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7): 온전한 순종  

6:1-9


 

일반적으로 명령에 대한 복종이 잘 이행되는 집단이 군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는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대해 순종이 일어날까요? 이것을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해 오는 우리 자신들은 어느 정도는 느낌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아래 주의 말씀을 따르는 백성들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순종이 쉽게 잘 안 됩니다. 특별히 나에게 손해가 온다고 느껴지는 순간 멈칫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뭔가 내 생각에 합리적이지 못할 때는 발을 빼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을 하나 발견합니다. 지금까지 여호수아에게 황당한 명령들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명령에 순종할 때마다 기적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강둑이 물로 넘쳐나는 시기에 요단을 건너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순종하며 발을 넣는 순간 강물이 멈추어 서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 적들이 바라보고 있는 아주 근접한 거리에서 이스라엘을 무력화 시키는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이것조차 따를 때 어찌된 일인지 6:1절에 의하면 여리고는 문을 굳게 잠그고 나오지도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이 두 명령은 시대를 막론하고 누가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게다가 명령을 실행하는 본인들에게는 생명의 위협까지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철저히 순종하며 기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수 5:13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세겜을 떠나 여리고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또 한번의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6:3-5절에서 받게 됩니다.  

 

일곱 나팔을 잡은 일곱 제사장은 언약궤 앞에 서고, 군사들과 함께 여리고 성 주위를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돌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 날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쳐 부를 때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황당한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이번에도 듣다 보면 정말 말이 안됩니다. 이미 정탐꾼을 보내 여리고 성의 심리상태는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떨고 있긴 하지만 여리고 성은 대단한 성입니다. 가나안의 본토로 들어가는 관문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리고는 잘 정비되고 단단한 구조로 건축되었습니다. 자연 암석의 기초 위에 일단 9m의 높은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두께 1.8m의 외벽과 3.5m의 내벽을 갖춘 철옹성이었습니다. 만약 여리고 사람들이 성문을 잠그고 방어전이라도 하면, 전략상 토성을 쌓고 공격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경우 상당한 인력이 소모되고 시간이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의 희생과 피로도 높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군량미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5:12절을 보면 길갈에서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만나가 멈추어 버립니다. 식량 비축이 안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이런 경우 이스라엘은 빠른 시일 내에 기습 공격을 감행해서 성을 전멸시켜야 합니다. 성문을 열려면 기습 특공대라도 침투시켜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전쟁에 능한 여호수아였지만 도저히 방책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고민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준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렇게 엉뚱하게 들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조차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는 말씀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그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순종입니다(#1).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지는 가운데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절대순종이라고 2 주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온전한 순종이 마음 판에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다시 한 번 여리고 성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한번 더 보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 주위를 돌아야 합니다. 단지 포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수적 우세도 보이면서 그렇게 하려면 대략 몇 명이나 필요할까요? 우선 6:6절을 보면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앞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 앞에는 일곱 양각 나팔을 잡은 일곱 제사장이 언약궤 앞에 서게 됩니다.   

 

이어서 9절을 보면 이들 나팔 잡은 제사장들 보다 더 앞서 가는 무장한 군인들이 있습니다. 4:12-13절을 보면 이들은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땅을 유업으로 받은 지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함께 강을 건너와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군인들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4만 명에 이르는 군인들이 가장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나팔 부는 제사장들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따라갑니다. 그리고 이들 뒤에다른 군인들이 동원됩니다. 두 지파 반에서 4만 명 정도라면 나머지 지파 군인들이 동원되면 16만 명 이상이 여리고 성 작전에 참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20만 명).

 

일단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 받은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달합니다. 이때 사람들 가운데는 여러 생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하나님이 이번에도 기적을 행하실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면 다 이긴 전쟁입니다. 게다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정탐꾼을 보내 성에 대해 자세하게 모든 것을 조사했습니다.

 

여리고 성의 사람들이 놀라서 떨고 있다는 정보를 이미 라합에게서 들었습니다. 너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아 성문을 스스로 열고 항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해 봅니다. 아니면 이 지역에 지진이 자주 있기에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건 결론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승리가 보장된 전쟁에서 칠일 동안 군대가 참석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마지막 날만 다 같이 모여 도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안될까요? 또 너무 많은 수가 한꺼번에 참가하면 힘드니 6으로 나누어 교대하며 돌고 마지막 날만 다같이 모여 돌면 어떨까요? 여러 가지 제안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차단시켜 버립니다. 6:3절에서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 그리하라고 구체적으로 명령까지 내립니다. 군대를 나누어서 돌자는 제안을 무시하듯 모든 군사가 동참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만 돌자는 사람들의 제안들을 경고나 하듯이 하나님은 매일 성을 돌 것을 명령하십니다. 여전히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우리도 늘 이렇게 순종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무엇일까요? 말씀대로 순종을 원하지만 이스라엘처럼 구체적으로 말씀이 우리들에게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구체적으로 하라고 지시하면 따라 갈텐데전혀 그런 것이 없다는 불평입니다. 여기서 순종을 원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일단 멈추는 것입니다. 그보다 우선될 것이 있습니다. 다름아니라 분명하게 기록된 하나님 말씀부터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확실하게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귀에 들려 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또는 하라고 명확하게 글로서 보여지는 말씀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살기가 허다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아주 상세하게 말씀하시면,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아닌데요라고 대꾸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지요?

 

구체적이든 구체적이지 않든 내 생각과 다르고, 희생을 요구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우리는 일단 불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에도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순종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점점 더 상세하게 말씀하며 우리는 그분이 내게 더 다가옴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온전한 순종은 그렇게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실 내 일 한다고, 내 편리를 위해 하나님 말씀 한번 무시한다고 죽지 않습니다. 재산 피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에는 금이 갈 수도 있다고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금이 가면 집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순종은 사소하게 들리는 것 조차도, 하찮게 보이는 것 조차도,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따르고 행하려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2).

 

온전한 순종을 이야기하다 보면 본문에서 한 가지 논란거리가 보입니다. 여리고 성을 일곱 째 날까지 돌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이럴 경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안식일을 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기 전에 모세로부터 신 5:13-14절에서 안식일에 대해 철저히 배웠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명령을 받는 그 자리에서는 생각나지 않아서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하나님께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 하나님이 율법을 스스로 안 지키면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까?” 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우선으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것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렸겠느냐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121: 4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말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막 2: 27절에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28절에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에도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그 날에도 일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리고 성을 도는 한 날이 안식일이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사랑하고 선택한 이스라엘을 위해서 허락하신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의 모순을 보이고서라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 혼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엄청난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것도 알려 주고 계십니다.

 

,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엉뚱한 분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연약하기에 우리 수준으로 낮추어 하나님을 경험케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이 재미가 점점 붙어 다음에도 계속 신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순종을 우리에게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복된 부름에 순종으로 응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