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3): 예수님은 참 빛입니다 

1:4-9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사순절에는 특별한 두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먼저 계절의 변화입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오는 계절의 변화를 체험하게 합니다. 움츠렸던 우리 몸도 풀리고 겨우내 기다렸던 새싹들도 돋아 날 것입니다. 온 산과 들에서도 야생화들이 피어서 즐거움을 더해 줄 것입니다.

 

또 다른 은혜는 십자가 보혈로 우리 심령이 변하고 삶이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기간 동안 믿음의 성도는 철저한 회개와 경건한 삶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한 후부터 오랜 시간 지켜오는 좋은 전통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기 전에, 먼저 고난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고통과 아픔이 왜 있었는지를 먼저 묵상해야 합니다. 철저한 우리의 죄에 대해 회개가 필요합니다. 삶을 되돌아보며 주님 말씀 앞에 나를 비추어 보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서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형식화된 신앙생활을 탈피하고 거짓을 벗어 버리는 결단들이 있을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 한 방울까지 흘리며 생명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믿음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성도님들께 분명 놀라운 은혜들을 사순절에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사순절에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1:1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1:3절은 그분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태어났음을 알려 줍니다. 1:4절 상반절은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어서 1:4절 하반절은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명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생명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집어 넣어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곧 사람들의 빛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사람들의 빛이 됩니까? 죄로 인해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고, 심판과 사망에서 구원을 허락하실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1:5절을 보면, ‘생명의 빛을 보지 못하는 어둠이 있다고 알려 줍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깨닫지 못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친 빛이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인 것과, 영원한 생명을 그들에게 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둠은 1)불순종으로 심판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2)또한 어둠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죄와 사망의 늪에 빠져 모든 소망을 놓아버리고 살아가는 절망한 인간의 마음 상태입니다. 4)우주를 정복한다고 하지만, 진리에 대한 사람들의 영적 무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빛에 대해 무지했지만 지금은 알고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마16:17절은 그 같은 진리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믿지 않은 분들을 위해 내게 주셨던 감동과 은혜가 그들에게 흐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님이 잘 아는 믿음의 인물이 있습니다. 오만 번 이상 기도에 응답 받았다는 기도의 아버지인 조지 뮬러입니다. 한번씩 그의 전기를 읽다 보면 감동을 받습니다.

 

그가 가장 오래 동안 기도한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온 5명의 믿지 않는 친구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거의 평생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3명 정도가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기 전까지 나머지 두 사람에 대해서는 기도의 응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그는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설교를 할 수 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안 믿던 친구 중 한 사람이 그 날 설교를 듣고 예수를 영접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기도의 용사에게 응답 받지 않은 한 가지 기도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하고 하나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마침 뮬러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안 믿던 친구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50년이 넘게 자신을 위해 뮬러가 기도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역시 그 해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간증 합니다.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 받았습니다. 마지막 기도 응답이 바로 저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기도는 이렇게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소홀히 여기기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온 성도가 기도의 용사가 되기를 도전 드립니다. 혼자 힘이 들면 매주 수요 자매 기도회, 토요일 예배를 위한 기도회, 화요일 청년 기도회에 참석해서 함께 해보기 바랍니다.

 

부담이 되는지요? 이 거룩한 부담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게 하는 동력입니다. 지난 번에는 골방 기도에 대해 말씀을 드린 것으로 기억됩니다. 오늘은 성도들이 함께 하는 합심 기도에 대해 잠깐 나누려고 합니다. 어디에 합심 기도라는 말이 있습니까? 그리고 놀라운 능력을 약속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18:19절을 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합심해서 기도할 때 주시는 응답에 대해서 주님의 약속을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남에게 부탁만 했다면, 이제는 기도제목을 갖고 함께 해 보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아버지께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그들을 위하여 이룰 것이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기도의 제목들을 가진 분들은 기도의 자리에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흥왕 하는 교회,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와 가정에 응답이 넘쳐 나기를 소원합니다. 개인이 드리는 독방 기도와 합심 기도가 사순절에 더욱 우리 교회에 활성화 될 줄 믿습니다.  

 

독방 기도나 합심 기도시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나 친척들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는, 특별히 믿는 신실한 사람을 그 사람 주변에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1:6절을 보면,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은 한 사람을 보냈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누가 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그의 출생과 그의 삶에 대해 다른 어떤 복음서가 들려주지 않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그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집중합니다. 그가 왜 왔으며 누가 그를 보냈는가에 더 관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요한 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사도라는 단어가 바로 보냄을 받았다는 동사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을 볼 때, 세례 요한은 세상이 들어야 할 메시지를 가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종이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은 그를 보낸 분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반드시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도 그 사명이 주어집니다. 1:7절에 의하면 세례 요한의 사명은 빛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러고 합니다. 여기서 증언하다라는 표현은 순교자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입니다.

 

증인은 순교자와 같은 마음으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서 증거하는 사람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순교자는 될 수도 없고 하나님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순교자와 같은 성도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성도가 일상에서 예수를 증언하는 순교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사실 알고 보면 어려운 것이 아니고 또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자존심부터 내려 놓는 것에서부터 한번 사순절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와 성도 간에도, 자녀와 부모 사이에,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자존심 대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그 마음을 가장 우선으로 내려 놓기 바랍니다.

 

서로 자존심 세우며 성도간에,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용서 못하는 크리스천들을 보며, 누가 예수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순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삶에 자존심부터 죽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서로 자녀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은 예수를 알아가는 자녀들에게 분명 마이너스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엄마 아빠는 작은 것 하나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녀들에게 어떤 예수를 증거하겠습니까? 우리 삶에서 예수가 주인 됨을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삶이 빛으로 오신 주님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목장 모임에서도 늘 삶에서 말씀을 적용하는 나눔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라는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소망의 메시지를 갖고 우리를 찾아 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빛이 주는 소망에 관해 한 가지 체험한 간증이 있습니다. 젊은 날 믿기 전 방황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마음의 평강을 찾고, 평생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한 달 남짓 혼자 산속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천둥 번개 엄청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습니다.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산사태가 계곡 쪽에서 있었던 밤이기도 합니다. 제가 태어나서 가장 두려움을 느낀 밤이었습니다. 너무 두렵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었습니다.

 

한 밤중에 산을 내려 갈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긴 시간을 그렇게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때 제 머리 속에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믿기 전에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간청했던 일인 것 같습니다. 믿지도 않으면서 한번도 찾지도 않던 하나님께 메달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바람에 날리고 폭우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 비상용으로 남겨둔 성냥을 찾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불을 켜는 순간, 빛이 어둠의 공간을 밝히는 순간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게 있던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지금이라면 하나님 은혜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살려 달라고 소리쳤던 하나님은 잊어 버리고, 단지 이 얼마나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간직하게 된 날입니다. 살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지쳐 쓰러져 자다 새벽의 아침 햇살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에 떠오르는 햇살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 나에게 으로 다가오셨던 주님의 능력을 생각합니다. 성냥 하나가 만든 빛에도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 요한은 세상 것들과 구별 짓기 위해 예수님을 참 빛이라고 부릅니다. 이 참 빛은 희망이며 미래이며 구원입니다. 우리들 중에 걱정과 염려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우리 청년들과 성도님들의 심령 속에 하늘로 비치는 빛이 소망으로 다가 오기를 바랍니다. 가정의 모든 어둠을 물리쳐 주기를 기도합니다. 문제들로 인해 걱정하고 염려하고 depression 에 빠져 있는 심령에 기쁨이 솟아나기를 소망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턴과 job market이 안 열리는 상황에 평강으로 다스려 주실 줄 믿습니다.

 

빛이 오면 반드시 어둠을 물리칩니다. 걱정을 내 쫓습니다. 마음의 평강이 찾아오게 만들어 줍니다. 악한 생각이 사라집니다. 빛은 우리에게 중독처럼 되어있던 악한 습관조차도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빛은 바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감사하게도 성도들은 빛을 소유한 사람들이기에 늘 빛의 신앙 생활이 가능합니다. 1) 빛의 신앙은 우리가 가진 모든 신앙의 resource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염려를 날려 버리십시오. 담대함으로 걱정을 털어버리십시오. 기도로 보이지 않던 길을 보기 바랍니다. 불안한 내 생각을 찬양으로 새롭게 하기 바랍니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우울해졌다고 합니다. 저는 지난 학기 동안 8주 동안 팬데믹 기간 동안 감정관리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을 했습니다. 특별히 감사에 대한 일반 대학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을 듣고 자료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일의 효율성은 물론 집단의 단결과 개인의 감정관리에도 감사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감사가 정신 건강에 중요하고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봄 목장모임이 시작 되었습니다. 감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팬데믹이 마쳐지기까지 목장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 감사를 나누는 삶을 더 많이 심어 보기 바랍니다. 엄청난 은혜들이 쏟아질 줄 믿습니다.

 

2) 빛의 신앙은 예수님의 성품을 내 삶에서 드러내는 삶입니다. 주님이 염려로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운 적이 있습니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더 미워하고 증오하셨습니까? 우울증에 빠지셨다는 말 들어 본적이 있는지요? 빛은 밝고 깨끗하고 상냥하고 미소 짓게 만들고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 성품을 다시 사순절에 회복하는 성도님들 되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빛의 신앙은 빛 되신 주님이 늘 나와 함께 늘 있다는 임마누엘 믿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빛을 내는 해와 달 별 인공 조명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 속에는 어떤 빛보다 더 근원적인 힘과 능력을 가진 참 빛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미 이 빛을 내 마음 속에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 빛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한 가지 선물을 더 주셨습니다. 두려움과 염려와 공포, 떨림과 숨막힘이 나에게 찾아올 때, 이것들 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빛을 직접 우리들 손에 주셨습니다.   

 

궁금하시지요. 다들 여러분 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선물이 보이는지요? 119:105절을 보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여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말씀이 빛이라고 합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어둠에 꽉 막혀 갇혀 있다면 말씀을 찾기 바랍니다.

 

말씀은 반드시 우리 교회와 가정과 개인에게 빛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야 할 곳,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들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주가 원하는 그곳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부터 주신 모든 영적 리소스를 다 활용하시고, 예수의 성품을 드러내는 빛의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