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으로 감사할 것 

5:8-9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있기도 하지만, 한 해를 보내기 전에 감사할 것을 챙겨 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들을 돌아보면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수년 전에 10가지 감사에서 시작하여 100가지 감사를 한번 적어보는 시간이 기억이 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천 개의 감사를 해 본적이 있습니다. 천 개를 적다 보니 대충 감사가 아니라 세밀하게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구체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더 세밀한 감사를 하면 할 수록 모든 성도가 다 귀한 분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를 하다 보면 회개가 동시에 일어나게 됨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주시고 누리고 살아가게 하시는데, 왜 내가’ 없다’고 불평만 하고, 하나님께 더 달리고만 졸랐던 나를 보게 됩니다. 감사로 시작했다 회개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감사가 주는 풍성함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감사할 것들을 한번 기록해 보는 것은 좋은 신앙습관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우리 모두가 감사할 것들 중 하나를 찾는다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든 팬데믹 가운데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건강 주시고 능력 주시고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백신이 5-11세 어린이들에게도 접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코로나19 펜데믹의 종식을 위해 작년 3월부터 가능하신 분들은 한끼라도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약속으로 주신 말씀은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전 세계 많은 교회들이 기도와 금식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함께 해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월요일 금식은 12월까지만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기도는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더 많은 분들이 기도에 동참하기 위해 새해에는 기혼과 청년 목장 모임이 있는 금요일 저녁으로 시간을 변경하려고 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이 새 일을 이루실 것을 기대하고 온 교우가 기도에 더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두 번째로 우리 모두가 감사할 것은 새로운 주일 예배 장소를 주신 것입니다. 40년이 넘게 학교 캠퍼스 건물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코넬대학의 건물 운영 방침에 변경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 프로그램과 새벽예배 등을 학교건물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새로운 예배 장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많은 주위 미국 교회들 가운데서 Trinity 교회가 장소를 우리들에게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이곳에서 올해 8월 말부터 대면예배와 온라인 예배 두 체제로 주일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있어 주일 마다 성도가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도 나누고, 잠깐이지만 친교도 나눌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매일 새벽부터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우리가 예배 드렸던 학교 건물에는 십자가를 걸 수 없어 매주 십자가를 들고 올라가 세워 두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독교는 십자가가 없이는 말이 안됩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핵심이며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십자가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매일 예배당에 들어 오면서부터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서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게 만듭니다

 

사실 교회적으로도 감사할 일들이 많지만, 가정이나 개인적으로도 분명 감사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들어오기 힘든 학교에 입학하신 신입생들도 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미 직장을 얻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다니는 회사에서 승진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찾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 감사할 것을 찾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남아있는 12월까지 분명이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가정들과 개인들이 가진 감사 제목들을 12 31일 송구영신 예배 때에 나누려고 합니다. 이타카에 남아 계시는 분들이 모여 함께 드리는 예배에 풍성한 감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해마다 은혜로운 간증들을 남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작년 정말 힘든 취업상황에도 많은 분들이 직장을 얻어 이곳을 떠났습니다. 올해도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돌보심에 대한 은혜의 간증이 쏟아질 줄 믿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미리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을 정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본문으로 돌아가 모든 성도가 우선적으로 감사해야 할 것을 찾아 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너 이미 가나안 땅 길갈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길갈에서 할례를 실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적들에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절대순종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길갈에서 할례를 실시하고 난 뒤 바로 말씀이 여호수아에게 주어집니다. 5: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애굽의 수치’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야곱의 가족들이 이민자로 갔지만, 그들은 나중 민족이 애굽의 종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요셉이 알던 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나타나면서 생긴 일입니다. 정치적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수치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생활을 한 것 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광야를 방랑하는 벌이 주어집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은 이스라엘에게 수치를 안겨 주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나 애굽사람들이 볼 때 그들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들을 탈출시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능력이 없어 그들을 인도하지 못하고 광야에 버렸다는 조롱입니다

 

“차라리 애굽에 남아 우리의 종 노릇이나 계속하지. 그랬더라면 배라도 부르고, 잠도 편안히 잘텐데!. 괜히 나가서 광야나 돌아다니고. 안 해도 될 고생 한다” 는 애굽 사람들의 비웃음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애굽과 연관된 이런 수모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수치들을 그들에게서 떠나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함으로 종살이하던 수치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첫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자기 백성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모세라는 특출한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을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애굽에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종살이 했던 노예의 후손이라는 수치가 일단 사라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땅을 가지며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구약에서의 이스라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모형이라고 보면 됩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결국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모르고 사탄의 종노릇 했던 우리의 과거의 수치가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

 

사탄이 다스리던 죄와 사망의 나라를 떠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 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정죄와 심판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받아야 할 비난을 친히 감당해 주셨습니다. 대신 창에 찔려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수치가 그분에게 전가되어 사라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죄에 대한 값을 더 이상 메기지 않습니다.  

 

8:1-2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어서 롬 8:33-34절 말씀처럼 그렇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또 누가 능히 예수의 피로 주 안에서 의롭게 된 사람들을 죄가 있다고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무시 못합니다. 또한 예수 안에서 의인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하여 값싼 은혜라고 어느 누구도 조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장 근원적이고 우선적인 감사를 발견하는 축복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를 존재케 한 것에 대해 감사조차도 못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 실현했다고 과연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이스라엘에게는 풀어야 할 한 가지 수치가 더 남아 있습니다. 가나안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생활을 한 것에 대한 수치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린 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린 무능력한 신이라고 오히려 조롱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믿고도 계속 죄 가운데 빠져 있게 되면 불신자들로부터 하나님까지 비웃음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주어 거룩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거룩만 유지하는 것은 죄를 소극적인 태도에 불과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는 이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자리까지 나아가도록,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너무 연약해서 하나님 영광 돌리는 자리에 서기가 참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이것을 아시고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이 연약한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죄 짓는 자리에서 피할 길을 만들며 도망치게 합니다. 다시 죄짓는 것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을 조롱거리를 막아 주십니다. 너무나 감사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늘 우선적인 감사제목을 다시 찾아 묵상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받아야 할 심판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수치를 예수의 보혈로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죄로 받게 될 세상에서의 수치를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심으로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어떤 것보다 늘 우선으로 이 두 가지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