에 자신은 죄하고는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기에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죄를 범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사탄은 내 기분만 좋으면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 세상에 많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번 돈으로 좋은 것 먹고, 보고, 예쁜 것 사고, 가고 싶은 곳 가며 즐기며 기분 좋게 살기를 원합니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도 않고, 내 것 가지고 즐기며 산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기분 좋은 것을 보시며 잘 살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만족한 삶이라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 5:6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세상이 주는 배고픔을 해결하고 진정한 배부름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주는 배부름이 있어야 이 땅의 배고픔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배가 부르면 얼마나 만족스럽습니까? 그리고 배부름이 있어야 다음으로 내어 드림이 있게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먹을 것이 없어 당황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그들을 먹이라는 황당한 말씀을 합니다. 그 때 어린 아이 하나가 자신의 것을 내어 놓습니다. 이 아이는 빈들에 모여있던 그 어떤 어른들보다 먼저 배부름이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기록된 사복음서 중 눅9:11절을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늘로부터 주는 영적 배부름이 없었습니다. 기적 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요 6:2절을 보면 어른들은 병 고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면서 지금 영적으로 배가 부른지 안 부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누는 삶을 보면 압니다. 돈 벌어 내 가족을 위해 살아도 부족한데 어떻게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먼저 배부르지 않는 사람은 내 것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어떻게 하면 배부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에 주리라고 역설적으로 말씀합니다. 이 말은 배부르게 마음껏 를 먹으라는 뜻입니다. 먼저 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15:6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 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시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해주십니다(죄 없음).

 

그렇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옮다고 믿고 그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당연히 세상 가치관을 하나님 말씀보다 앞에 두어서는 안 되겠지요. 세상 사람들 다수가 저쪽에 서 있기에 나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옳다고 선포할 수 있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은 정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간절함이 내게 없으면 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리고 목마름은 죽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몇 일 금식을 해보면 정말 느껴지는 배고픔을 갖고, 물이 없어 목이 탈 때 갈증을 느끼는 그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절대진리가 될 수 있느냐고 난도질 당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과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시고, 마지막 때에 심판하시는 분임을 당당히 삶의 현장에서 선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자신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세상에서 서로 싸우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인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도 없는데 내가 믿는 것이 진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진리라고 말하기 때문에 진리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믿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냥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 믿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설명으로 가능하다면 왜 이렇게 안 믿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결국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안 계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단지 믿는 우리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면 나는 안 믿겠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지 못하는 나 때문입니다. 사실 분자 원자 양자는 원래부터 있었지만 사람들이 인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도구가 만들어질 때 확인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이 믿든 안 믿든 영원부터 존재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보지 못한 사람들은 믿기 힘듭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성도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그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해서 산에 가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1) 세상의 많은 유혹 속에 살지만 죄 짓는 삶으로 하나님을 가라지 않도록 몸부림치는 삶입니다.

 

2) 비록 죄에 쓰러지지만 회개하며 예수 보혈의 능력으로 죄 씻음 받아 다시 용서받고 회복 되는 삶입니다. 3) 이것이 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누리는 배부름입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에 주린 자가 되어 하나님 영광 드러내는 졸업생들과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