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분향단   

30:1, 6-9, 34-35

 


지난 주부터 코넬 가을학기 수업이 시작 되었습니다. 오늘 대면 예배에 오신 신입생 여러분들을 다시 한 번 더 환영하고 입학을 축하 드립니다. 재학생들과 우리 성도님들도 오랫동안 얼굴을 뵙지 못했지만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로나 변이로 걱정은 여전하지만 대면 예배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재학생들은 많은 변화를 직감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ATH을 떠나 새로운 미국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물론 우리 청년들은 주중 성경공부나 금요 청년 예배는 그대로 ATH에서 드려지게 됩니다. 주일 날 교회 오실 때 청년부가 제공하는 라이더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가을학기는 우리 교회로서는 새로운 출발이기도 합니다. 낯선 곳에서 예배를 드려서 오는 길이나 주위 많은 것들이 생소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원하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 예배의 자리에 서 있음을 믿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실 줄 믿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성막을 살펴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소 안에 두었던 등잔과 떡상 이외에 분향단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떡상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보았던 등잔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늘 밝혀 보여지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늘 읽은 출 30:1절에 언급된 분향할 제단은 과연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궁금합니다. 분향단은 성소 안에서 향을 태우는 것입니다. 분향단에서 향이 타오르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30:7,8절에 의하면 제사장은 아침과 저녁으로 향을 피우게 됩니다.

 

하루에 두 번 기도하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아침에서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처음 눈을 뜰 때 감사로 시작해서 하루의 마지막을 감사의 기도로 매듭짓는 성도의 삶을 나타내 줍니다. 살전 5:17-18절을 보아도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먼저 묻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도 모른체 하면 정말 무시하는 태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며 늘 함께 하시는데 당연히 그분께 뜻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출30:6절을 보면 분향단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분향단은 지성소 안에 둔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와 만나는 증거궤 위인 속죄소와 가장 가까이에 두라는 뜻입니다. 이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기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 하시는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체험하게 만듭니다.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피시고 내 아픔과 고통을 들어주시고 응답 해 주십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30: 9절을 보면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를 하나 더 말씀해 줍니다. 특별히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만 드리는 정해진 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경고로 보시면 됩니다. 설명 보다는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부르짖는 기복적인 기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표와 욕망을 달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해도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까지 올라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가 될 수 있을까요?

 

30:7절을 보면 향기 나는 향을 사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기도에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에 향기가 날 수 있을까요? 가장먼저 예수를 모르던 사람이 주안에서 거듭나서 드리는 기도가 향기 나는 기도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죄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기도에 향기를 낼 수 없습니다.

 

다음은, 예수를 믿고 난 뒤에도 삶에 변화가 없을 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 기도는 향기를 잃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을 포기하십니다. 아름다운 미사어구가 향기 나는 기도가 아닙니다. 투박하고 말이 좀 정리가 잘 안된 기도라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산다면 기도에 향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기도가 해답이 되어 돌아 오지 않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이있습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 말씀대로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내 기도에 향기가 나지 않음을 빨리 눈치를 채야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향기를 좋아하실까요?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참 궁금합니다.

 

그 답은 출 30:34절에서 하나님 앞에서 피어 올리는 향을 만드는 재료를 살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일정한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을 유황에 섞어 향을 만들라고 합니다. 먼저, 다양한 향품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폭넓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아가라는 의미로 들려집니다.

 

기도의 폭을 넓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새 학기에는 내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늘이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뉴스를 듣고 그것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폭이 넓어지면 더 깊이 하나님과 만남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비밀입니다.   

 

나의 기도가 한 쪽에만 치우친 편중된 기도라면 이제는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는 다양한 기도로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집중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무나도 많은 기도제목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보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30:35절에서는 특별한 것이 향의 재료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소금입니다. 소금은 뻣뻣한 재료를 부드럽게 만들고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 18:19절을 보면 소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 없이는 응답은 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성경인물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붙잡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진짜 따져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이 과연 믿음 위에 서 있는가 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기도에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다고 믿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는 사람에게 나의 응답이 될 줄 믿습니다.

 

다음 재료는 소합향입니다. 물방울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방울 방울 떨어지는 수액에서 정제한 것으로 봅니다. 소합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배어 나온다는 의미를 또 가집니다. 우리 기도는 내면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깊은 심령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의 자리에 설 때 이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게 되면 사람의 중심이 변화고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인사를 나누고 친교에 초대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힘든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들어와 관심이 생깁니다.  

 

세상을 보면 기도 제목들이 보이고 들려옵니다. 가난한 나라들이 코로나로 더 힘들어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인권이 유린되고, 믿는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뉴스를 듣고 나는 기도하는 사람인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행동하는가? 한번 자신을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뭔가 행동을 취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정치적 혼돈으로 발생한 난민들과, 가난을 대물림 하는 사람들과, 자연 재해로 구제와 봉사가 필요한 곳에 관심을 갖고 돕는 일에 참여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내 중심에서 배어 나오는 향기 나는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격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성도가 되고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심령을 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 행동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의 향기를 즐겨 받기를 소원합니다.

 

다음은 나감향 입니다. 지중해 연안의 조개 껍질을 부수어 채취한 향으로 추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껍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서지고 깨어진다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 향기를 하나님이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이 깨어져야 합니다. 껍질은 세상에서 살면서 똘똘 뭉친 나 중심의 자아를 말합니다. 절대로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깨어져야 합니다. 내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편견이 깨어질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낼 수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 앞에도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사울이라는 청년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때 행 9:18절에 의하면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게 됩니다. 자신의 겉을 싸고 있었던 단단한 율법주의를 깨뜨려 버리고 은혜를 체험합니다. 우리 역시 나를 싸고 있는 자존심, 잘못된 삶의 방식과 생각들을 다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깨뜨리며 나아가서 드리는 기도를 받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저 사람만 바뀌며 다 되는데가 아니라 내가 바뀌면 하나님은 응답해 주십니다. 이기적이고 내 것만 따지는 삶을 깨뜨릴 때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 장소를 미국교회에서 드리게 되면서 할 일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팬데믹 기간이라 우리 스스로의 방역을 위해서 기혼과 청년이 한 팀이 되어 목장별로 청소를 하게 됩니다. 힘을 모아 우리 다음에 오는 교회가 예배를 잘 드릴 수 있게 섬겨 드리는 일에 다들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직장생활도 보기를 원합니다. 나를 깨드리지 못하여서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실험실이나 직장 동료에게 아직 내가 예수 믿는 성도임을 드러내지 못했다면, 이것 역시 우리가 깨드려야 할 것 중의 하나입니다.

 

퍈데믹이라는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더 따뜻하게 대하고 위로를 전할 때 내 동료가룸메이트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새 학기에 새롭게 온 십입생들이나 새가족들이 우리 코낼한인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자신을 내어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예수를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풍자향입니다. ‘풍성하다’, ‘기름지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향기가 매우 짙은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 우리 신앙 생활에서 풍겨 나오는 여유로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 보기에 너무 분주하고 힘들어 보인다면, 주 안에서 평강과 여유를 그들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여유로움은 시간이 나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바쁜 가운데도 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에서 다들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여유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간 관리와 성실함이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시계를 갖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계는 내가 조정하지 못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시계는 내 것입니다. 가장 가치를 두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는 태도입니다. 순서가 꼬이면 안됩니다. 잘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가장 우선을 주님께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주님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여유라는 마음의 평강과 휴식을 주십니다. 시간의 여유는 우리가 주님께 먼저 드릴 때 허락해 주십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도와 말씀으로 하루를 주님과 함께 열어 가기 바랍니다. 고요한 시간에 주님과의 대화가 없이는 세상에서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앞서 가시며 길을 열어주셔야 우리는 세상에서도 형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 보다 앞서 가나안을 향해 나아 갔습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길은 내 힘이 들어가야만 합니다. 또 꼬이기 쉽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일에 능하신 전능하신 분이기에 좀 시간이 지체 되어도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만드는 길을 그냥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때 세상 사람들에게는 생기지 않는 여유로움을 즐기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기도는 결국 내 삶이라는 결론입니다. 향기 나는 삶이 되지 못하면 내 기도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는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1)예수를 만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회개의 삶이 나의 기도 가운데도 향기 되어 나타납니다. 내 중심에서 변화된 삶이 베어 나오는 기도를 기뻐 받아주십니다.  

 

2) 아직도 깨어지지 못한 나의 습관과 중독이 있다면 완전히 부수고 깨드려 버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오락이든 마약이든 게으름이든 미루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지 버려야만 살 수 있습니다. 깨어지지 못한 인격은 하나님 앞에서 향기를 낼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3) 삶의 여유는 하나님을 믿을 때 신뢰하는 만큼 우리 속에서 생겨납니다. 모든 염려를 맡기고 하나님을 기다릴 때 맡길 때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여유가 내게서 생겨납니다. 실험실 연구에서 논문들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조급해 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는 향기를 올려 드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향기 나는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회개의 향기가 삶의 중심에서 올려지기를 바라고, 욕심과 고집과 자기주장과 교만과 분노가 철저히 깨뜨려져 하나님이 기뻐하는 향기가 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삶의 여유가 우리들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향기로운 삶이 나의 기도가 되어 날마다 올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