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4): 구원의 여정
롬 8:29-30
오늘은 한 사람이 예수를 온전히 믿고 구원받는 전체 여정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구원의 과정’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을 살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믿고 나는 지금 어디 정도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겠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믿음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많은 것을 생략하고 구원의 여정을 복음을 접하는 것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롬 8:30절을 보면 ‘부르시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속박으로부터 불러내십니다.
이때 처음 복음을 듣게 됩니다. 너무나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 됨을 우리는 많은 선배들의
간증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교회에
한 번 가보자’ 는 요청에 의해 오긴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접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구원 받을 가능성은 높지만 그렇다고 구원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구원 받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고, 구원은 개인의 믿음의 고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교회에 오면 이 세상이 창조주에 위해 만들어지고 세상 끝에 심판과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것들을 배우고 듣게 됩니다. 전해지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으로
집중하게 됩니다. 복음은 하나님 앞에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내가 죄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가 일어나게 만듭니다.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이 과정에는 반드시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복음이 들려집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의 역사가 개입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롬 1:16절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분은 믿지 않는 일이 발생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구원과 관련이 없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아닐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예를
들면, 예수 믿으면 귀신 나간다. 병 고친다. 부자 된다. 귀신은 나가고 복은 받고 병은 고칩니다. 하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는 성도는 믿지 않는 분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그분들을 구원받는 자리로 부르는 일에 내가 사용 되고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옷이 없으면 입혀 주어야 합니다. 구제와 봉사가 선교의 현장에서
앞서가는 도구로 사용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쳐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 성도님들은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반드시 그 다음에는 ‘구원에 이르는 복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진정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누구이든, 어떤 형편에 있던 행 2:38절의 베드로처럼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고 담대히 말해야 합니다. 1) ‘너희가 회개하여’ 라는 말에서 어떤 한 사람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회개를 전해야만 합니다. 2)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인지 십자가 사건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때 성령은 그들 속에서 역사 하십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려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게 되며 회개가 일어납니다. 구원받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이 있음을 절감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정말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구원의 두 번째 여정인 의롭다 하심이 속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부릅니다. 믿기
전에 예수 보혈로 덮여 있지 않았던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을
믿을 때 더 이상 나는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보혈로 깨끗이 씻긴 나를 의롭다(죄 없다)고 불러 주십니다.
롬 3:24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죄 없는 사람이라는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비록 내 속에는 죄의 성향이 있어 앞으로도 생활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의인의
신분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향해 롬 8:1절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선포해 주십니다. 또 롬8:33절과34절 초반부를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죽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죄인에서 의인으로의 법적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기에, 3) 더
이상 사망의 심판이 없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나는
오늘 죽어도 좋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사람들은 죄를
계속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죄를 반복해서 짓지 않습니다. 가장 우선적이고 확실한 답은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변화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라고 또 질문이 날아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전 과는
전혀 다릅니다. 요일 1:9절을 보면 죄를 지어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속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늘 자백하기만 하면 우리 죄를 사해 주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해집니다. 여기서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용서 받는다고 해서 이 땅에서 감옥 가는 것 면하는 그런 것 아닙니다.
이 땅에서 죄를 지으면 반드시 세상이 만든 법적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심지어 이 땅에서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 회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죽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십니다. 메를 들어서라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예수쟁이는 누구든지 회개 안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죽거나 사고로 의식 없이 죽는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라는 질문이 또 남게 됩니다.
죽기 전에 의식이 돌아오거나 짧게나마 회개의 시간이 주어질지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입니다. 단지 우리에게 주신 것은 롬8: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살다가 죽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의식 없이 갑자기 죽어도 하나님은 내가 예수님을 고백할 때
이미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병들어 죽고 사고로 의식 없이 죽는 것들은 단지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들일 뿐입니다. 결론은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입니다.
믿고 난 후 죄짓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구원의 세 번째 여정인 성화를 소개해 줍니다. 성화는 예수 믿고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때로 예수
믿고 난 뒤 자신이 구원 받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곤 합니다. 롬 8: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라는 말에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위해 우리를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예수 닮는 변화가 나타나는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누가 예수를 믿게 될 사람인지 전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고 사는 모습을 보면 구원 받은 사람인지 알 수 있겠지요(구원파와 다른 모습).
구원받은 은혜가 클수록 감사가 넘치고 삶의 변화는 큰 것입니다. 예수 믿고 주 안에서 향기 나는 삶을 살다가 다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각자 다르게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낙원에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마지막 여정인 영화입니다.그때 모두 그곳에서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