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2): 네 부모를 공경하라  

15: 4-6

 


요즘은 평균 수명이 길어져well aging(잘 늙어 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2020년 기준 남녀 기대 수명이 OECD 38개 국가별 남자는 9(80.5) 여자는(86.5) 2위를 차지했습니다. 30세에 결혼을 하면 1985년 기대수명은 68.9세이므로 39년 정도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2020 83.5살을 기준 한다면 53년을 더 살게 됩니다. 점점 자녀들은 더 오랫동안 부모님들과 살게 되는 그런 시대에 접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점점 고령 사회로 가면서 나이 드신 분들에 대한 복지가 더 논의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대가 올지라도 자녀들은 당연히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우리를 낳아서 길러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 15:4절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하고 난 뒤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을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 자식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21:1821절은 부모 말에 순종하지 않고 부모가 징계해도 듣지 않는 완악하고 패역한 자식이 있을 경우 성읍 사람들은 돌로 쳐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간음하는 여인은 돌을 들어 치려고 하는 경우는 예수님 당시에도 보게 됩니다.

 

비록 성경에는 패역한 자식을 죽일 것을 말하지만 실제 경우는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말 한 명도 그런 자식이 없었을까요? 분명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일 수 없었다는 것이 더 맞지 않습니까?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부모님들을 여행 모시고 가서 그곳에 버린다는 뉴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부모를 버리고 가는 자식들은 있지만, 버려진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누구라고 말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15:12절을 보면 완악한 아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억지로 자기 재산 달라는 패역한 아들입니다. 부모는 그런 자식에게 주는 것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던 아들 돌아올 것만 기대하며 먼 곳을 바라보는 부모입니다. 모든 것 탕진하고 돌아와도 꾸지람 하나 않습니다. 오히려 돌아온 아들을 반가이 맞아 줍니다. 다 잊어 버리고 아들 살려 주려고 송아지 잡아 잔치까지 베풀어 줍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한편, 부모에 대한 자녀의 사랑은 공경으로 나타납니다. 4절을 보면, 하나님과(1:8, 7:6)과 그리스도(5:23)에 사용되는 공경이란 단어가 부모에게 쓰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 공경은 특히 십계명 중에서도 하나님과 관계에 이어,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유념해서 지켜야 할 첫 계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5-6절을 보면, 율법을 잘 지키기로 소문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 죄를 주님으로부터 지적 받고 있습니다. 당시 장로들이 만든 전통에 의하면 부모님에게 당연히 드려야 할 것도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면 아무도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원래 취지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부모를 공경해야만 하는 법적 의무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 되었던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만 말씀합니다.

 

너를 사랑하고 너에게 유산을 많이 남겨 주는 부모만 공경하라가 아닙니다. 그냥 아무런 수식어가 없이 네 부모입니다. 살아가는 여러 가지 내 형편을 구실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엄하게 꾸짖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무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까?

 

성경의 한 인물을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남편을 잃은 두 며느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젊었고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삶을 살도록 시어머니로부터 허락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이방 땅인 예루살렘으로 와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홀로된 나오미를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부모 공경은 누군가에게 부모를 떠밀지 않고 직접 섬기는 것입니다. 2) 자식은 나이 드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물질적 정신적 영적 삶을 책임지고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 최대한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자식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많은 부분들을 맡아 부모님들을 챙기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화면서 정부가 물질적으로 맡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의 정신적 돌봄은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손자들의 커 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 부모님을 찾아 대화를 나누며 살펴 드리는 것은 직접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살면서 가장 빚진 분들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래서 3) 내 부모님을 외로움과 고독에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 자세가 공경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함께 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에게 자식들이 늘 함께 한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본을 보이며 살아가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이 계속해서 후대에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부모만을 공경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부모님들도 돌보는 책임이 있습니다. 혈육으로는 내 부모님은 아니지만, 어른들은 내 이웃입니다. 부양할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분들은 물론, 가족과 교류가 줄어든 홀로 계신 분들까지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교회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같은 약자들을 돌보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랑을 실천하는 폭은 더 넓어질 것입니다. 좀 더 실천적인 것은 매주 부르는 교회 찬양도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점점 자녀들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른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록 정부의 의료적 혜택이나 복지시설은 늘어가긴 하지만, 전적으로 그것에만 의존할 수 없습니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연로하신 인생의 단계에서 부모님들도 필요한 대화와 영적 격려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늘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가장 크게 빚진 부모님들을 희생시키곤 합니다. 직장 구한다고 바빠요, 바쁜 회사 일로 시간이 안나요. 자식 키운다는 이유로, 또 먼 곳에 떨어져 산다는 핑계로 우리 부모님들을 잊고 또 찾지 못하며 살 때가 간혹 있습니다

 

딤전 5:8절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가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원과 보살핌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한다고 고백하면서 말씀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기는 성도는 육신의 부모님도 잘 공경할 줄 믿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 뒤지지 않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어버이 주일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앞에, 부끄러움 없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