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8): 변화를 요구합니다
롬 12:2
예수를 믿고 난 뒤 많이 듣게 되는 것은 ‘변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예수 믿고 나타난 변화 중 하나는 기도였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내 말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는 하나님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눈을 뜨고 있다 나중에는 기도문을 미리 적어서 읽었습니다.
다른 변화는 말씀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는 물론 수요예배, 금요 청년모임, 주일
예배 때 말씀을 듣고 기록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해
보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던 새로운 변화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분들은 누구나 자신이 변한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가 크면 클수록 예수
믿는다는 느낌이 확 다가옵니다. 술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예수 믿고 끊는 분도 있습니다. 폭력을 멈추기도 합니다.
도박 병을 고치는 분들도 주변에 있습니다. 성 중독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오랜 우울증이 낫고, 귀신이 나가는 것 등 정말 다양한 간증들이 믿는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실제적으로도 체험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변화 외에 다른 변화는 없는 것일까요? 분명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도록 변화 됩니다. 그것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다르게 살아야 하는 요구를 새로운 우리들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내 생각이 아닌 주인이 요구하는 대로 사는 삶의 시작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변화를 체험한 바울 사도는 롬 12:2절 초반부에서 하나님 뜻 이루는 삶을 위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요구 합니다. ‘계속 세상과 같은 모양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종으로 삼았던 사탄이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예수 안에서 변했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일원이기에 세상
풍조를 삶의 표본으로 삼아야 할 것’을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된 우리들은 이것을 자연스럽게 거부할 수 있고 거부해야만 합니다(3가지
이유).
1) 이유는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미 새로운 주인을 모시고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나님께 나를 ‘산 제물’로 드렸음을 지난 주에 나누었습니다. 종이 자신의 주인 아닌 다른 사람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까? 안 되는
일이지요.
2) 약 4:4절에 의하면 ‘세상과 벗 된 것은 하나님의 원수’ 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행동이나 처신들을 이 세상의 유행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나만 알고 살았던 이기적인 것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가 최고라는 세상 가치관에 갇혀 있던 것을 깨뜨리고 나와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 신봉하던 내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무시함으로 영적 세계에 대해 너무 무지합니다. 도덕적, 윤리적, 성적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절대 진리인 복음을 믿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는
예수를 거부합니다.
3) 요일 2:15절 역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에 연연하거나 세상을 모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구별시키기 위해
우리를 불러 내었습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거나 동화되는 것은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성도는 내가 누구이며 세상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갈아 엎어 복음의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어야 할 터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있지 않던 생명 되는 복음의 씨를 주셨습니다. 성도는 우리의 선교지인 세상에 이 씨를
뿌리는 선교사들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름 받은 일꾼들입니다.
내가 일하는 곳을 생명 있는 장소로 바꾸어야 합니다. 내게 준 삶의 영역을 변화시키도록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능력에 따라 준 것이 아니라 나에게 허락된 사명의 크기에 따라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다른
사람이 갖지 않는 명철한 두뇌와 명예와 물질이라는 귀한 달란트를 받으셨습니다.
갑절로 남기기 위해 내가 속해 있는 직장이나 캠퍼스나 가정에서 빛이 되어야 합니다. 썩어 가는 곳에 공의와 정의가 흘러 가게 만들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들 세상 일터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지요? 빛이 빛을 잃으면 어둠만이 있을 뿐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에 밟힐 뿐입니다.
세상에서 빛을 잃지 않고, 소금
맛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님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롬 12:2절 중반부를 보면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고
명령합니다. 외모는 바꾸기 쉬우나 존재의 본질을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속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후 5:17절에서
속 사람이 본질적으로 완전히 변화된 새 사람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변화된 우리가 다시 어떻게
변화 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마음을 새롭게 할까요? 우리 자신입니까? 이 과정을 살펴 보려 합니다.
딛3:5절을 보면, 예수를 나의 구주로 나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 성령은 이전의 내 모든 죄를 소멸하고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요 14:17절 하반부에 보면, 우리를 주 안에서 거듭나게 만든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성도들 속에 함께 거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계속 성령과 함께 신앙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러는 도중 말씀을 듣게 되면 예수 믿고도 아직 변하지 않은 모습을 계속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진정 변하고자 하는 생각, 마음, 결단이 생겨납니다. 내 속에서 의지가 생길 때 성령은 이것을 무시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역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가 거듭날 때 새롭게 된 마음의 자리로 계속 돌아가게 만듭니다. 타락으로 완전히 부패한 양심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된 속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자리는 진리와 순종과 화평과 사랑이 있기에 죄로 뒤틀린 내 모습을 진지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새롭게 된 마음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만든 성령은 다음으로 롬 12:2절 하반부를 보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우리로 하여금 분별하게 만듭니다. 이 분별이 생길 때 더 이상 부패한 내 양심에 따라 움직이다
실패하던 것을 멈추고 싶어 합니다.
성령은 더 이상 세상과 육체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옛날에 실패하던 마음과
생각이 아니라 변화가 가능한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내 힘만 아닌 성령이 함께 하기에 더 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변화를 원하는 분들은 말씀을 들을 때 결단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께 도와 달라고 요청하기 바랍니다. 더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