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3): 집사의 직분  

딤전3:8-13

 


제직에 대해 벌서 세 번째 시간을 맞이합니다. 제직은 완전한 자로 주님 앞에 서는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의인만이 완전한 자입니다. 그리고 의인들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가며 고난까지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완전한 자로 골로새서는 말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지난 주에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선한 청지기로서 제직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말세에는 무엇보다 기도 없이 성도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홍수와 같이 쏟아지는 혼란한 영적 정보시대에 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직접 듣고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반드시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말세에 점점 사랑이 식어가는 이 세상에서 뜨겁게 사랑해야하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 땅에서 진정한 사랑은 영원한 천국 복음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 일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서 나그네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주님을 대하듯 원망 없이 대접해야 할 것을 성도들과 제직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은 좀더 초점을 좁혀 교회 성도들 중에서 집사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는 한 성도가 믿음으로 성장하는 신앙생활의 중심지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지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전진 기지이기도 합니다. 이런 믿음의 공동체가 효율적으로 움직여 가기 위해서는 직분자들이 필요로 합니다.

 

점점 이방지역으로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회 내에 세워지게 될 직분자들의 자격과 믿음생활은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지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하에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목회를 맡겨둔 어린 제자 디모데를 향해 목회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 중에서 교회 직분자들에 대해 바울이 다루고 있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집사의 자격에 대해 집중하게 됩니다. 집사(디아코노스)란 말은 종, 식탁에서 시중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라는 의미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음 주에 보게 될 사도행전에 의하면 헬라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을 돌보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합니다.

 

주로 이들은 장로나 목회자들을 돕는 일을 주로 하였는데, 특별히 교인들 중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사역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음을 사도행전 6장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초대교회에서 집사는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직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화회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고 성실한 제직들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코넬한인교회에 늘 예배, 교육, 구제 봉사 전도와 선교, 친교, 재정 등 여러 가지 영역에서 충성스런 분들로 채워짐을 감사 드립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사역의 현장에서 섬기는 분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디 시작하면서 예배팀이 걱정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두 분이 한국으로 가셨지만 새롭게 두 분이 조인을 해 주셨습니다. 늘 예비해 두시며 이끌어 가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한글학교 봄학기 교장선생님을 찾고 있는데 이것도 잘 진행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먼저 8절을 보면,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않아야 합니다. ‘정중은 단정하고(개역), 진지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잘난 체 하거나 겉으로 점잖은 모양을 취하는 그런 삶을 멀리한다는 뜻입니다. 이웃들의 필요를 살피고 헤아리는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섬기는 사역에서 일구이언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구이언하지 않는다는 말은 험담을 하지 않거나 또는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하여서 두 사람 사이에서 교묘히 처신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성을 주기 위함인 것이지요.

 

말에 신뢰성을 주지 못하면 곧 부정직하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섬기는 직책으로 치명적인 오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교회 비전과 한 해의 목표를 정하고 모두가 알고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 방향이 이리 저리 표류하거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술에 인박인이란 말은 술을 즐긴다는 의미입니다. 집사들은 구제하기 위해 각 가정을 심방하게 되는데 술을 즐긴다면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술로 인해 판단력을 상실하고 자제력을 상실하여 험담과 쓸데 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교회에 덕이 안될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더러운 이라는 것은 문제성이 있는 돈을 뜻합니다. 뇌물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집사의 주된 사역이 물질을 모아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사들에게 물질에 대해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도는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탐욕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딤전 6:10절은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와 구약의 아간, 발람, 이사야 선지자의 종 게하시 등이 예가 될 것입니다. 이들은 전부 물질의 유혹에 넘어져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에게 피해를 주고 파멸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유혹은 어떤 것에라도 사로잡히면 우리를 부르심의 자리에서 이탈시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가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탄은 늘 우리의 마음을 훔치려고 합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유혹이든 개인이나 공동체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가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위험이 있음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집사들의 자격들은 교회에서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제직은 교회와 세상 삶이 분리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사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깨끗한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9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사에게 요구되는 것 중 하나는 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란 감추고 알지 못하게 숨기지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출시켜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알게 된 구원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집사는 새로운 진리를 고안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불변의 진리인 복음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를 세상에 부르신 목적일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 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지 못한다면 다른 선한 종교인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비난 받을 일이 없거나 책망할 것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제직들을 임명하게 됩니다. 10절에서 시험하여 보고라는 말은 주제와 정한 기간을 놓고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진실성과 확고한 믿음을 가졌는지를 알아보는 교회 전체의 관찰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집사 직분을 차별하지 않고 있음을 11절은 보여줍니다. 심방이나 교회 손님 접대와 같은 다양한 봉사를 위해 세례 받은 여성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사역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일정한 자격을(4가지) 갖추어야 했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의 기준과 평행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남자들에게 정중해야(8) 하듯이 여집사들에게는 정숙함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나오는 신중성을 의미합니다. 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적용하려는 모습에서 발견합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무엇이든 행하기 전에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기도하고 나아가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이나 배운 지식 중심으로 늘 문제 앞에 서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제직들이 될 줄 믿습니다. 나를 앞세우지 않고 늘 주님이 앞서 가실 수 있게 겸손하게 내 자리를 지켜 나가는 제직들 되기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남자 집사들에게 일구이언하지 말 것을 요구했듯이, 이들에게도 남을 모함하는 즉 비난이나 비방하지 말 것을 11절은 언급 합니다. 남자 집사들에게 요구되었던 일구 이언하지 말라는 것과 일맥상통 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 집사나 모두에게 말에 있어 조심할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음 여집사들은 모든 일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실하다는 의미로 모든 일에 거짓이 없으며,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끝까지 희생적으로 봉사는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의무를 잊거나 어중간하게 일을 처리하는 조력자가 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모든 서리 집사님들은 일년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감당하겠다는 서약을 하게 됩니다. 다들 기도하시고 제직 헌신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도를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기도 속에 여러분의 결심이 들어있습니다. 아무런 결심도 없이 그저 하다 보면 시험 들면 그냥 놔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가운데 이루어진 성도의 모든 섬김은 시험조차도 이길 수

있게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옵니다. 이 은혜는 내 힘으로는 넘길 수 없는 어떤 시험도 넘어가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말씀을 들을 때 우리 기분이 좋아지고 눈물이 나는 그런 감정적인 것에서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만 누구를 용서 해야지결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생각으로 끝나는 가상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내게 들려오고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그 사람을 실제 찾아가는 현실에서 은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서로 화해하고 다시 신앙생활을 해 가는 실제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모습입니다.

 

은혜는 실제 삶에서 행하라고 주시는 성령의 감동이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마음에서만 요동치다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격동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감동된 감정은 선한 생각으로 발전하고 의지를 통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한 집사에게 주어지는 두 개의 축복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13절을 보면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 것입니다. ‘지위’(바드몬 badmon)라는 말은 여기서만 언급되는 단어입니다. 등급, 계급, 위치, 계단이란 문자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등급, 계급, 계단이라는 말의 의미는 집사의 직보다 더 높은 장로직으로 승진한다는 그런 것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 내에서 좋은(아름다운) 평판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맡겨주신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다 보면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겠지요. 교회의 모든 직분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에게 시키는 그런 위치가 아닙니다. 단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좀더 힘들고 때로는 더 많이 주님의 일을 자원하여 감당하는 차이만 있습니다. 봄학기가 시작되면서 자원해서 섬겨 주실 분야들이 많습니다. 기도하시면서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로 많이 자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 안에서 믿음의 큰 담력을 얻게 되는 축복입니다. ‘담력’(파레르시아)이라는 말은 원래 언론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믿음과 담력이란 두 단어를 합쳐보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담대해 진다는 의미입니다. 제직의 직분을 충실히 행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담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보인 사람이 스데반 집사였던 것입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한설교를 보면 얼마나 확고한 믿음 위에 서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를 증거하는 순교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빌립 집사도 사마리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까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담대함이 말과 언어의 자유를 의미하듯이 믿음의 담대함은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담대함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담대함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일 3:21-22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게 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제직을 맡는 분들에게 힘겨운 봉사를 요구하기에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지키고 해야 할 것은 많아 보이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 하나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맡겨 주시는 직분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는 축복입니다.

 

나중 성도에게 주시는 에 대해 말씀 드린다고 했는데, 상은 지금이 아니라 끝에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시는 그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입니다. 상 받을 일도 살아가면서 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성도가 받게 되는 복을 반드시 누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제직들 중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보다 어떤 사람이 되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다음 주는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있어 어떤 직책을 맡았든지 사역 자체보다는 기본적인 바탕이 더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제직으로 임명 받은 우리 모두는 얼마나 일년 동안 이룰 것인가에 집중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올바로 서 있는가를 더 생각하고 묻고 나아가는 제직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이루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섬김의 자리에 있는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본 자격들을 다 갖춘 분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직접 우리들에게 귀한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우리 가운데 있을까요? 비록 교회를 통해 실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이 믿음 가지시고 기도한 후 제직의 자리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의 일 먼저 해보니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당신도 그 은혜 함께 누렸으면 하는 성도의 권고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허락하는 축복받고, 하늘 나라에서도 함께 받자는 제안입니다.

 

이 아름다운 주의 일을 맡는 우리 모두에게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고 모두에게 감동이 있을 줄 믿습니다. 교회 제직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라는 마음을 가지고, 다음 주에는 기쁜 마음으로 헌신을 서약하며 나아가는 코넬한인교회 제직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