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19: 18-20

 


늘 새해에는 많은 계획들로 가득 찹니다기대도 큽니다지금까지 세워 두었던 계획들이 마무리 되고다시 시작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모든 계획들과 소망들이 주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도 매년 8, 9월에 당회원들이 모여 다음 해 교회 운영을 논의합니다그때 나누는 것이 교회표어입니다교회표어는 늘 우리교회가 한 해 집중하게 되는 사역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2021년 교회표어는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서 보는 말씀입니다“말씀이 흥왕 하는 교회’입니다

 

2020년 성경일독을 하면서 너무 은혜스러워 이 말씀을 교회표어로 해야겠다고 미리 정해 둔 것입니다올해 우리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하나님 말씀에 집중할 때 은혜가 넘쳐 나기를 바랍니다지금까지 성경일독이 2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참 은혜스런 간증들이 많습니다.

 

처음으로 일독을 하는 분이 늘 계십니다그분들이 은혜를 받고 풍성한 나눔을 이끌어 가십니다말씀이 우리 속에 녹아 들면 우선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하나님 말씀이 재미가 있고 좋은 일들이 생겨납니다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늘 선하게 인도하는 하나님을 경험케 하고더 감사하게 만드는 삶을 보게 만듭니다.

 

정말 위기가 생겼지만 말씀으로 위로 받고선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가정도 있습니다. 1기는 우리 교회에 성경읽기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2기는 기혼청년, ER까지 온 교회가 다 참가하는 성경읽기였습니다그리고 이번 3기는 8 부부가 조인을 하여 가정들을 회복시킬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5 10장으로 나누어서 두 팀이 읽어가게 됩니다너무 감사한 것은 다들 바쁜 직장일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녀들을 보살피는 가운데도 조인해 주신 분들입니다그 외에도 신약만 일독하는 팀이 청년부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믿는 사람으로 성경을 한번도 읽지 못했다면 꼭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학생들도 한 학기 수업을 들어도 필독서가 있습니다예수 믿는 사람이면 정말 성경은 일년에 일독 해야 합니다이 목표는 평생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되기 바랍니다 15:16절 하반절에 의하면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십니다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마음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힘든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이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의 심령 속에 위로가 되기를 원합니다말씀을 손에 든 사람들은 더욱 큰 기쁨과 위로를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교회학교에서부터 중고등부 청년부 기혼에 이르기까지2021년에는 예외 없이 다 한번 성경을 일독하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행19:20절을 보니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하나님 말씀 그 자체가 ‘힘이 있어’ 결과적으로 흥왕하며 세력을 얻고 있음을 보여줍니다‘흥왕’이란 동사는 ‘자라게 했다’ 또는 ‘더 커지게 했다’는 의미입니다복음 사역으로 인해 교회가 계속 부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력을 얻다’는 말은 행19:16절에서 사용되었듯이 누구와 힘을 겨루어서 ‘이기다’라는 의미입니다말씀이 사탄의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 더 큰 세력을 형성했음을 보여줍니다실제로 사도행전 19장은 좋은 예를 기록하고 있습니다19:13절을 보면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축출하자마술하는 유대인들과 14절의 제사장의 아들들도 귀신을 내쫓는 능력을 보고자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는 일이 벌어집니다그런데 15절을 보면 마귀는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음을 드러내지만 그 이름에 굴복하지는 않습니다오히려 악귀들은 스게야의 아들들이 예수와 무관한 자들임을 알아차립니다.

 

반대로 귀신의 초자연적 능력이 드러나고귀신에게 혼이 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6절은 악귀 들린 사람이 오히려 그들 위에 뛰어 올라 눌러 이겼다고 합니다결국 귀신을 못 쫓아내고 도망쳐 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예수의 능력이 아니라 귀신이 오히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제압해 버리는 장면입니다.

 

이것을 보고 어찌 예수가 능력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귀신들의 힘이 더 세어 보입니다그런데 행19:12절을 보면 바울의 사역을 보면 그가 사용하던 앞치마나 손수건만 가져다가 병자 위에 얹기만 해도 병이 떠나고 귀신이 나갔다고 말씀합니다분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이유는 무엇일까요?

 

 6:7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공동번역은 이것을 아주 쉽게‘하나님은 조롱 받지 않는다’ 고 번역합니다유대인 마술사들이나 제사장의 일곱 아들들은 분명 하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를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이름이 가진 힘만 사용하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이 성령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대로 자신이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교만이 어찌 하나님 앞에 통할 수 있겠습니까그들은 심은 대로 그대로 그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마음을 심었기에 그들이 사람들과 귀신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유대인 마술사와 제사장의 일곱 아들 그들은 예수를 아예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마술과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단지 예수의 이름을 빌어 사용하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그들이 예수와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알고 그들에게 자신이 굴복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보입니다만약 그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다면 귀신도 제압을 당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여기서 보여주는 귀신의 능력은 성도가 가진 권능보다 더 강할 수 없습니다.

 

또한정말 예수를 믿는 것이 능력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들에게 적용해 볼 것을 생각해 봅니다교회에 출석하고예배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예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자녀에게 허락되는 성령이 없이는 예수 이름의 능력은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 많으신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그분에게 연결이 안 되어 있으면 어떤 것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에게 붙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아직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지 못하고인생의 주인으로 받아 들이지 못한 분들이 있으면꼭 올해에는 순종하는 삶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 목적을 위해 예수를 이용하려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없는지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이것을 ‘기복 신앙’이라 부릅니다기복신앙은 어떤 다른 신들보다 하나님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믿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들을 이 땅에서 살면서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스게와의 아들들처럼 예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성도들을 가만히 놓아 두겠습니까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배고픔 질병 적들로부터의 단지 해방만을 위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진정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땅만 갖기를 원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세상의 빛이 되기를 원했습니다그들의 강함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 신들 위에 있음을 나타내 주기를 바랬습니다이스라엘이 누리는 평안과 배부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충분하였습니다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다윗의 복과 솔로몬의 영광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가뭄이 오면 비와 풍요를 가져다 주는 특별한 신을 찾았습니다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으면 다산의 신에게 구했습니다자신들이 지배를 당할 위험이나 위협에 처하면 여호와 하나님 보다 강해 보이는 다른 거짓 신들의 제단 앞에 절하는 어리석음을 보였습니다이스라엘은 성숙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기적인 신앙으로 변해갔습니다.

 

자신들만 알고 이방에게 복을 나누려 하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을 소개 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세상의 다른 복을 더 얻기 위해 다른 복을 주는 신들을 하나님 앞에 하나 더 두려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잘못된 믿음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신앙의 성숙을 위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 날 우리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스게야의 일곱 아들을 통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높이는 것을 포기할 때스스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이때는 인간에게 피해가 올 수 밖에 없지요그것이 노아의 홍수였고마지막 날 세상에 대한 심판입니다.

 

늘 하나님은 하나님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지존의 자리에 앉으셔야 하고 높임을 받아야 할 분이라는 것입니다엘리 제사장 시절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움을 하면서 법궤를 잃어버립니다(삼상4). 아무도 찾아오려고 하지 않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이방 신들과 사람들에게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로 스스로 돌아옵니다(삼상 6).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생각에서 퇴색해갈 때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이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음을 경고를 통해 보여 주십니다그 수단이 바로 ‘자연’입니다이 세상 자연들이 파괴되고 이상 기후들을 나타낼 때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찾고 인정해야 합니다.

 

공해를 만들어 가는 것을 조금 줄여나가고우리의 편의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줄여 나가고하나님 주신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들을 이제는 멈추어야 합니다하나님 말씀을 잘 알아갈 때하늘과 땅을 아끼고 지구의 생태계도 살피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 것인데 어찌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성도들이 믿지 않는 환경 보호론자들 보다 더 환경과 자연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만이라도 말씀대로 살면 훨씬 더 자연파괴는 덜 일어나고 우리 후손들에게 더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아니 목사님설교시간에 무슨 자연보호입니까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흥왕 할 때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는 우리의 삶 구석에서 적용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런 면에서 우리가 사는 삶과 관련된 말씀을 성도님들과 함께 묵상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살아가는 땅에서 누리는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자유는 정의와 공의에 기초합니다이 땅의 정의와 공의는 ‘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지켜 집니다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어느 사람들보다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그리고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무너져 갈 때 바르게 세워 나가는데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행위가 모든 문화활동과 우리가 만들어 내는 문명을 통해서도 나타나야 합니다더 작게는 내 학교생활직장생활 가정에서 우리를 통해 나타내야 합니다창세기 4장에서 가인의 살인사건 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는 결국 창 6:5에서 죄가 이 땅에 가득하게 했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지혜가 만들어낸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을 보십시오고도로 선진화된 기술 문명은 창11:4절을 보면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교만으로 나타났습니다결국 죄가 만들어낸 인간 문명은 ‘나누어짐’이라는 아픔을 모두에게 주었습니다나라와 나라문화와 문화언어와 언어생각의 차이 그리고 삶의 방식을 다르게 했습니다.

 

모든 것에 경계가 생기고구별이 생기고싸움과 분쟁이 있고 서로 죽이는 전쟁으로 발전하였습니다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서로 무시하고 차별하고 양육 강식의 동물적 본능을 드러내는 인간의 삶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이런 삶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백성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이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는 통치자이심을 인정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이 무시 당하는 삶이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 때문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그런데 오늘 본문의 스게와의 아들들은 그렇지 못합니다하나님을 무시할 때 귀신들에게도 혼이 나는 모습입니다.

 

19:17절을 보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려다 낭패를 당했다는 소문이 에베소에 퍼지기 시작합니다이때 귀신들이 더 세다면 더 활기를 얻었을 것입니다그렇지만 현실은 아니었습니다스게와의 아들들의 소문을 듣는 에베소 사람들은 반대로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은 스게와의 아들들처럼 자신들도 이런 봉변을 당할까 하는 염려 정도로 보여집니다바울이 전파하는 예수가 자신들이 믿어왔던 신들과는 전혀 다른 능력자임을 그들은 깨달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입니다하지만 진정한 신앙행위로 보기는 힘듭니다“에베소에 사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다 믿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에베소에서 이미 예수를 믿지만 마술과 주술의 습관에 빠져있던 크리스천들에게는 엄청난 역사를 하게 됩니다. 18절에 의하면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믿는다고 하면서도 은밀히 행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악들을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흥왕 할 때 일어나는 한 가지 뚜렷한 현상은 나의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이런 에베소 사람들의 자복은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습관인 미신과 주술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행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라는 표현은 진정 죄를 회개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시켜 할 수 있습니까예수 보혈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지만 죄성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죄를 범하는 우리들입니다날마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은 말씀의 능력입니다이어지는 19절을 보면말씀의 능력은 그 정도에서 멈추기를 거부합니다

  

19절에 ‘많은 사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복음의 능력은 사단의 능력을 능가하여 승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시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음을 증명해 줍니다더 놀라운 사실은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불살랐다’는 것입니다.

 

마술이라는 단어는 ‘쓸데없는 일’이란 뜻입니다정말 사람들 앞에서 헛된 일인 것을 인정하는 실제 행위들이 일어난 것입니다말씀의 능력은 심령의 회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행위들과 죄악된 삶을 청산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책을 불태웠다는 것은 마술의 능력도 그 책의 내용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은 오만에 해당되는 량입니다당시 노동자 137명 정도의 일년 임금에(일당 오만 원인 경우25억 원 해당해당 된다고 합니다얼마나 마술과 미신이 성행했는지를 알게 합니다하지만 불태운다는 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 역시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할 메시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우리 믿는 사람들이 항상 예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불신자들이나 세상에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교회가 비난 받는 이유 한가지를 알게 해 줍니다예수 이름을 가지고도 마귀에게 패하여 도망해야 했던 이유는 우리 속에 진정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부끄러운 모습 아닙니까그렇다면 에베소 성도들처럼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몰아내야 합니다예수의 이름을 너무 우리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스게와의 아들처럼우리들 역시우리 이름이 더 알려지고 싶었던 동기로 예수 이름을 사용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마귀와 귀신들은 자기보다 강하고 능력 있는 자를 알아봅니다반대로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만났을 때는 덤벼들고 때론 유혹하며 범죄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마귀와 귀신들보다 약한 존재입니까아닙니까우리 자체는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나 우리와 함께하는 성령 때문에 그들보다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성령 하나님과 교제를 게을리한다면영적 힘이 약해져서 강력한 사단의 공격을 이겨 낼 수 없게 됩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은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그러니 그들은 귀신들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지요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2021년 승리할 만큼 성령 충만이 내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요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우리 힘으로만 사탄을 대적하기는 불가능합니다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말씀은 늘 성령님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6:17을 보면 사탄을 이길 영적 공격 무기로 성령의 검을 말씀합니다그런데 성령의 검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합니다그렇다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그래서 올해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속에 흥왕 하는 해로 정했습니다.

 

분명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이 믿음은 그냥 제 속에서 만들어낸 목사의 신념이 아닙니다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우리 속에 우리들을 나약하게 만드는 육신의 질병은 물론 코넬을 사로잡고 있는 정신적 우울증과 싸우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것처럼코닝과 코넬에서 하나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 할 줄 믿습니다반드시 2021년을 기점으로 우울한 감정들이 사라지고하나님 주시는 열정으로 학문에 정진하고직장이나 가정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