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1): 회복의 약속 

54:1-8

 


다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으로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는 2 년이라는 긴 시간을 팬데믹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밝은 미래와 소망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다들 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한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던 시간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통제가 있다는 것은 참 힘든 삶이라는 것을 팬데믹 기간을 통해 철저히 경험하였습니다. 어린 자녀들은 바깥에 나가 마음껏 뛰놀지도 못했습니다. 십대들은 만남도 제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결혼식도 영상으로 해야만 했던 커플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회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인지 새해가 되면 연구소나 정부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늘고,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어떤 긍정적인 지표들보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들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면, 비록 우리와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소망을 잃고 실망과 좌절이라는 같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큰 소리로 뭔가를 전달합니다. 그들을 자극하려는 의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절망감에 빠져 있거나, 듣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람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어떤 소리에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하겠습니까? 우선적으로 그들과 확실한 관계가 있다는 것부터 먼저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남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부부처럼 친밀한 관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들이 정말 사랑했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멀어지지 말아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진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다시 우리들에게 다가오시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자며 내미는 손길을 붙잡기 원합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은 단지 관계만을 기억나게 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처음 언약 관계를 맺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술에서 나왔던 고백들을 그들의 귀에 하나씩 다시 들려 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는 의도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예수를 영접한 우리들에게서도 동일한 고백을 계속해서 듣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창조주입니다. 하나님과 좀 떨어져 있다고 생각이 드는 분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 받던 시간으로 돌아가 보기 바랍니다. 나를 사망에서 건지시고 새롭게 해 주었던, 그 고백을 붙잡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말은, 하나님 이 모든 것을 언제든지 새롭게 할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손도 쓸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이 땅을, 고칠 수 있다고 대하 7:14절에서 선포하는 분입니다. 믿으시는지요? 우리가 정말 이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서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나쁜 감정과 생각에 빠져 들게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별 것 아니구나라는 무기력한 생각에 빠져 있으신지요? 변하는 것은 없고 반복되는 지루한 느낌이 드는지요? 성도는 바로 이것과 매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만약 지게 되면, 6, 7절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버림받은존재처럼, 쓸쓸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것 극복하는 비결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모든 적들을 물리치는 수 많은 군대를 가진, ‘만군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를 짓누르는 감정과 생각을 떨쳐버리고 승리할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죽음과 사망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안겨주시는 구속자/구원자입니다. 코로나가 무서운 것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려움 앞에서도, 생명으로 다시 일으키사,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든든한 우리 믿는 자의 자산인 부활과 영생을 붙잡기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다르게 살기를 원하는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성도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올수록 막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부르시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삶을 살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땅끝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구원을 베풀기를 원하는, ‘온 땅의 하나님입니다. 팬데믹이 우리를 전도와 선교의 사명자라는 인식을 잠시 잊게 만든 면도 있습니다. 사탄은 이 시간이 길어지기만을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늘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 있음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이런 관계를 잊고 살았습니다. 자신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만들었고, 긴 시간 동안 외면했다는 서운함 때문에 그분을 외면하고 살아갔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포로로 사는 것이 살만 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살고 편안하게 살지라도 평안이 없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하십니다.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공급 받을 때만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7, 8절을 보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하심과,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자비입니다. 어떤 세상 신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책임지겠습니까?

 

세상을 보면 돈과 지식을 가진 사람은 가진 자들이라 부르며 조롱했습니다. 반대로 갖지 못한 사람들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사람은 서로 미워하는데, 오직 하나님만은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영원히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피조물들을 보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설명을 하시며, 오래 동안 서먹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셨습니다.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난 뒤 바로 이어 그들에게 주실 미래의 소망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5주에 걸쳐 이 소망들을 보겠지만 오늘은 한 가지만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미래의 소망은 2절을 보면,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하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설치하는 행위를 암시합니다. 오랫동안 포로시기에 드리지 못했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가 회복 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터를 더 넓히며 휘장을 아끼지 말고 멀리 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3절에서 3가지로 말씀합니다. 1)예루살렘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게다가 열방의 사람들까지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3)황폐한 성읍들이 사람 살 곳으로 회복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약속이 우리들에게도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팬데믹이 물러가고, 우리 자녀들의 웃음소리가 예배당을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공포가 물러가고, 우리를 묶고 있던 제한들이 풀릴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든 시간에 회복의 약속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2년이라는 긴 팬데믹 속에서 자숙과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다시 새롭게 만나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오시며, 모든 삶을 제자리로 돌려 주실 것입니다. 예배자들이 모여들어 이 자리가 찬양으로 충만케 될 줄 믿습니다. 이 소망을 단단히 붙잡는 새해 첫 주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