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4): 함께 하십니다 

50:1-3

 


2022년 새해가 이미 3주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늘 봄학기가 개강됨으로 또 다른 시작을 이타카는 갖게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봄학기에 주님이 늘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코로나 변이로 학기가 온라인으로 2 주간 진행되지만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년의 긴 팬데믹을 지나면서 성도들 가운데 한 가지 불신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는 첫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면 고난이 빨리 지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믿음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런 생각이 드는 둘째 이유는 아마도 긴 시간 동안 혼자 해야만 하는 신앙생활 때문이라고 봅니다. 비대면으로 혼자 하는 믿음생활이 처음에는 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내 신앙의 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도 팬데믹 기간 동안 나의 신앙의 밑바닥을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들 전에는 교회 나와서 같이 예배 드리고 거의 모든 것을 공동체가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혼자서 믿음을 이어가야 합니다그러다 보니 나의 믿음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함께 신앙생활 할 때는 남들 믿음이 내 믿음처럼 느끼며 살 수도 있습니다.

 

내가 기도 안하고 찬양 안 해도 남들이 하니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팬데믹 기간 동안은 나 혼자 예배 드리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자율적입니다. 시간을 맞추는 것도 헌금을 드리는 일도 모두가 자신의 결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 두어 주 빠져도 예배 시간조차 부담스러워지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더 이상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어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버림 받았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괜히 쓸쓸해 집니다. 내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때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로 인한 자기변명은 아닌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 속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생각들이 실제 믿음생활에서는 이처럼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구성원간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바빌론에서 포로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유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아 포로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버림 받았다는 사실을 1절에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아내의 모습과 자녀들을 종으로 파는 두 가지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나누어야 할 관계에서 버리고 파는 말들이 오고 간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입니까?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던 하나님이 그들을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자식처럼 키운 한 민족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었다는 그들의 주장입니다그러나 1절 하반부를 보면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의 죄악과 배역함으로 그 땅에서 내보내졌고 포로가 되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두 주장이 엇갈립니다. 누가 맞을까요?

답은 알고 있습니다. 그 답보다 중요한 것은 버림 받았다는 이 생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입니다. 저의 경우는 하나님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43:2 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가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것이 나를 향하신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인정하고 잘못된 내 생각을 빨리 수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빠지면 대부분 성도들에게 다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과 함께 자만에 빠지는 일이 찾아옵니다.  

 

그래 살아온 날 들 되돌아보니 전부 내가 이룬 것 맞네.’ 밤잠 못 자며 일하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성취해 낸 결과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고 능력주신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느냐 없느냐를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하다가는 하나님께 혼나지라는 두려운 생각이 잠시라도 드는지요?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내 속에 함께 하는 성령의 애통함을 듣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연약해져 있을지라도 내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흘러 보내지 말기 바랍니다.

  

예수를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때마다 이길 수 있는 비결 중의 또 하나는 성도의 윤리와 도덕 책임감이 아닙니다. 사람들 시선 때문도 아닙니다. 내 속에 작은 불씨로 남아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이 불씨를 이어가는 비결은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깨닫게 하고 힘을 주는 것은 말씀입니다. 2절 중반부를 보면 하나님이 손이 짧아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어찌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건지실 수 있었겠습니까? 홍해를 갈라 그들을 위해 길을 만드시고 건너가게 하셨던 분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라면 3절처럼 하늘도 어둡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처한 어떤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지 말기 바랍니다. 버림 받았다는 소외감을 품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힘든 상황에 있을 때에도 그들을 찾아가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변하는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뉘우치도록 멀리해야만 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보지 못하고 가까이 두지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 가운데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믿느냐는 어려운 상황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 보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 것을 더욱 마음 아파하는지요? 나에게 왜 응답이 없는가를 먼저 살피고 있는지요? 왜냐하면 대부분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징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살피는 가운데 나에게 죄가 있음을 발견하면 회개와 경건한 삶의 자리로 다시 나아가는지요?

 

정말 새해 봄학기에는 우리 모두가 죄로부터 멀리 하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징계 받지 않기 위함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의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8절 말씀처럼, 나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 늘 내게 가까이 하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요셉은 경건한 삶을 통해 늘 하나님이 함께 했던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삶입니다. 비록 그의 겉옷이 남겨져 노예 신분으로 감옥으로 떨어지는 인생 밑바닥을 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쓰임 받았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팬데믹을 지나가야 합니다. 봄학기는 졸업이 있습니다. 다들 긴장합니다. 취업을 해야 되고 인턴 자리를 구해야 되고 진학을 해야 합니다. 이런 내 형편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까? 라는 의문조차 갖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늘 곁에 계십니다이 믿음 붙잡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