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10):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롬13:11-12
오늘은 종려가지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주님을 왕으로 찬양하며 기뻐했던
했던 것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고난주간으로 지내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이 고난 주간을 의미 있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삶을 늘 요구 받기에 말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고, 다시 주님 원하시는 자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분들이나 이미 예수를 영접한 분들은 이제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삶일까요?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잠에서 깨는 삶입니다.
여기서 깨는 것은 육신의 피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잠에서 깨는 것을 말하고 영적 무감각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도의 영적 무감각을 잘 설명해 주는 예는 바로 열 처녀 중 미련한 다섯 처녀들입니다. 신랑이 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믿는 성도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성경적 진리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지 이천 년이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오지 않았다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상당 수가 있습니다. 좀 부드럽게 말하는 분들은 종말론은 이 땅에서
사람들을 바르게 살게 만들기 위한 가르침으로 취급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교묘한 술책입니다. 사탄은
성도나 믿지 않는 분 모두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진리를 알고 믿는 있는 성도들이 더 공격의
대상이 되겠지요.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때가 분명히 있고 그 때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더 우리를 편하게 살게 하고 나태하게 만드는 가짜 생각들을 교회에 던집니다. 예를 들면, ‘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는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예배가 삶이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잘 훈련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삶의 현장이 예배가 될 수 있겠습니까?
목숨 걸고 예배를 지켜 나가는 성도만이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는 분들은 이것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를 고난주간으로 지나게 됩니다. 우리 몸을 상하게 하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흘리기까지 고난 당했는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죄와 허물 때문임을 발견하고 여전히 습관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하면 철저히 회개하고 고쳐나가는 위한 훈련의 시간입니다. 믿음생활을 시작한 성도는 주 안에서 12절 말씀처럼 어둠을 벗고
빛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새로운 기준에 따라 나무랄 데 없는 빛의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세상 기준이 더
편하기 때문이고, 내가 믿기 전부터 해오던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주 안에서 훈련 받지 못하면 신앙의 성숙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중 하나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휴가를 가면
성경 읽기도 쉬고, 기도도 쉬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빠져도 되는 것입니까? 먼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에 메여 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방임적인 태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에 더 순종하려는 사람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여 더 주님께 드리는 삶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에게 개인적인 휴가는 더 주님을 잘 섬기기 위한 회복의 시간이고, 부족한 것을 더 훈련하는 보충의 시간으로 사용하면, 주님이 기뻐하고
신앙도 성숙되지 않겠습니까?
이미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 훈련이 잘 된 분들일지라도 더 훈련
받는다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듣는다면 믿음의 후배들에게 좋은 믿음의 본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분들에게
‘덕’이 되겠지요. 여기서
‘덕이 된다’는 말은 나로 인해 남에게 시험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8:13절에서
이방 신전에서 제사를 지낸 후 시장에서 싸게 파는 고기를 사서 먹는 일이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실족하게 만든다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까지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도에게는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뛰어 넘는 자유가 주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나 자신이 원하고 바라고 나에게 유익한 일이라 해도 덕이 되지 않을 때는 내가 누리고 싶은
자유마저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고난입니다. 내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신앙훈련은 믿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오래 전에 믿은 분들이나 오늘 처음 세례를 받는
분들이나 모두 신앙훈련은 필요합니다. 군 생활을 오래한 병장들은 물론 장교들도 다 함께 정기 훈련에
참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례자들은 우리 교회 비전과 같이 신앙훈련 받는 것을 즐겨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생각과 마음은 다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전에 나가면 훈련처럼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고참이라도 훈련에 꼭 참가하게 합니다. 믿는 성도가 사탄의
공격을 받으면 넘어지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 훈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분들이나 이미 믿음생활을 하는 모든 분들 역시 지속적으로
나를 주님께 드리는 훈련은 나를 강하게 할 뿐 아니라 나를 지켜줍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이번 한 주간은 교회들이 십자가에서 주님의 희생을 묵상하는 주간입니다. 나의
허물과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치 않는 나의 죄된 습관과 허물을 먼저 말씀을 묵상하며
작은 것부터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힘들어도 결단한 것을 과감히 내어 버리는 것이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가,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복된 한 주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