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9): 사랑하게 만드십니다
롬12:9-10
성도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살면서 하나님과 이웃들을 향해 사랑으로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나를 품어 주시고 사망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소망으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여정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 예수 안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했기에 사랑해야 할 단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 말씀 10절을 보아도
‘사랑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9절 초반부를 보면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식 없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속과 겉이 같아야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의 변화된 삶입니다. 속은 상대를 무시하면서 겉으로만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 상냥한 척 말을 건네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따르는 주님이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비방과
비판,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한다면 이것을 우리는 ‘위선’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힘들기에 ‘인사도 잘 안 나누고,
부딪히지 않으려고 피해 다닙니다. 만나도 가능하면 말은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내 모습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분들을
진실되게 사랑하게 될까요?
9절 하반부의 말씀처럼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훈련이 우선 필요합니다. 악을 미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들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은 선에 속하라고
하는데 ‘선’이 무엇입니까?
선은 하나님 한 분, 그분의 생각,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 모든 만물이 그 말씀을 이루려는 행위가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에 속하라’는 의미는 간단합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이루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고 저것은 못해’ 라는 선택적 행동을 하고 있거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인사를
나누지 않고 차별적인 모습이 있다면 지금 내가 선에 속해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가 거짓 없는 사랑을 할 때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만 주거나, 상대방을 기분 좋게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마음 아파할 말조차도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에게 하기 힘든 말을 피하는 태도를 가만히 보면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편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든,
때로는 듣기 싫은 말이든, 꼭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성도들 사이에도, 목회자와 성도간에도 또한 자녀와 부모관계에서도
적용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용기와
타이밍입니다.
상대에게 용기가 있어야 멈칫거리지 않고 타이밍을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너무 서두르다 보면 경청하는 시간도 없이 내 말만 하는 실수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perfect한 타이밍을 찾을 수 있을까요? 1) 나 중심이 아니라 힘들어하고
마음 상해 있는 상대방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말한다면 듣지도 않을 것을 먼저 기도할 때 성령이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어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런 성도의 모습들을 10절
하반부는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는 것’ 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간의 사랑은 일방적이지 않고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또한 세상에는 없는 기도가 추가 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기도는
성령이 먼저 역사하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성도에게 기도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가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사람들의 능력과 자신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하늘의 힘과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악한 세력들을 이겨낼 능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원할 때 기도부터 시작하길 잊지 말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거짓
없이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믿기 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롬 5:10절은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음을 보여주십니다.
골 1:21절 역시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 라고 말씀하십니다. 엡 2:3절에 의하면 ‘전에는
우리들 역시 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며 다른 세상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한 주님의 희생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장 회개할 수 있고 그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착한 행위를 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를 모르고 세상 풍조를 따라 살던 저와 여러분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원수와
같은 우리를 가장 사랑 받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만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미워할 사람이 없습니다. 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 사랑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이 사랑한 이웃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전에는 내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돌아섰습니다. 나보다
조금 못 가졌다고 무시했습니다. 나보다 좀더 아는 것 같아 질투했습니다. 이런 것을 내어 놓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가진 것 같아 사람들 앞에 비굴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주님만 바라 보기 원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주님이 나에게 대해 주셨던 그 마음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내 마음대로 미워했던 것을 내려 놓기 원합니다. 그들보다 못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신 주님만 기억하기 원합니다.
예수의 사랑을 우리 심장 속에 담아 주셨습니다. 새롭게 된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주신 사랑 나누지 못했습니다. 늘
내가 하는 사랑만 잘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있는지 살피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던 방식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그 사랑을 나타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 안에서 새 삶의 시작입니다. 그 삶은 내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기까지 변화시킵니다. 주 안에서의 사랑은 척하는 가식이 아닙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고 섬기는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닮은 사랑의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