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9): 성령의 인치심  

1:13-14

 


성도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에 관한 확신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은 믿음 생활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됩니다. 성도가 전도 못 한다고 천국 못 들어가는 것 아닙니다. 교회 다니면서 섬기지 않았다고 천사가 천국 문 앞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만큼은 전혀 다릅니다. 요즘 우주시대라 많이들 들어 보았을 텐데요. 우주 비행선이 대기권을 진입할 때 조그마한 각도 차가 생기면 튕겨져 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제시한 그 길을 따라가야 하며, 하나님이 원하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생명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14:6).

 

그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이 엡 1: 3-14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만세 전에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4) 자녀로 삼아주시는(5-6)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실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성취하셨습니다(7-12).  

 

지금까지 구원에 관해 말하면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으로 구분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 성령의 역할을 오늘 읽은 본문 엡1:13-14절이 말씀해 줍니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면,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 만날 때까지 살게 도와 주는 역할을 하십니다.

 

이 구원의 확신은 성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확신은 우리가 공부를 할 때처럼, 학생이 학습을 통해 알고, 그것을 머리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시험지에 답을 쓰기 위해 활용하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부터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거야라고 결심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다루는 이 문제가 성도를 헷갈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 속의 확신은 내가 결심하면 생기는 것 아닌가요? 다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뭔가에 대한 확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사람이 그 확신의 주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게 핵심입니다.  

 

대부분 확신은 경험과 학습을 통한 이해와 암기로 생겨납니다. 간단한 예는 1+1=2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배우고 이해하고 기억합니다. 다음에도 1+1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2 라고 확신에 찬 답을 합니다. 이 사람은 경험과 이해를 통해 답이 ‘2’ 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답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성도에게, ‘당신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답 할 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단지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구원 받습니다라는 학습과 기억 때문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나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알고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성도에 대해 틀렸다고 따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신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더 설명을 자세히 해야 할 것이 있고, 알고 믿었다고 하는 그 부분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이 시간을 갖는 목적입니다.

 

먼저 우리가 분명하게 해 둘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구원 받을 것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맞습니다. 그것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말하면, 죽을 때까지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문제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구원 받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데, 어떻게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용어 그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어떻게 내가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의 확신을 갖느냐를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먼저 답부터 말하면 그 확신은 성령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주체는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았냐고 질문을 받을 때,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에 의해 만들어진 그 구원의 확신을 사실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누구든지 가질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구원 받았음을 확신한다는 말은 성령이 내 속에서 그런 확신을 주었기에 내가 그런 확신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확신이 내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전달 되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철저히 피동적입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내 머리가 이해하고 내 의지로 입술로 고백했기에,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속에서 성령의 역사로 확신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통해 구원 받는 방법을 듣고 내 머리 속에 저장이 됩니다. 그리고 내 의지를 가지고 그 확신을 말하였기에 내가 가진 확신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은 짝퉁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주제를 다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힘들고 어려운 일 생길 때 보면 바로 짝퉁을 알게 됩니다. 주님 비난하고 원망하고 신앙에서 떠나는 것 대부분이 짝퉁 확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이 닥쳐올 때 껍질이 벗겨지고 연결 부분 줄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때 확실히 나의 입술의 고백이 진정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또 주의 할 것은 성도들이 고난을 맞을 때 입에서 나오는 원망이나 비난 한번 정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탄식과는 다릅니다. 속에서 쓴 뿌리가 나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에서 무너지는 그런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심하면 교회를 떠나고 다른 종교를 찾는 그런 것이 되겠지요.

 

진짜 확신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사용합니다. 성도의 확신은 육체의 할례에 비교하지 않고, 마음의 할례에 비교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할례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칼을 들고 내 마음을 수술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 마음에 너는 구원 받았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수술을 성령님이 직접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이며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리고 나는 성령에 의해 만들어진 내 속에 생겨난 수술 자국을 보는 것입니다. 성령은 늘 보이지 않는 이 자국을 나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 자국을 볼 때마다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야를 늘 확인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래 전에 이가 아파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네 다시 문제가 생겨 그 병원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이 보고는 이것 내가 한 것 아닌데라고 말하며 다른 의사가 한 것 금방 알아 보더라고요. 이 땅의 전문가도 자신이 한 것 구분하는데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수술해준 것 기억 못하시겠습니까?

 

자 이제부터는 구원의 확신을 주는 성령이 하는 역할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엡 1:13절은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듣고 믿을 때 내 속에서는 성령의 인치심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이란 말에서 우선 을 치는 주체는 성령입니다. ‘인을 친다에서 이라는 말은 도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인을 친다는 말은 도장을 찍는다는 말이 되겠지요. 다시 도장을 우리 성도와 연결시켜 보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성령이 도장을 찍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도장의 역할을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첫째, 양들이나 가축을 가진 목장 주인은 동물에게 자기 소유권을 표시할 때 사용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치심은 결국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성령이 도장을 찍어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도장을 찍듯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내 속에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엡 2:2절 말씀처럼 공중권세 잡은 자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이 주인 되었음을 성령이 선포해 주는 것입니다. 등기 이전이 일어났음을 보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순간 우리가 받는 복도 달라집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벌에서 영생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시절을 보기 바랍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 그들은 종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늘의 모든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을 엡 1:3절에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성도의 모습이 요한 삼서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누리는 복입니다. 더 이상 무슨 다른 복이 필요하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은 죽음 이후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복도 누림을 말씀합니다).

 

둘째, 성령이 우리에게 도장을 찍는 것은 우리가 가짜가 아닌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대해주며 사탄도 우리의 권위에 도전을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귀신들이나 악한 영들이 얼씬도 못하고 달아나버립니다. 교회들이 이 세상 한 가운데 세워질 때 많은 귀신들이 물러갔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일어나는 영적 현상이 무엇입니까?

 

주변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사로잡혀 악한 것에 중독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중독이 다 귀신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오해 없기 바랍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요즘 교인들에게 그런 경우가 또한 많다는 것도 아셔야 할 것입니다.

 

특히 습관적으로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 악한 영에게 종 노릇 하는 모습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하나님 자녀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돈을 벌든지, 인기를 누릴 수 있든지, 아니면 잠시 즐기는 세상의 오락 같아 보일지라도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참 불안합니다. 모든 것을 점이나 무당들에게 의지하려 합니다. 우리의 이성을 통해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도록 하나님은 거룩한 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운세도 점치고, 내년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무당에게 묻는 악한 세상에 미혹되지 말기 바랍니다. 진짜를 가진 사람은 가짜, 짝퉁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셋째, 왕이 신하에게 도장을 주는 것은 왕의 명령대로 그대로 이행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정치하는 분들은 이 땅을 공의롭게 다스려야 합니다. 경제를 맡은 분들은 공정한 거래가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왕의 도장을 받은 사람은 그분의 권위도 받지만 그 뜻대로 살아야만 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녀가 세상에서 의롭게 살고 정직하게 살다 보면 문제를 만납니다. 세상은 다 그렇게 살지 않는데 나만 바보 같고, 그렇게 살면 실패할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쓰러지기도 하고 실족하기도 합니다.

 

이 때 갑자기 내 속에서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야, ‘내가 맞다고 하는 것 끝까지 따라 가야 해. 그래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어. 그 집에서 벌어지는 하늘 잔치에 함께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힘내고 버텨, 넌 할 수 있어.’ 이 끊임없는 격려와 용기가 우리들 속에서 들려 옵니다.

 

바로 이 일을 하는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 성령입니다. 결국 성령의 인치심은 너희는 내 것이야, 내 명령대로 살아야 해, 힘내, 끝까지 가자라는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성령이며, 내 속에 오신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1:13절은 이 성령을 약속의 성령이라고 부릅니다.

 

오래 전 구약에서부터(2:28) 믿는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 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뒤 오순절 날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2:1-2). 그 성령은 동일하게 오늘 날 우리들에게도 오셔서 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엡1:14절은 성령의 인치심의 목적 하나를 더 말씀해 줍니다.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먼저 기업이란 의미는 상속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아버지로 받을 것은 천국 구원임을 의미한다면 기업은 결국 구원을 말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은 보증인데요. 보증은 담보를 의미합니다. 물건을 살 때 확실하게 하기 위해 주어지는 첫 지급액입니다. 그 보증금은 나중에 완불할 것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 구원의 완성을 위한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중 우리의 구원이 영화(glorification)의 단계로 완성될 될 것을 보증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이 우리 구원에 대한 보증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살아가면서 넘어지고 힘들어 할 때 늘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나 자신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늘 듭니다. 사탄은 늘 우리 곁에 와서 속삭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렇게 사니? 엉망으로 사는 네 모습을 봐! 경건은 없고 거룩은 사라지고 세상에 젖어 살아가는 네 모습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나타나니? 너는 구원 받을 수 없어.’ 내가 망가지고 힘이 빠지고 시험들 때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시는 성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야. 너는 구원의 대상이야.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렴.’ 이렇게 위로해 주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회개의 자리로 다시 나아가도록 해 주십니다. 무기력한 내 어깨를 세워주십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한 마음에 새 힘을 줍니다.

 

이렇게 도와 주시는 분이 우리 속에 내주하는 성령님이십니다. 내가 구원의 백성이라는 확신을 계속해서 주기 위해 성령은 내 마음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13절에 의하면 저와 여러분처럼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인치심이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영들에 의해 소유권이 주장되지 못하도록 도장으로 확인을 해 두었습니다. 퇴색될 수 없습니다. 사라질 수 없습니다. 구속의 날까지 이르는 불변의 확인입니다. 구원이 예수 안에서 시작되면 반드시 완성될 것을 약속해 주는 징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구원을 못 이룰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습니다. 앞으로 더 험한 세상이 온다는데 혹시 나 나중 믿다가 주님 배교하면 어떻게 해? 악한 것들에게 미혹되어 주님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주님이 이루어 낸다는 든든한 약속입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없다면 모호해질 것입니다. 두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세게 말하는 이단들이나, 아니면 좀 다르게 이상한 말로 미혹하는 사이비들에게 넘어지고 자빠지고 끌려 갈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 성령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보증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꾸로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면서 보증까지 합니다.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악한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 보이십니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를 강하게 세우시고, 세상을 뚫고 나아가는 힘을 주시는 성령님을 붙잡기 바랍니다. 힘들어 보이고 어려워 보이는 조금 남은 팬데믹 기간과, 가을 학기, 그리고 한달 남은2020년을 넉넉히 성령님과 동행하시며, 이겨내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