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8): 감사의 이유  

5:15-20

 


올해2020년은 퓨리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에 정착한지 4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1620년 스피드웰과 메이플라워 두 배가 출발을 합니다. 하지만 배에 물이 새어 바로 귀항을 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한 달 뒤 메이플라워호만 다시 출발을 합니다.

 

원래는 버지니아 주를 목적으로 했지만, 두 달 가량 항해를 마치고 메사추세츠(MA)Cape Code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들이 떠난 영국의 항구 이름을 따서 그곳을 플리머스로 부르게 됩니다(Plymouth). 그들은 바람과 추운 첫 겨울을 지나면서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어려움을 당합니다.

 

지금도 그곳을 방문하면 돈을 받고 실제 삶을 재현해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때 복장과 거주지를 꾸며 놓고 꼭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방문자들에게 들려 줍니다. 비록 종교의 자유를 찾아 왔지만, 그들이 접하게 된 새로운 정착지는 만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생존이라는 위협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가져온 식량은 떨어져 갔고, 배고픔과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도 헌신하는 몇 사람들이 있어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돌보며 버티게 됩니다. 봄이 되고 씨를 뿌려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둡니다. 그리고 첫 추수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곡식과 채소들 중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함께 음식도 나누게 됩니다. 그때 Native American들과 함께 칠면조와 pumpkin pie 를 먹은 것이 오늘날 전통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정착은 유럽의 윤리와 철학 과학 예술을 신대륙에 심는 것뿐만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미대륙에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짓기 전에 먼저 교회와 학교를 지었다고 합니다. 미래가 되는 자녀들을 키우고, 모든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와 경건생활이라는 청교도 신앙이 앞으로 태어날 미국의 토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 위에 이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1623년에는 정착지 플리머스의 행정관인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선언하게 됩니다. 그 이후 조지 워싱턴 때는(1789)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각 주 별로 날짜가 다르게 지켜오다,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1863) 오늘날 11 4째 주 목요일로 통일되게 됩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북미에 온 퓨리탄들의 정착과정에서 태어난 추수 감사절은 많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한 해를 보내면서 얻은 것이 많고 적고가 감사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기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감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인턴과 직장 구하는 인터뷰들이 아직 결정 나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박사과정에 있는 분들은 내년에 졸업할지 못할지 결정 안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실험이나 논문들이 결론을 맺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희미하고 불확실하지만 여전히 지금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것을 찾아도 없는 분들은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생각만 하면, 감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감사는 찾아야 합니다. 없다면 있었던 곳에서 찾으면 됩니다. 심지어 지금 나의 상황이 악화 일로의 순간으로 들어가는 순간일지라도, 바로 그 앞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앞으로 험난한 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결국 감사는 미래에 가서야 하게 될 나중 감사를 미리 심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를 잃었다는 것은 지금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 보기를 도전 드립니다.  

 

둘째, 감사는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협력해 준 것을 생각하고 인정할 때 더 많이 나오게 됩니다. 청교도들이 정착을 시작한 첫 겨울은 너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봄이 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습니다. 추수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힘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인디언들과 최초의 조약을 맺습니다.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 이들로부터 옥수수와 밀을 경작하는 법을 배워 농사를 짓게 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 며칠씩 굶을 때 이들은 짐승을 잡아 주었고, 틈틈이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실 생존도 첫 수확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첫 추수를 마치고 그들을 초대하여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도와준 것과 함께 한 것에 감사하며, 나누는 감사절이 되었던 것입니다. 올해 한 해를 돌아 보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먼저 함께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감사를 나누는 시간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도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함께 살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함께 어려운 상황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 시대의 동료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모두가 감사한 친구들입니다.

 

팬데믹에도 환자들을 치유해주고, 자신도 확진자가 된 의사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방역하는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정책을 통해 빠르게 대처하고 노력하는 많은 리더들이 있습니다. 하루빨리 백신을 개발해서 세상에 내놓으려고 실험실의 불을 밝히는 연구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 외에도 가게 문을 열고 우리들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수고하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분들과 협력하여 산다는 것을 느낄 때 더욱 감사는 우리에게서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어려운 시간을 걸어온 직장 동료들, 캠퍼스의 친구들에게 먼저 믿는 우리가 감사를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두 번 테스트 받으며 함께 학기를 보낸 친구가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여러분들이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가기 전에, 함께한 친구를 위해 한 날을 잡기 바랍니다. 그날은 따로 식사 하지 말고, 식당에서 픽업한 음식이라도 함께 저녁 식사를 같이 해 보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캠퍼스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것 알지 않습니까?

 

여러 사정으로 식사가 안 되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면 디저트라도 아니면 음료수 한 잔이라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함께 나누기 바랍니다. 이런 것조차 여건이 안되어 힘들면, 이타카를 떠나기 전에 팬데믹을 함께 해준 룸메이트나 연구실 동료에게 감사의 쪽지라도 책상에 놓아 두기 바랍니다.

 

팬데믹이긴 하지만 함께 실험실에서 일하는 친한 동료 한 명은 초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물론 안전을 고려해야 되고, 인원제한을 반드시 따라야 할 것, 전제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부담스럽거나 힘든 분들은 안 해도 됩니다. 아무에게도 강요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건물을 가진 교회는 제한된 인원이라도 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essential worker 들이 팬데믹 상황에도 일하며 사회를 유지시켜 나갔던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믿는 성도들도 팬데믹 상황에서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기 바랍니다.

 

잠시 생각해 보면 감사를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의 모습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믿음의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세상과 다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사랑의 행위가 세상과 달라야 할 것을 주님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6:32절은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이어서 33절은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는 보이지도 않게 섬겨 주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2020년은 정말 특별한 해인데요. 한번 특별한 감사를 해보기를 도전 드립니다. 우리 교회 기혼목장이 6개입니다. 오늘 주보를 보시면 서로 한 명씩 파트너가 되도록 목원수가 같은 목장을 짝을 지어 두었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나의 파트너 되는 분에게 성탄 카드를 한번 보내면 어떨까요?

 

이 계기를 통해 가정들이 서로 더 잘 알아가고, 가정 별로 기도제목도 나누고, 아픔도 즐거움도 함께 해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은혜 받은 성경 구절들을 서로 나누면서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함께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 제대로 이루어 가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감사 해야 합니까? 이 주제를 이제 좀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엡5:15절의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라는 말씀을 보기 바랍니다. ‘그런즉은 앞의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었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 어떻게 살아야 할 것들이 쭉 나열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20절에서는 감사의 삶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15절에서부터 이어지는 전체 문맥을 살펴 보면 더 풍성한 감사의 이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5:15-16 상반절에서 지혜 없는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과 같이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합니다. 첫째,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듯, 감사도 그 시간, 그 순간을 놓치게 되면 다음에 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머뭇거리거나, 미룰 것이 아니라 바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일년 뒤나 몇 년이 지나면, 다들 졸업해 이곳을 떠나갑니다. 떠나는 분들이나 남는 분들은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서로 감사해야 할 것들 놓치지 않도록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을 꼭 활용하기 바랍니다.

 

둘째,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16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대가 너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감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들에 대해서, 학생들이 스승에 대해, 어린 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해 감사보다는 비난과 원망이 더 늘어나는 그런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감사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5:17절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감사가 줄어들지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감사가 더 풍성해지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셋째,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17절 하반절에서 주의 뜻이 무언인지 이해하라는 말을 한 뒤 20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살전 5: 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안다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요? 짧은 시간이지만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팬데믹으로 기록된 시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3 15일 주일부터 영상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 주 금요일에 학교에서 통보가 오고 학생들이 떠나가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배가 진행되도록 은혜를 더하셔서 지금까지 8개월이 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시차가 있는 어려움 가운데도 주보와 주일 설교번역을 보내 주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찬양팀 리더 되시는 분이 보스턴으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분들이 보강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찬양이 올려 지고 있습니다.

 

예배팀 장소도 하나님께서 때를 맞추어 장로님이 집을 사게 해 주셨습니다. 팬데믹 가운데 새로 집을 짓고, 세 분이 새로운 집을 마련하셨습니다. 인턴과 job market이 어려운 상황에도 대학부 학생들에게 좋은 인턴과 직장을 주셨습니다. 세 분은 대학 교수 자리로 가시고, 한 분도 곧 떠나게 될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출산율이 더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 교회에 감사하게도 2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내년에 청년부 중 한 분이 결혼을 하게 됩니다. 가정에 자녀들이 집에서 학교 수업을 하고, 남편들이 가정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도중에도 성경공부에 조인해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예배 중보팀과 청년, 여성 중보기도 팀들의 기도가 이어지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중, 고등부 학생들의 말씀 묵상 팀이 생겨난 것도 감사하고, 자녀들이 함께 주일 성경읽기를 해주어 주일예배의 중요성을 잊지 않게 해 주신 것 또한 감사합니다.

 

KMER에 신입생들을 보내 주시고 예배를 이어갈 수 있게 하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유치부와 초등부 교회학교도 주일날 예배 드릴 수 있게 수고해 주시는 집사님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모든 것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때에 유아 세례식을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신구약 성경을 두 번이나 10명이 넘게 끝내도록 하셨습니다. 성경 읽기를 시작 하면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와 집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달라졌다는 간증도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팬데믹 동안 금식도 8개월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감사로 이어지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팬데믹으로 우리 교회 난민사역이나 단기선교의 현장사역이 올해 멈추었습니다. 직접 우리가 갈 수도 없고, 우리 교회도 재정적으로 힘든 시간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해보다 배 고프고 힘든 상황에 있는 선교지에 쌀과 옥수수, shoe box 보내기, 그리고 선교사님의 선교사역을 후원하며 바자회까지도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선교헌금들이 어려운 시기에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팬데믹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걸어가도록 우리 모두를 건강으로 붙잡아 주셨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 혹시 감사가 빠진 것이 있다면 송구영신 줌 예배를 통해 감사가 가정 별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남아 있는 올해의 시간에, 17절 말씀처럼, 주의 뜻이 무엇인지 늘 살피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가 하나님의 뜻인지 아는 성도님들은, 더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감사가 많아지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18절 말씀처럼 우리가 방탕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술을 예로 제시하지만 방탕은 낭비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주는 기쁨보다 하나님 아닌 세상 것들에서 더 만족을 누리는 삶에 물질과 시간과 관심과 열정을 사용해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 삶은 성도들에게서 감사를 빼앗아 갑니다.

 

다르게 말하면, 내 삶의 중심에 감사가 중단되어 있다면, 지금 나는 세상에 빠져 하나님을 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룬 것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해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길을 봅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아들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 때 어찌 성도가 19절처럼 감사의 노래를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추수 감사절을 맞아 찬양으로 올려 드리는 호산나 찬양대의 찬양은 어떤 시대보다 힘든 시간에 올려 드리는 감사 찬양입니다. 주님이 분명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 주님 기뻐하는 찬양을 위해 함께 해 주시고, 또 편집에 수고한 손길에 감사를 드립니다.

 

20절의 범사에 감사라는 말은 모든 일에 관여해 주시고 나와 함께 해 주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이룬 모든 일에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도록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범사의 감사가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