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2): 왜 구원 받아야 합니까?
롬 3:23;
5:12; 6:23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이유인 구원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다들 궁금해 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한
주제별로 한 주씩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주는 구원은 무엇인가?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죄를 용서 받음으로,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영혼 구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람이 아무리 육신의
질병을 고치더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 9:22절을 보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가진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경우를 보면,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도 구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구원이라 말합니다. 또 이 경우 육신의 병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병인 죄까지도 용서함 받았다는 뜻입니다. 마 9:2절을 보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향해 예수님은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든 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며 치유를 허락하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간구하는 자들에게 치유도 허락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그 목적을 사역 속에서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모습에서 죄가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고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시키는 사망을 가져왔음을 알게 하십니다.
구원을 이야기하다 보면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을 한 번 보십시오. 사람들은 남의 죄를 수없이
들추어 내지만 세상은 변화가 없습니다. 단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목적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죄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히 9:27절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어떤 종교를 믿던 상관없이 동의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죽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들 다릅니다. 의사 철학자 각자 종교들이 다른 의견을
내어 놓습니다.
창세기는 죄로 인해 죽음이 들어왔음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롬 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해야
하는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이 성경의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늘 그들 자신들이 피조물임을 자각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이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 에덴
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 먹지 말게 하였습니다.
선악과는 인간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창조주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가를 늘 가르치는 도구였습니다. 선악과 외에도 하나님은 인간이 영원히 하나님처럼
살도록 생명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순종함으로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면서 의도했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속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더 멀어지며 죄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인용하여 ‘사람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롬5:12절 하반부를 보면,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사망이라는 다른 개념을 소개합니다. 창 2:17을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죽는다’는 의미는 육체적 죽음은 물론이고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됨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계 20:14절에서 말하는, 둘째 사망인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사망은 결국 죄 지은 인간에게 육신의 죽음 이후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롬 6:23은 죄의 삯은(지불되는
것) 사망이라고 말해줍니다.
죄가 얼마나 강하면 육신의 죽음 너머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심판과 사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왜
우리 모두가 꼭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백한 설명이며 또한 이유입니다.
성경은 사망이라고 말하는 불못을 비유가 아닌
실체라고 말합니다. 마 25:41절은 영원한불로, 계 21:8절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합니다. 막 9:47절은 이곳을 지옥이라 부릅니다. 이어서48-49절은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다’ 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은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라고 원어적 의미를 살려 번역합니다. 소금이
뜨거운 불과 함께 사람의 피부에 뿌려지는 아픔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계 20:10절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살펴 본 성경 구절들이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지옥은 먼저 저주의 장소입니다. 타오르는 불 같은 것들로 형벌의 고통을 당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고 애걸한다고 그곳을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형벌과 고통이 한
순간으로 마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영벌).
한편 눅16:23-24절은 한 부자가 불꽃 가운데서 손 가락에 물 한 방울만 찍어 혀에 적셔달라 할 정도로 목마름의 고통을 느끼는 음부, hell, Hades로 불립니다. 그러나 건너 갈 수 없기에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지옥은 희망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절망만 있는 곳입니다. 눅 16:27절을 보면 그곳에 있는 부자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가족들에게 당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사로를 자기 집에 보내 형제들에게 이곳을 증언해서 오지 않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것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단호하고 무섭고
최종적인 것입니다.
세상은 성경이 말하는 지옥과 천국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을 이 땅에서 선하고 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만든 ‘교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도 거짓일 것입니다. 저도
지옥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들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수 많은 선지자들이 구원자가 올 것과 태어나는 장소,
죽으심과 살아나심을 예언했습니다. 때가 차서 말한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것을 진실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죄로 인한 심판과 사망 때문입니다.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는 지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누구도 가서는 안됩니다. 먼저
믿는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한 가지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보험 드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으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지옥이 없으면 그만이고 있으면 믿었으니 다행이지
않느냐! 물론 전하는 분의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저도
전에 그렇게 전도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확신이 없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복음은 세월이 흘러 검증된 후에 사실로 확인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진리입니다.
복음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증명을 하고 못하고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보여진 계시입니다. 이 땅에 오신 구원자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산 것을 보았기에 증언하는
것입니다. 믿기에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두 진실입니다. 죄인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이 있기에 지옥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듣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실천이 있기
원합니다. ‘나는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있는 분은 내 주위에
구원 받기를 원하는 분의 이름을 적어 보내 주기 바랍니다. 몇 분들이 보내주셔서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구원이 생명이라면, 내 사랑하는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구원을 담대히 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