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9): 최고의 선택 

9:1-6

 


살다 보면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잘 한 선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지금 함께 사는 분과 부부가 된 것입니다. 살면 살수록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진짜 잘한 선택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기로 한 것입니다. 왜 최고의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예수 믿고 정말 손해 본 것 있으신지요?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있다고 해도 반대로 받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세상 것은 다 가질 수도 없고, 다 누리지도 못하고, 두고 가야 합니다. 또한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갈 천국은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누리는 곳입니다.  

 

어느 것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것이 정말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는 분만 아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를 보면서 최고의 선택을 한 사람을 이미 보았습니다. 기생 라합입니다. 그녀의 선택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살렸습니다. 오늘은 가족을 너머 한 민족이 사는 선택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여리고와 아이 성 함락 소식을 듣게 되고 곧 자신들에게도 위기가 닥칠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 사이에서 두 가지 선택이 나타납니다. 먼저, 9:1절을 보면 가나안 남부의 산지와 평지 해안 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해 진격해 오는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전략을 구상합니다. 이스라엘 보다 더 큰 세력으로 뭉쳐야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강력한 동맹만이 자신들에게 닥친 난국을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왕들이 모여 가나안 남부 군사 동맹을 결성하게 됩니다. 2절에 일심으로라는 의미는 의견이 하나로 뭉쳐졌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민족들이었고 평상시에는 서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툼을 중단하고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이들의 단합의 결과는 다음 장 10장에서는 결국 대패로 끝납니다. 하지만 일단 전략상으로 보면 지금까지는 잘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한편, 3절을 보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가나안 남부 동맹에서 이탈한 기브온 족속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족속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4절과 6절을 보면 그들은 꾀를 내어 사신으로 위장하고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이스라엘을 속이려고 합니다.

 

12-13절을 보면 말라 곰팡이가 핀 떡과 오래된 포도주 부대와 낡은 옷과 신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이런 것을 본 이스라엘은 14절에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이어 15절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속임수에 완전히 속아 화친을 맺고 조약을 맺어 맹세를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판단은 단순했습니다. 자신들이 보기에 이 사람들은 가나안 일곱 족속처럼 멸절의 대상이 아니기에 죽이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16절을 보면 이들의 정체는 사흘 뒤에 드러나게 됩니다. 7절에 의하면 이들은 진멸의 대상인 가나안 일곱 족속들 중의 히위 사람들이었습니다.  

 

17절에 의하면 큰 성읍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절을 참조하면 장로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왕정체제는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10: 2절을 보면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이라고 소개합니다. 아이보다 더 크고 그들은 강했고 주위 다른 성읍들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브온은 여리고와 아이에 가까이 있었기에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패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동맹을 깨고 독자노선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 입장에서 이들을 보면 자신들만 살기 위해 동맹을 이탈한 반역자들이며 비굴한 항복자들입니다.   

 

그러나 나중 기브온이 얻게 될 축복을 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연 그들의 선택이 최악인지 아니면 최선이었는지 이제 따져 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은 나중 그들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도 언약을 파기할 수 없었습니다. 21절을 보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종으로 삼게 됩니다.

 

비참 합니다. 자신들 뿐만 아니라 대대로 자녀들마저도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싸워보고 종이라도 되었더라면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약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웠더라면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진멸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들은 저주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주로 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섭리를 죽기 직전이라도 깨닫고 구원에 동참하게 될 사람들의 예표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흑암 중에 거하며 멸망으로 들어갈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예시를 구약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4:16절에서 마태는 예수님의 공생에 시작을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라고 선포합니다. 이 은혜는 예수님 이후 우리들에게까지 온 것입니다.  

 

다른 가나안 족속들은 동맹을 형성했습니다. 그 결과는 여호수아 10장에서 보듯이 이스라엘과 대항하다 멸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기브온 사람들은 마 16:26절 말씀처럼, 무릇 천하보다 각자의 목숨이 더 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생명을 보존할 최고의 선택을 한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거역하라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배교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10:28절 말씀처럼,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가 보면, 기브온 사람들은 23절처럼 대를 이어 자신들의 자녀들 까지도 종이 됩니다. 자신들의 생명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자유를 박탈당한 체 종 노릇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종살이를 하느냐는 다릅니다. 과연 그들의 선택은 저주 받은 것일까요? 그리고 진짜 종살이였을까요?

 

비록 기브온 족속은 종살이를 하지만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21절을 보면,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고 족장들이 말합니다. 그런데 22절과 23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고 여호수아가 명령합니다.

 

나중이라도 그들의 신분이 밝혀져 멸절 당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베풀어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살기를 요청했던 기브온 거민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성전에서 일하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개인의 종노릇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막에 소속되어 흐드렛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성막에서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일은 레위 지파의 임무입니다. 이제부터는 기브온 족속들이 그 일을 맡아 하게 된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막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봉헌된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가나안의 우상숭배가 이스라엘에 스며드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성소에서 일하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가나안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축복을 받는 과정을 보기 바랍니다. 24절과 25절에서 속인 이유와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맹세를 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가 죽을 때 지옥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멸망 당할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나의 구주로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다시는 눈물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나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진짜 믿는다면, 한 가지 할 일이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최고의 선택을 하도록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