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10):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3:1-5

 


다시 한 번 더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요? 언제 그런 생각이 들까요? 억울하면 그럴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기가 아쉬울 때일까요? 아니면 너무 거칠게 살다가 다시 새롭게 살아보고 싶은가요? 예외는 있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 더 태어나고 싶어합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바닥에는 이런 궁극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 소원을 안 들어주실까요? 인간이 그렇게 바라는데 좀 들어주면 안될까요? 참 야박하십니다. 그렇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나름대로 안 들어주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몇 번 정도 반복해야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우리가 지금 용서 하지 못하고 원수처럼 생각하는 사람 안 만들고 살 수 있을까요? 한번 더 태어났다고 해서 죽을 때 다시 한번 더 태어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부자 집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전부 만족할 만한 일만 생기며 살 수 있을까요? 돈 많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돈 물려 받아 사업을 잘해 나갑니다. 그러다 나중 부도가 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또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태어나 부도 피해 삽니다. 하지만 전쟁이 나서 다 잃어버립니다.  다음에는 어디에 태어나고 싶을까요? 부자이며 부도가 없고, 전쟁이 없는 곳에 또 한번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지요? 다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생겨서 다 죽게 될 형편이라면 다음은 어디서 태어나야 할까요?      

 

심지어는 사람으로 태어나보니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강아지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대우 받지 못하는 땅에 태어났습니다. 다시 숲 속의 사슴으로 태어나서 고귀하게 살다 가리라 마음먹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사자 밥이 되어 버리네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지요?

 

피해만 당하고 사는 것으로 태어나니 억울합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남을 괴롭힐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을까요? 그렇게까지 다시 태어나고 싶으신지요?

 

그래도 다시 태어나서 만족하게 살고 싶어 다시 태어납니다. 좋은 집안과 풍요한 삶, 만족할 만한 직업을 갖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존경 받습니다. 재해도, 전쟁도 없고 아름다운 인간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면 죽는 순간 만족할까요? 정말 다시 한번 더 태어나서 살고 싶은 곳은 없을까요? 그것은 죽음조차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태어날 필요 없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곳으로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이유가 없는 곳이라면, 그곳에서는 최종적으로 만족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만족스럽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사는 곳을 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궁극적인 바램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문제는 어머니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해서 오래 살 수는 있는 방법들이 개발되겠지요. 그렇지만 무조건 오래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래 사는 세상을 만든다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웃이 안 생깁니까?

 

오래 살기만 하면 용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변합니까? 이 땅에서 무조건 오래 살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입니까? 다 이해가 되고 포옹력을 가진 인격적인 사람으로 변할까요? 그렇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이미 인류는 고민해오던 인간의 질병, 갈등, 죽음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이성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노력들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확히 같은 고민이냐 물으면, 그러면 그 사람의 고민들 중의 하나 정도로 하지요.

 

바로 그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많은 것을 고민하는 지식인이며 종교인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양심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무턱대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니고데모는 일단 예수가 정말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우연히 예수님을 만나고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고 의심하며 사는 것보다 일부러 찾아 만나려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늘 찾아오는 하나님께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주인공은 우리들에게 도전을 던지고 있습니다. 혹시 아직 영접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주님과의 만남을 좀더 적극적으로 시작해 보기 바랍니다.

 

먼저 성경공부를 개인적으로 담임목사와 함께 해 볼 것을 추천 드립니다. 다음으로 성경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그분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기 위함입니다. 습관처럼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확실해야 합니다. 1)성경 읽기가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 가장 우선으로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들로 밤 늦게 자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그런 분들은 하루 일과 중 자신이 정한 시간에 꼭 읽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잘 못합니다. 급한 일 생기거나 중요한 일에 자꾸 밀리게 됩니다. 나중에라도 미루어 둔 것 읽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불규칙적이 되고 나중에는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저의 말을 듣다 보면 지금이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와 성경을 읽고 묵상도하고 성경 암송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이유로 못 일어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한 가지 더 팁을 드리겠습니다.

 

21일 동안 점심 먹은 이후 저녁을 먹지 말기 바랍니다. 늦게까지 일하는데 어떻게 저녁을 안 먹고 견뎌요. 그렇게 3주만 하면 늦게 일하는 습관도 줄어들 것입니다. 배고파서 자연스럽게 새벽에 눈이 자동으로 뜨질 것입니다. 그때 물 한 컵 마시고 성경을 본인이 읽기로 결정한 만큼 읽고 하루를 시작해 보기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3:1절을 보면 니고데모는 보면 경건한 삶을 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입니다. 또한 유인의 지도자 즉 공회원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3:10절에서 주님이 지적하듯이 그는 선생으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도 받고 나름대로 가르침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고민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과연 그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요? 니고데모의 고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요 2: 24-25절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아셨다고 합니다. 즉 친히 사람 속에 있는 생각까지 아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밤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생각을 알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3장 전체를 보면 거듭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의 고민은 그것이 아닐 것입니다. 대화를 살펴보면 주님이 일방적으로 그에게 그의 고민에 대한 답으로 거듭남을 제시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3:2절을 보면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첫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예수가 메시야인지 확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메시야로 왔다면 이 세상에서 만들 메시야의 왕국은 어떤 것인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3:3절에서 주님은 엉뚱하게 하나님 나라를 언급합니다. 2:25절에서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다는 말과 3:3절의 하나님 나라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답으로 제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면 평화를 가져오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 대부분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서로 다툼과 전쟁으로만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메시야처럼 보이는 예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들어줄 기미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만들 이 땅의 메시야 나라는 무엇인가? 이것이 그의 고민의 핵심이었던 것이지요.

 

주님은 니고데모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이 아니라, 모든 이 땅의 인간이 고민하는 가장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그에게 들려줍니다.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답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고민을 해답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세상이 이처럼 악하게 되었다면, 그렇게 만든 원인을 치유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결 되겠습니까?

 

유대 땅을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일시적으로 로마로부터 독립만 한다면 그 다음은 그들이 직면할 문제는 없습니까? 시기가 없고 다툼이 없고 전쟁이 사라질까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메시야 왕국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느냐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거듭남을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인간은 거듭나야 합니까? 제가 처음 시작할 때 다룬 것을 연결해 보시면 쉽게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거듭나야 하는 첫째 이유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죄 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먼저 남을 괴롭히는 것 멈추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달리 말하면, 나 자신은 물론 남들도 다시 이 땅에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생기지 않도록 살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이유는 잘못 살았기 때문이고 후회하는 뭔가가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서 정말 다시 한번 멋지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인생 낙오자라는 불명예를 벗어 버리고 다시 힘을 얻어 일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절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조차도 주 안에서 새 소망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살인자도 거듭나면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예수의 보혈은 어떤 세상 허물과 죄도 다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회복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예수 믿고 변화된 뒤에 누리는 이 기쁨을 타인도 맛보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서로가 살 맛이 날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세상을 향한 근본적인 치유입니다. 사랑으로 기초되지 않은 모든 것은 무너집니다. 모두가 먼저 가지려고 경쟁합니다. 싸우게 됩니다. 심지어 전쟁까지 불사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윤회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워진 창조가 지금 내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롭게 창조된 사람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성령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거듭나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습니다. 그래서 선하고 거룩하고 친절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시기도 다툼도 전쟁도 하지 않고 서로 화해와 치유로 이 땅을 살만한 곳으로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남만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푸는 완전한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3, 5) 니고데모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내 뜻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남들을 싫어하고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안 살지요. 해서는 안 되지요. 이것이 명확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나는 물론이고 이웃들도 만족시키는 삶을 이 땅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죽어 이 땅에 다시 오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죽어 들어간 진짜 하나님의 나라에 만족하며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 가르침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정한 뜻입니다. 윤회는 없습니다. 환생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에게는 거듭남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죽기 전에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나서 후회 없이 만족스럽고, 멋지고 아름답게 새롭게 살도록 새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여기서 거듭남에 대해 한 가지 오해하지 말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나는 것은 단지 이 땅에서 후회 없는 멋진 삶을 사는 기회를 다시 얻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가 들어 온 이후 모든 인생은 한계가 있는 출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라 할지라도 969살로 죽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다시 한번 거듭나야 하는 궁극적인 둘째 이유는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인생은 죽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살지만, 죽음 이후는 다릅니다.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은 영원한 삶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스스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사람은 영원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인생은 죄로 인해 사망이 기다릴 뿐입니다. 이것을 불쌍히 여긴 하나님은 만세 전부터 이런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영벌에서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모든 인생이 죽기 전에 선택해야 할 거듭남이라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직접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삶인 용서와 사랑, 영원한 행복과 안식을 실제로 행하며 사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자신들의 눈으로 보았기에 그곳에 들어가기를 정말로 원했고 다른 이에게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직접 오셨습니다. 이제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 다녔던 신을 벗기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 초대를 거부하지 않고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살아보니 어떻습니까? 안 좋습니까? 후회되시는지요? 다른 것이 더 좋아 보입니까?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 가고픈 마음이 생기시는지요? 죄에 대한 민감함을 잃어버렸는지요? 죄 때문에 넘어지는 것에 대해 회개보다 후회하는 시간이 더 많은지요? 과거의 습관적인 죄의 반복이 내 삶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지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자랑이 앞서 가고 있는지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의심이 더 많이 생기는지요?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의심만 생기고, 아멘이 입술에서 전혀 나오고 있지 않는지요?

 

삶에서 은혜도 못 느끼는지요? 목장에서 매주 감사를 나누는데 어떤 일에도 감사를 찾지 못하고 있는지요? 주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식어서 게으름과 나태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지요? 기도의 자리가 힘들고 섬김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요?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듭남은 완전한 변화입니다. 반복되는 죄를 시간이 가더라도 완전히 끊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게 만듭니다. 부정의 사람이 긍정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들에 대한 태도도 달라집니다. 남들 무시하는 태도가 사라집니다. 남이 못 듣는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 죄 인줄 알고 멈추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내 속에 품고 향기로 품어져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과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3:19절 말씀처럼 빛보다 어둠을 좋아하는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3:20절의 빛의 사람처럼 악을 행하는 삶을 그쳐져야 합니다. 3:21절처럼 진리를 방해하는 모든 불순종과 불신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답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은 후회 없는 삶을 이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땅에서 의롭게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예수가 답이 되어 온 것입니다. 이 복을 원한다면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셨음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 선물입니다.

 

예수 아닌 엉뚱한 것을 선택하는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인생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만이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거듭나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