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구원자 

3:15

 


해마다 12월에는 성탄을 맞이합니다. 성탄의 중심에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2천 번이 넘게 이 땅의 사람들은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탄은 신비롭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 종교의 창시자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게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들과는 너무 다르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눈으로 전혀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태어나기도 전에 오래 전부터 메시야로 이 땅에 올 것이라는 예언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매년 성탄이 되면 이런 예언들을 하나씩 살펴 보려고 합니다.

 

창세기 역시 주님 오실 것을 어렴풋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창3: 15절은 뱀으로 위장하여 하나님의 첫 피조물인 아담과 여자를 타락으로 이끈 사탄에 대한 심판입니다. 놀랍게도 그 심판 한 가운데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사야에 대한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 소망의 주인공이 바로 여자의 후손입니다.

 

먼저,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하와의 많은 후대의 자손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원어를 보면 단수형으로 표시됩니다. 또 본문 문맥을 보면 사탄과 대결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하게 될 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일까요? 누가 되어야 할까요?

 

결국 여자의 후손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한 개인을 의미합니다. 불순종으로 영원히 멸망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장차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 예언된 것입니다. 이것을 원시 복음’(proto evangeliu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에덴에서 인간은 사탄의 꾀임에 빠져 타락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후회와 좌절로 그냥 손을 놓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뿐인 자신의 독생자를 장차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어 세상을 구원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후손이란 말 속에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체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역사는 계속 진행되었고, 그 가운데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게 됩니다. 그들을 불러 이 땅에서 하나님을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죄로 인해 무너졌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인간을 구원할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면, 이제 새로운 방법이 인간에게 제시되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을 갈 4:4절은 하나님은 때가 찼을 때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드디어 여자의 후손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의 후손으로 온 성탄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키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 유대인들의 범위를 벗어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12절 말씀처럼 이스라엘 나라 밖의 이방인으로만 취급되었던 우리들에게도 구원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은 화려함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즐기는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류가 기다렸던 구원자가 온 날입니다. 우리는 오신 주님을 정말 환영하고 감사를 드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함께 모이지는 못하지만 각자 있는 곳에서 성탄을 축하 하기를 바랍니다

 

2:6-8절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형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성탄은 결국 세상에 살면서 우리 자신을 얼마나 비우며 살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기심으로 가득해진 모습이 혹시 교회와 가정과 개인에게 있다면 회개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 자신을 낮추어 겸손해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 닮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타락 이후 전개될 세상 역사를 보여줍니다. 여자의 후손과 사탄의 세력이 서로 싸우는 영적 전쟁터가 될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인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militant church)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군사들의 무장이 철저해야 합니다. 다음은 무엇보다 적들의 침투에 대한 경계를 게으르게 해서는 안됩니다. 군대에서 군인들이 엄청 듣는 말 중의 하나는, ‘작전에서 실패하는 군인은 용서 되지만 경계에서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영적 무장은 우리가 예수 믿을 때 믿음의 고백을 통해 마련하게 됩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고, 진리의 허리 띠를 띠고, 복음의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성령의 검 하나님 말씀을 손에 잡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슬며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적들의 침입에 대해 늘 경계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군인들의 경계에 해당되는 것은 기도생활입니다.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틈을 타고 들어오는 악한 사탄의 속임수를 교회가 미리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한번 성이 뚫리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정은 사탄의 밥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잠자는 파수꾼의 수가 많아질 때 교회와 가정은 뚫리기 시작합니다. 기도의 용사가 되어 승리하는 교회 가정 성도가 되기를 원하는 분들은 아멘으로 응답해 주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기도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시며, 기도를 강조하셨고, 기도하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늘 보여 주셨습니다. 오랜 시간 우리는 코로나로 지금은 변이로 어려운 시간을 다들 보내고 있습니다. 올 성탄에는 개인과 가정을 넘어 이 땅에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더 많아지게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탄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상하게 한다는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와 타격을 입힌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발꿈치는 신체 중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위를 말합니다. 비록 여자의 후손에게 해를 입히긴 해도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자의 후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십자가 위에서 사탄의 머리를 짓눌러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궁극적으로 사탄과 그의 세력과 싸워 승리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또한 사탄이 머리가 상한다는 것은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패배를 당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망 권세를 깨드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는 사탄은 상한 머리를 움켜쥐고 최후 발악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나팔 소리가 들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에는 영원한 사망의 불 구덩이 가운데 사탄은 추종자들과 함께 던져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전쟁터에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은 먼저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초조 불안 걱정 염려 떨림이 내 속에 밀려올 때 찬양으로 날려 버려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와 교만이 생기고 시험이 밀려올 때 찬양으로 물리치고 말씀으로 밀어내야 합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줍니다. 우리 믿는 성도 역시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성령이 늘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이긴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시험 받는 장면 바로 앞에 반드시 읽어야 할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4:1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는 말씀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시험을 피하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성령 충만한 분은 시험도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반대입니다. 이것이 믿음생활입니다. 성도의 현실입니다.

 

여기서 보아야 할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시험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사람은 시험을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시험이 오면 더욱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통해 성령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싸움에서 이겨서 하나님이 쓰고자 하는 곳에 더욱 귀하게 사용되는 그릇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탄주일을 맞아 창세기에 예언된 여자의 후손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에덴에서 인간의 타락 후 장차 올 여자의 후손은 영적 전쟁을 예고했습니다. 그러고 이 땅에 오신 여자의 후손은 우리가 전투에서 이길 수 있도록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짓누르고, 부활을 통해 승리를 확증해 두셨습니다

 

또한, 여자의 후손으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도울 성령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는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 줄 믿습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 시험에서도 넉넉히 승리할 줄 믿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탄이 되어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소망으로 맞이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