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5): 대순종 

5:1-5


 

오늘 세례를 받은 분들에게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예수를 나의 구주로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두 분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대단한 결단을 한 날입니다.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귀한 만남인 것이지요.

 

인생 살다 보면 수 많은 만남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사는 날 동안만 유지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와의 만남은 유일하게 그 순간부터 영원한 관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 만남은 인간이 풀 수 없는 죄와 죽음이라는 고뇌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축복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았던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해 준 시간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를 만날 때, 정말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생이 태어나서 살다가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죽음은 죄로 인해 오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유일하게 죄 없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앞에 서면, 허물과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죄를 감추고 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죄 없다고 거짓말 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록, 나의 생각과 마음의 추함까지 다 들여다 보게 만드십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죄로부터 구원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곳입니다. 거듭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알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 없는 교회는 사교클럽에 불과합니다. 영혼 구원이 있어야 죽지 않고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긴 역사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자이며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이 쏟아져야 합니다. 생명 얻는 복음이 들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한 사람도 예수를 만나지 않고 이타카를 떠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사명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코비드로 모임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다양한 모임을 갖고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사람들을 오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돌 잔치, 이사 후 집들이, 생일 잔치 등입니다. 그러나 그 모임들은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안 믿는 분들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나타나야 합니다. 대화를 하지만,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예수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들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건한 삶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와 성찬입니다.   

 

비록 형식은 달라도, 신약의 세례는 구약에서 할례가 갖는 의미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먼저 할례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경배하는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그들에게 주신 십계명을 따르고, 눈에 보이는 우상 같은 것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더욱 할례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곡식들을 다 베지 않습니다. 땅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구석에 곡식을 남겨 두었습니다. 삼 년에 한 번씩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백성으로 살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이런 구별된 삶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식을 이웃 주변국가들의 사람들에게 강하게 심어주었습니다.  

 

17:12절에서 보듯이, 아브라함 때부터 할례는 시작 되어 이어가고 있었습니다.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 길갈에 진을 치게 됩니다(4:19). 그때 하나님께서는5:2절에서 여호수아에게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4-5절을 보면 애굽에서 나온 세대들은 할례를 했지만,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급박한 이유는 바로 5:10절에 언급되는 유월절이 바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12:48절에 의하면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유월절에 참석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할례를 하긴 했지만 사실 매우 위험스런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와 적들과 지금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창 34:25절을 참조해 보면 3일 정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상처가 낫기만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생명의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짓입니다.

 

게다가 길갈은 여리고 성까지 겨우 3km밖에 떨어진 곳입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의 첩보 수집력은 대단했음을 지난 라합 이야기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정보 전에도 밝은 여리고 성 왕이었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할례로 무력해진 이스라엘을 일격에 공격이라도 한다면 가나안 정복은 물 건너 가는 것입니다.

 

200만이 넘는 온 공동체의 생명을 건 무모한 짓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순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종은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 내 목숨을 내어 놓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절대 순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무런 계산도 없습니다. 마치 마 26:39절처럼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 같습니다. 내 뜻 챙기고 내 형편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냥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몇 천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제는 성도님들에게 어떠한 상황에도 올바르게 순종할 수 있는 비결을 잠시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면 불가능이 없다는 믿음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더 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5: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가게 하셨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앞에서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한 것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는 뒤로 물러나 있는 무능력하고 비겁한 신이 아님을 증명해 주십니다. 둑이 넘치는 요단 강을 멈추게 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 할 수 없습니다. 요단을 멈춘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동행하면 기적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녹게 만들고 정신을 잃게 만든다는 확신을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심어 주었습니다. 심리 전에서 패배는 전쟁에서 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까지 배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질 때 순종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데 왜 순종하지 못하겠습니까? 순종은 자연스러워 집니다. 이길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순종하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은 직접 현장에 나타나서 늘 승리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하나님은 함께 해 주실까요?

 

2:38절을 보면, 하나님이 성도들과 직접 동행하시던 구약과는 다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날은 예수 믿고 세례 받은 성도들에게 성령 하나님이 늘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성도는 성령이 함께 함을 믿고 성령님께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성령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이끄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줍니다.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의지에 힘을 주어 드디어 행동으로 옮기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나와 함께한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나에게서 어찌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선한 말과 생각이 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늘 자신의 말과 생각은 옳고 선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최종적으로 확인시켜 주게 됩니다. 오늘 세례 받은 분들과 성도님들은 절대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