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4): 등잔대    

25:31-39

 


지난 주부터 학교가 신입생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어려운 관문을 넘어 코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입학을 축하합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지켜 주시고 함께 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감사한 것은 작년 신입생들에 비하면 대면으로 수업을 시작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전 세계가 아직 코로나의 팬데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갈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시고 학업에 전념해 가길 기도합니다. 우리 코넬한인교회는 이곳에 오는 모든 분들이 주님을 만나 거듭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잘 이어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은 오늘까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다음 주부터는 Trinity Lutheran Church 에서 대면으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코넬대학의 건물 운영방침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40년 넘게 예배를 드리던 ATH을 떠나지만 새로운 예배 장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수고로 임시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한 지붕 밑에 두 가족이 살면 어려운 점도 있지만, 잘 협조해 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교회는 앞으로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예배가 드려질 곳을 찾고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대 속에서 몇 주 동안 예배가 무엇이며 진정한 예배자는 어떤 모습인가를 성막을 통해 살펴오고 있습니다. 성소 안에는 떡 상, 분향단 그리고 오늘 본문 출 25:31절에서 보는 것처럼 등잔이 있습니다. 등잔은 성소를 밝히게 됩니다. 이 밝게 빛나는 등잔이 오늘날 우리성도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또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교회와 성도다라는 많은 해석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강주일을 맞이해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소 안에 비추는 이 등잔을 하나님의 뜻으로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많은 성도님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오늘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성소에서 밝게 비추는 등잔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등잔 빛은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너무 좋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많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간단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오늘 본문 출 25:31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등잔은 밑판과 줄기, 잔과 그리고 꽃받침과 꽃이 있는데 이것들이 전부 한 덩이로 연결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등대는 가운데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에 3개씩 6개의 가지가 있습니다. 6개의 가지들이 한 줄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줄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가지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이 땅의 성도들은 그리스에게 연결되어 있어야 살 수 있고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1:22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의 머리로 예수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2:19절에, 머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공급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게 붙어 있어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 못하는 때는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과의 단절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후 11:2 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정결한 신부입니다. 신부는 신랑 되신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관계를 놓아버린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님 오실 때까지 지켜나가야 영적 순결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라보아야 할 주님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주님과 단절되는 순간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야 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부모를 떠나 이제 새로운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생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몇주 뒤면 바빠질 학업 일정에도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예배 생활을 철저히 하며 주님과의 관계를 놓아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고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25:40절을 보면 이 등잔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양식대로만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결국 말씀대로 살려는 순종이 사라지면 하나님의 뜻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계시는지요? 그렇다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 뭐라고 말씀 하는가?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먼저 기도합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전달될까요? 귀로 들려질 것 같지만 사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마음)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러면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이때 나의 바램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면 할렐루야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님들의 경험은 어떻던가요?

 

55: 8-9절을 보면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의 것과 다른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때 다들 갈등하게 됩니다. 갈등은 내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들었던 것과 차이가 나면 날수록 더 심해집니다. 결국 마음과 머리의 싸움입니다. 여기서 기도할 때 주신 마음이 무엇이며, 내 머리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잘 구별하고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에서 드려온 것과 머리 속의 생각이 뒤죽박죽 얽혀 혼돈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사탄까지 개입합니다. 어떻게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올까요? 가롯 유다에게 사탄이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 넣었다고 합니다. 사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불을 더 붙입니다. 손해와 이익을 따지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는 거의 죽음의 지경이 되는 것이지요. 마음과 생각을 구분하는 것이 힘든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들려 오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성도는 이것을 들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인 기도를 통해서만 들려 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기도의 양을 늘여야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그리고 내 마음을 훔치려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지난 주일에 나눈 것처럼 영의 양식인 떡 상의 떡인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을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으로 정기적으로 읽도록 도전을 드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중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분명해 집니다. 4:23절에 의하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은 선한 것과 악을 구별하는 양심이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4:6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실 때 우리 인간의 생각 속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보내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이 자리잡으면 안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내 마음에 두 영을 자리잡게 하는 것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령은 그에게 거할 수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님은 알고 계십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심판대 앞에 설 일이며 멸망 당할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영벌 가운데서 나를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할 자리에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진정으로(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전부 내가 주인 되었던 삶을 내려놓고 내 인생의 새로운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임을 입술로 고백해야만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귀에는 들리지는 않지만 내가 한번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님의 거룩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칭의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보혈로 의롭게 됨을 입는 순간입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입니다. 그때부터 내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들어 올 수 있고 나와 함께 내주해 주십니다. 그런 뒤로부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전에는 점을 보러 다니거나 신접한 무당을 찾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꼭 그렇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 사로잡혀 있던 삶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고 부인하지만 우리 모두는 전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던 때에 사탄은 우리의 주인 노릇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누구에게 지배당하고 있는가는 내 입술의 말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타납니다. 사탄에게 빼앗긴 마음은 고후 11:3절 처럼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함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은 내 속의 그 마음을 잘 드러내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과 시기하는 말과 남을 미워하는 말이 나오면 이것부터 회개하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시면, 등잔의 타다 남은 심지를 자르는 불 집게와 그 자른 심지를 보관하는 그릇인 불 똥 그릇이 있습니다. 이 두 기구를 항상 등잔 옆에 두는 이유는 새 불을 붙이기 위해 등잔 심지를 매일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 성도는 기도 가운데 항상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해 주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을 회개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마5: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 하지 않고 우리의 죄가 있는 상태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회개하는 심령만이 거룩을 회복하기에 다시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게서 잘 들려 오지 않을 때, 주 앞에서 나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을 더 가져 보시기를 도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이 내게서 확실하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두려움 때문입니다. 119:105절을 보면 말씀은 우리 발 앞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등불이 발 앞에만 비추니 겁이 나지 않겠습니까? 밤에 길을 갈 때 무슨 소리라도 나면, 즉각 그쪽을 비추어 봅니다. 그런데 먼데까지 비출 수가 없습니다.

 

먼 곳까지 훤하게 비추어준다면 그렇게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뭐가 있는지 훤히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도 내 인생 전체를 훤하게 다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내 발 앞만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진짜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의심부터 듭니다. 그리고 맞게 길을 가고 있는지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를 아시는지요? 기름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 처녀 비유를 보기 바랍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신랑을 기다리던 처녀들은 시간이 흐르자 점점 더 불안해 졌을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랑 되는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 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성막의 등잔 역시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기름 없는 등잔은 있으나마나 합니다. 베드로를 보기 바랍니다. 주님을 삼 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조그마한 여자 아이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나머지 제자들 역시 자기 길들을 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그들에게 수없이 들려주셨던 말씀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주만 따랐던 그 모습은 식어 버립니다. 기적을 바라보며 환호했던 그 감격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집니다. 너무나 허무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도 실망했지만 그런 그들을 보는 사람들도 역시 낙담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이 없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나만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전의 용사이십니다. 불패의 신이십니다. 아무도 그분의 뜻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 수 없습니다.

 

기다리던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성령이 하늘로부터 그들에게 임하고 예수의 제자들은 너무나도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말만 많았고 큰 소리만 내었던 겁쟁이 베드로는 자신을 죽이려는 공회 앞에서 놀라지도 않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성령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이 말세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2:1),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1:14) 성령충만을 허락 받습니다.

 

올해 처음 이타카에 오신 신입생들과 우리 성도님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명확합니다. 믿는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더 구체화 시키기 위해서는 1)주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지지 말기 바랍니다. 쉽게 말하면 예배의 사람이 되십시오. 간단합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2) 말씀을 떠나 살지 않을 때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믿는 자에게 함께 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용기를 얻고 두려움을 걷어 내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과 특별히 새로 오신 신입생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