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2): 선한 청지기  

벧전4:7-11

 


지난 주부터 모든 성도님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긴 하지만, 1월 마지막 주일에 있을 제직임명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제직은 먼저 하나님 앞에 죄 용서함 받은 의인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며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들에게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일 감당하다가 당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남은고난도 이겨 내는 것이 완전한 자의 모습임을 바울은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가 전하는 제직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특히 벧전 4:7절은 세상 종말이 가까웠음을 언급합니다. 1:11절에서 주님이 하늘로 승천하는 순간부터 다시 주님 오실 때를 기다리던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신앙의 배경하에서 베드로는 오늘 우리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벧전 4:8절을 보면 더욱 서로 사랑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 사랑은 성도간의 사랑도 언급하지만, 내 가정의 형제자매 그리고 친척 가까운 친구들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이 강조되는 이유는 믿음 때문에 세상으로 핍박 당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사랑하는 자들이 구원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심판 앞에서 영원한 사망을 경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복음에 대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이제 시간이 더 없으니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바라는 바램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간까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정말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을 다하여, 시간과 물질 드리며 예수 믿으라고 말해도 안 듣는 사람이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들 믿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다면,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정말 호흡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옆의 강도들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자신부터 구해보라는 야유 속에도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두 강도 중에 한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구원을 허락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사랑이 있습니까? 부모는 자녀를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좋습니다. 그런데 진짜 사랑은 그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월급 많이 받는 좋은 직장 얻어 이름 내며 편하게 살게 도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노후에 좋은 집과 연금으로 살길 마련해 주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 불에 던져질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021년 올해 우리가 왜 말씀이 흥왕 하는 교회’( 19:20)라는 교회표어를 잡았습니까? 스트레스가 물러가고,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하는 일마다 잘되기 위함입니다. 그것뿐입니까? 그러면 기복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적 신앙인들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흥왕 하는 이유는, 우리가 먼저 말씀에 굳게 서기 위함이고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함입니다. 먼저 우리 속에 복음이 차고 넘쳐야 밖으로 흘러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도 복음이 없고, 차서 넘치지 않는데 어찌 밖으로 넘쳐 흘러 갈 수가 있겠습니까?

 

전도가 안 일어나는 이유는 내 속에 전도의 열기가 흘러 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는 분들 가운데서 먼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더 먼 곳까지 복음이 확장되어 갈 줄 믿습니다. 올해도 여전히 환경이 나쁘다는 것,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선교헌금과 구제헌금이 우리 교회에서 많이 흘러 가는 축복의 해였습니다. 선교 바자회가 팬데믹 상황에도 있었습니다. 지정 헌금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에게 더 많은 재정 지원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이 흥왕 하기 시작하는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목장 전체 기혼자들이 62명 정도가 되는데 성경일독을 신청한 분들이 38명 입니다. 61%가 성경일독에 참가하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혼자 읽는 분들을 포함하면 더 많은 분들이 될 것입니다. 성도는 우리가 사는 이 순간을 종말의 때라는 인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사랑하는 분들이 영원한 심판으로 던져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아직은 남아 있기에 나중 해도 된다. 좀 더 기다려 주자.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부모님들 건강하시기에 아직 더 오래 사시겠지라는 이런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런 태도는 우리가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 인정하실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우리보다 더 강하게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고 마지막 때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언급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종말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온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인식시켜 줍니다. 기말은 학기 초와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고 졸업생들은 캠퍼스를 이곳을 떠나기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합니다. 기말이 다가왔는데도 그대로 지낸다면 학기를 잘 마무리 짓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는 날 내 신앙생활 속에서 종말이라는 인식이 들어와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맡긴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남은 시간에는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나에게 무엇을 맡겼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반드시 마지막에 (count)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우리 성도님들 이런 생각 한 번도 안 한 분이 계신다면 심각하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의 직업을 그만두게 하실 것도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빼앗아 가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누리는 것을 가지고 주를 위해 살았느냐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지혜와 재물 재능 명예를 주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 인정하십니까? 아직도 이것 인정 못하고 내가 잘 나서 다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를 때 예수가 나의 구원주로 믿기는 했지만, 아직 나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내가 가진 것 누리는 모든 것이 주가 주신 것이고, 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영광 위해 내게 주신 생명, 자녀, 자연, 직장, 건강, 지혜, 물질, 능력들 나를 지으신 분이 허락하신 선물임을 인정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분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믿는 성도들인 우리는 오직 한 분 주인이 있습니다. 2) 내가 이 땅에서 수고해서 얻은 것, 가진 것,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다 주인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 반드시 주인은 우리가 얼마를 남겼는지 셈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으면,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죽을 때 자신이 이곳에서 번 것들 가지고 가실 분이 있습니까? 내 것인데 왜 내 마음대로 못할까요? 사실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다 가져갈 수 있습니다. 들고 가면 귀찮고 무거우니 먼저 하늘 나라 창고에 transfer 해두고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분들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내 것이라고 찾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하늘나라 은행에 저축해 둔 것입니다.

 

6:19절 상반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주님이 말씀합니다. 이어 20절을 보면, “오직 너희를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하십니다. 그러면서 마 19:21, 12:33절에서는 우리의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방법임을 알려 주십니다.  

 

이 두 구절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적극적인 구제를 말합니다. 그냥 우리에게 있는 잉여분을 좀 나누어 주는 차원을 너머 너희 소유를 팔아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누기를 좋아하십니까? 꼭 물질만이 아니어도 됩니다.

 

나의 재능과 지식을 돈 받고 일하는 직장에서만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갖지 못하고 있는 분들에게 흘러 가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선교현장입니다. 여러분의 재능 등을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팬데믹으로 선교를 다녀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팬데믹이 물러가면 우리 교회가 지원하고 있는 과테말라, 이디오피아 선교지에도 건강, 자녀, 교육 세미나, 컴퓨터 강의, 의료봉사, 영어 교사 등 많은 분야의 봉사가 필요합니다. 일주일부터 반년 이상 현지 인턴 등의 봉사참여를 올 가을 이후부터는 구체화/프로그램화 시킬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나 후원을 기대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남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선한 청지기로 살아갈 것을 10절에서 권고합니다.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맡은 우리 제직들 역시 이런 선한 청지기의 모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있고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고 그가 한 일에 대해 주인 앞에서 평가가 있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주 앞에 설 때 세 가지가 부족하지 않기를 패키지로 베드로는 묶어서 당부하고 있습니다. 첫째, 벧전 4:7절에서 종말을 살아가는 선한 청지기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것을 당부합니다. 기도는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인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듣기 위한 시간입니다.   

 

마지막 때에 정말 기도하는 제직들이 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fake 정보들이 거짓 선지자들과 속이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시대에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정보와 같이 영적 정보들도 마지막 때 혼란스럽게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정보의 출처가 되는 주인에게 직접 듣고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라는 말은 무언가에 홀리거나 정신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정보만 따라가다 보면 그것에 홀리게 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근신하는태도입니다. 자제하고 균형 잡힌 생각과 행동을 말합니다. 이런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성도에게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이 나의 중심에 자리 잡혀 있으면 절대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유혹에도 미혹에도 속지 않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누구의 말이 부풀려 있고 허풍이라는 것을 알아 차리게 만들어 줍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기도와 말씀의 균형이 우리 가정과 내 삶에 자리 잡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선한 청지기로서의 성도와 제직은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게 됩니다. 베드로가 벧전 4:8절에서 둘째로 당부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뜨겁게라는 부사가 붙어 있습니다. 24:12절 말씀처럼 말세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딤후 3:2절을 보면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핍박과 환란이 삶을 힘들게 만드니 남들을 돕고 챙기는 것보다 성도 역시 이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성도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인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적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 다음 나를 보면 됩니다. 이것이 Jesus first, Others, and finally Yourself JOY 원리입니다. ‘뜨겁게라는 말의 의미는 지속적으로라는 뜻도 포함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입니다.

 

한 가지는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 내 능력만 믿는 한계입니다. 다음은 재물, 재능 등 내 힘이라는 연료가 있어도, 우리의 신앙감정이 너무 굴곡적이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으면 하고 기분 나쁘면 안 해버리는 감정에 의존하는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다음은, 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 4:8절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발견합니다.  

 

서로라는 단어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우리 공동체에서 점점 식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모닥불은 불씨를 모아 주어야 불이 지속적으로 잘 탈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 나만 해라는 불평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더 큰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는 것이지요.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세 번째로 당부하는 것은 벧전 4:9절에서 서로 원망 없이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대접한다’(펠레세노스)사랑한다는 필로스(philos)나그네라는 크세노스(ksenos)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의미는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위를 뜻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숙박시설은 빈약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순례전도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박해를 당해 많은 성도가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재정적 부담으로 숙박시설을 이용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베드로는 더 어려운 형편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극진히”(공동) 또는 불평 없이 서로 따뜻하게”(새번역) 대접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그네들의 대접은 경비도 많이 들어가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원망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원망 없이 형제를 대접해야만 진정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 비결은 그들이 바로 나를 찾아온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5:37절을 보면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라고 묻습니다.

 

이때 마 25:40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주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내 형제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한 것이, 바로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벧전 4:10절 말씀처럼 선한 청지기로서 이런 봉사를 이 땅에서 하다 하늘에 있는 우리 본향으로 돌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기에 은사(카리스마)를 주십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자선을 베풀고, 긍휼을 실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늘의 영적 선물을 우리는 이미 공급 받았다고 이어서 벧전 4:1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었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없는데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1절을 보면 왜 우리가 이미 받은 것을 안 받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알게 해 줍니다. 먼저 내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봉사의 자리에 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전부 내 것을 위해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 아닌 주의 가 드러나는 자리에 설 때 주신 은사들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특별히 1월 마지막 주일에 새롭게 제직으로 임명을 받으실 분들과 함께 모든 성도들이 기도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해야 할 일 묻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형제 자매들을 뜨겁게 사랑하시고, 섬기는 자리에서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