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1): 주께로 자녀를 데려와 숨기십시오  

왕상 18:7-8, 11-13

 


가정의 달 오월을 맞아 가족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은 늘 손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의존성 때문입니다. 늘 곁에 있어야 하고 많은 것을 보살펴 주어야만 합니다. 부모는 만능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데 부모는 나이가 들수록 가까이 갈 수 없는 갭이 생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자녀 양육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저귀를 벗어 던지는 순간 다른 보살핌이 또 필요합니다. ‘대학에 가면 낫겠지, 졸업하면 낫겠지라고 생각해 보지만 현실은 늘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자리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주 안에서 자녀를 키울 것인가?’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조언들이 쏟아지고 책들이 주위에 넘칩니다.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우선 크리스천 부모들은 주 안에서 자녀 양육에 대한 목적과 동기가 확고해야 합니다. 500년 전 사람이긴 하지만, 마틴 루터처럼 확실히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혼생활의 가장 큰 선, 즉 모든 고생과 수고를 가치 있게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을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자들로 기르도록 명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경건한 자녀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시간을 사용하는 것만큼 고귀하고 소중한 자녀 양육은 없을 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인데요. 1) 16: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읽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는 말씀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예수를 믿어 영혼 구원 받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2) 주 안에서의 자녀 양육의 목적은 크리스천 부모들로 하여금 세상 부모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잘 사는 자녀로 키우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또 자녀의 행복만을 원한다면 자녀들이 싫어하는 것을 가르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아이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대로만 할 것입니다. 성공이 목표라면 남들보다 자녀들이 앞서가도록 모든 면에서 아낌없는 투자도 할 것입니다. 무리해서라도 최고의 것을 주고 배우게 해서, 명문대학의 인기학과를 졸업하고 인기 업종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의 자녀양육 목적은 전혀 다릅니다. 왕상 18:12절 하반부에 오바댜처럼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부르는 경건한 자녀를 기르는 것입니다. 그의 부모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미를 가진 오바댜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부모만이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댜는 북이스라엘이 최고로 영적 쇠퇴기에 접어드는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통치하던 시대 사람입니다. 13절을 보면, 아합은 바알을 섬기는 종교정책으로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오바댜는 백 명의 선지자들을 숨져주었고 그들에게 먹을 것과 물을 공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녀들을 단지 대를 이어가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없으면 사는 것이 너무 적적하기 때문도 아닙니다노후에 부모를 부양할 목적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지 않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으로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경건한 자녀들을 길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아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로 키워내는 것이 믿는 자들의 최고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 목표를 잃어버리고 살면,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을 세상과 비교하면서 실망하고 세상에 휘둘리며 자녀를 키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키울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자녀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19:13절에 부모들은 예수님께서 안수해 주시고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지혜롭고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16절을 보면 주님은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우리 부모는 자녀들을 주님께로 데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직접 그들을 축복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 것을 채우시며 용기와 꿈과 건강을 주시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 평강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를 떠나기 전까지 주님께 데려오는 일은 부모의 성실함을 필요로 합니다. 사춘기의 아이들 어디 데리고 다니는 것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주일에 이런 저런 일로 예배 참석하는 것 빠지면, 아이들은 부모의 그런 모습을 약점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교회 오는 것 자신들도 일이 있으니 못 가겠다고 버틸 것입니다.

 

부모가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일이 생겨 다른 곳을 가족과 방문해도 그곳에서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중요합니다. 이런 태도는 자녀들에게 예배에 빠지고 싶어하는 어떤 변명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사춘기는 길게 느껴지지만 정말 눈 깜박할 시간입니다.

 

자녀를 주님께 데려 오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은 부모가 주 앞에 성실히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이 도전에 승리하는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에 의존적입니다. 누가 그들을 이끌어 올 수 있습니까? 우리 자녀가 주께 나아오는 일이 최고의 기쁨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호시탐탐 노리는 원수로부터 우리 자녀들을 주님의 날개 밑에 숨기는 일입니다. 11:23절처럼 모세의 부모는 석 달 동안 그를 숨기고 안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자녀들을 전능자의 그늘에 숨겨야 합니다. 이곳은 그들이 홀로 서기 전까지 그 어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도둑이나 강도들을 두려워합니다. 사탄이나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고 무시합니다. 만약 사탄이 우리 자녀들을 가장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세상 부모들의 행동도 달라 질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자녀들이 인생을 헛되게 보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들이 인생에서 처절한 고통을 자초한다면, 신이 나서 춤을 출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의 자녀들에게 인정사정 없이 공격하는 사탄이라는 강한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는 하나님의 피난처가 있다는 사실도 심어주어야 합니다. 힘든 세상을 살 때 위로와 격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주기를 바란다면, 예수께 데려오면 가장 좋은 것으로 주님이 직접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부모가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두려워하면, 주의 은밀한 날개 밑에 숨기면 됩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올려지는 예배의 자리는 그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가를 살피는 것보다 더 안전하게 숨기는 시간입니다.  

 

자녀들을 바라보면 걱정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녀 양육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주님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들이 성장함에 따라 적절한 하나님 말씀으로 훈계해 나갈 때,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진 경건한 자녀로 성장할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주께로 자녀를 데려오며 주의 보호아래 맡기는 양육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