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성도의 부활  

6:3-5, 8

 


부활절을 매년 보내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들도 흉내내지 못하는 기독교만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부활 사건은 이천 년 전에 유대 땅에서 예수님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따지고 보면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도 너무 먼 시간이고 다른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부활 사건을 믿음의 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둘 다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우리는 전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예수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최고의 도박입니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부활을 우리는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저의 대답은 저항 할 수 없는 힘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알았을 때, 죄인에게 죽음 이후 심판과 사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러나 나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구원받고 싶었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영원히 살아가는 부활을 얻고 싶었습니다. 내가 이것을 거부할 때, 정말 영원한 사망의 불 가운데 던져지는, 엄청난 두려움이 현실로 느껴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단지 두려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감격 그리고 무한한 사랑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라 부릅니다. 믿음의 고백을 통해 죄 용서함을 받을 때, 내 속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부활을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모든 성도가 느끼게 되는 이 저항할 수 없는 힘은, 하나님 앞에 선 인간들의 연역함입니다. 또한 절대자 앞에서 선 한 인간의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내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인데 못 믿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핍박과 환란을 맞이하면서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 앞으로 나갔던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진실이고 자신이 죽어도 나중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는 과제는 어떻게 예수의 부활이 나의(성도의) 부활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엄청난 시공간의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최초의 사람 아담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아담은 한 사람 개인이었지만,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전 인류는 함께 범죄한 것입니다.

 

고전 15:45절처럼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역시, 십자가 죽음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있는 자들은 직접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와 연합의 원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언제부터 거하게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바로 3절에서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받는 세례는 죄 씻음과 그리스도와 연합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성령세례라고 부름).

 

믿음을 고백하고 예수 믿기로 결단할 때, 나에게 오신 성령은 그리스도와 나를 연합시킵니다. 이 연합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처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살아나심에 대하여는, 지금 나는 새롭게 된 영으로 살아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주 안에서 다시 거듭나게 됨으로서, 죄로 인해 죽은 영이 아닌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된 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산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고, 새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는 성령에 의한 거듭남인 것입니다. 이것 역시 따지고 보면 영의 부활이 먼저 내 속에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4절 하반부처럼 지금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뒤 나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가 가능한 것은 5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와 연합때문입니다. 이 말은 접목되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무에 접목되어 원래 나무와 같은 나무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예수의 성품을 나타낼 수 밖에 없는 행동원리를 설명해 줍니다.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면, 우리가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죄 용서함과 연결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은 믿는 우리의 새로운 삶과 연결 되는 것입니다. 부활이 주는 것이 이것만이 아닙니다.

 

8절을 보면 미래에 있을 부활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만 살아나셨습니까? 아닙니다. 이천 년 전 육신을 가진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전 15:52-53절처럼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는, 죽음을 맞이한 후에도, 주님 다시 오실 마지막 때,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육신의 부활을 반드시 경험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부활 주일을 맞아 로마서 6 4절 하반부와 8절 하반부를 집중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영접할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우리 안에서의 영적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후, 세상의 마지막 날에 경험하게 될 육체의 부활을 또한 선포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하나로 연합 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모두 예수 닮는 정말 멋진 삶을 이 땅에서 살다가, 마지막 날에 나팔 소리 들릴 때, 부활을 맞이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