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5): 하나님을 힘써 알자  

1:15-19 

 


캠퍼스에 있는 교회들의 특징이 있는데요. 학생들이 일단 많습니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다 보니 당연히 직업에 대한 관심들이 놓습니다. GPA에서부터 인턴 그리고 인터뷰 등이 계속 기도제목으로 올라옵니다. 특히 팬데믹으로 힘든 가운데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구하는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칠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 세상에 몇 개의 직업이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요? 우선 대한민국은 1969년에 처음으로 직업사전이라는 것을 발간했습니다. 그때 등록된 것이 삼천 종이었습니다. 50년 정도 지난 지금은 만 이천 정도라고 합니다. 일본은 만 육천, 미국은 삼만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려동물 변호사, 반려동물 사료 시식가, 그리고 디지털장의사(digital undertaker)라는 특이한 직업도 있습니다. 개인이 죽고 난 뒤 가입했던 SNS 계정을 관리해 준다고 합니다. 고인의 개인정보를 활용한 사기를 방지해 주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달 되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어 놓을 것인지 기대가 큽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변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적응합니다. 그리고 그 삶에 맞는 직업들을 가지고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적응력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지요. , 그렇다면 인간의 믿음 생활에는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습니까? 이 시간 그 변화들을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도 확실한 큰 흐름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인간은 에덴에서의 타락 이후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더 가까이 가려고 하는 상반된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와 신앙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만든 세상 종교는 계속 인간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한편,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참 신앙은 계속 하나님께로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반대 작용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종교적 영향을 받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말씀해 주는 것이 롬 1:21-22절입니다.

 

“…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 멀어진 삶의 특징들이 나열됩니다. 먼저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허망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어떤 것에도 감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은 하나님께로 멀어질 때 나타나는 특징이긴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엡1:17절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또 엡1:19절 역시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는 말씀을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있고, 알기를 원하고 있는지 먼저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공부하는 것처럼, 연구하는 것처럼, 직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열심을 다하고 있는지요?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날 말씀 듣기도 힘이 드는지요? 유투브 통해 좋아하는 목사님들 말씀 한 두 개 듣는 것으로 만족해 하지는 않는지요? 세상 지식도 선생님을 통해, 현장과 해외연수를 통해, 다양한 실습과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알아가야만 합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성경공부나 나눔 모임들은 하나님을 아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기초를 가르치는 것들입니다.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말씀과 기도, 찬양, 예배가 있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없습니다. 세상지식은 심화학습, 고급반,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늘 기초부터 든든히 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삶에서 조금만 힘든 일 생기면 내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님 믿어도 고통이 오는데 굳이 잘 믿어야 해? 종교생활이라는 것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 아니야? 팬데믹으로 이천 년 동안 목숨처럼 지키던 현장 예배도 온라인으로 바꾸는데 좀 쉬면 안될까?”

 

그러면 이런 질문들에 대해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할까요? 정답에 가까운 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뭐라고 했길래, 핍박 속에서도 목숨까지 내놓는 길을 우리 선배 성도들은 선택했을까요? 그들의 선택과 행동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이유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분명 하나님께 답을 듣고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역사하셨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이끌어 왔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쉬운 것 택하고, 편한 것 택한 사람들은 주역이 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 이천 년 역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난 가운데 좀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신앙인들은 고난 가운데도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모이는 장소마저 핍박을 받자 들로 나갔습니다. 강변과 들에서도 박해를 받자 그들은 밤에 모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오해를 받고 힘들게 될 때 지하에 땅을 파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죽어 갔습니다(카다쿰).

 

왜 그들은 그렇게 살았을까요? 그들은 인격이 없고 배운 것이 없어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엡1: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는 말씀에서 찾고자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혜는 사람들의 축적된 경험이나 지식에 바탕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 보며 분별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을 하나님 스스로가 우리들에게 보여 주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17절이 강조하는 것은 성령이 역사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감동으로(영감:inspiration) 기록된 성경 말씀을(딤후 3:16) 묵상할 때 우리 속에 임재하는 성령을(고전 3:16) 통해서(조명: illumination)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과 환경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가나안 땅을 보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모습). 사람들은 놀라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놀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걱정하지만 담대합니다. 사람들은 힘들어 하지만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가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언제나 이런 모습일까요?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보기 바랍니다. 왕상 19:4절을 보면 어려운 시기에 힘든 상대인 이세벨을 만납니다. 힘들어하고 우울증으로 죽고 싶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왕상 19: 5, 7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를 만지며 용기를 주고, 떡을 먹여 새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라는 것은 믿는 성도들 속에 들어와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의 위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예배를 다 마치고 축도할 때 성령님의 감동 감화 위로하심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냥 폼 내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축도를 들은 주일만 위로가 우리에게 찾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우리에게, 필요할 때 마다 우리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상한 감정들을 만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팬데믹을 지내는 동안은 물론,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 감정적, 정신적, 위축감이나 외로움 쓸쓸함 고독감 우울함 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 갈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자기가 가진 그릇 이상을 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나를 치유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 주시는 떡을(말씀) 배부르게 먹으면 됩니다. 말씀이 없기에 내 심령은 텅 비어 있으니 세상 것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좋은 것들이 넉넉히 채워져 있으면 나를 죽이고 상하게 만들고 넘어지게 하는 것을 채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팬데믹 동안 집에 있으면서 걱정 되는 것을 부모님들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너무 지나친 인터넷 사용과 중독에 이를 만큼 게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때 부모와 아이가 같이 떡을 먹으십시오, 성경을 읽으십시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는 엄마 아빠가 돌아가며 1시간 정도 성경을 읽어 주거나 들려 주기 바랍니다. 글을 읽는 아이들도 반드시 부모들과 함께 1시간은 시간을 정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성경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신약부터 한번 전체를 일독을 해 볼 것을 도전 드립니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공부에 취미가 없다. 이런 모습들 성경을 읽으면서 사라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부터 아이들과 합의하에 도전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은 자녀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이끌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40분 정도 주일 빼고 매일 10장만 읽으면 5 개월 안에 신구약 전체를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는 가운데 하나님이 나의 자녀를 바꿀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민하며 자녀를 키우렵니까? 아니면 믿고 하나님께 맡겨 보시렵니까? 다 읽고 나면 그룹을 만들어 아이가 매일 성경 읽기의 리더가 되게 도와 주기 바랍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잘 알아가고 있는지요? 어른들도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하나님 버리지 않고/부인하지 않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견디며 이기며 하나님 백성으로 끝까지 살 수 있습니다. 팬데믹 영향을 3월부터 받아 8개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 견디시는지요?

 

내 힘으로 견디셨습니까? 남들도 견디니까 오기로 버티셨습니까? 힘 다 빠지고 오기 다 식어 버리면, 아직 더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분명 팬데믹은 남아 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실 것입니까? 힘든 이 시간을 잘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훈련이라 생각하기 바랍니다. 어떤 훈련입니까? 앞으로 올 마지막 때를 위한 훈련입니다.

 

종말의 때에 있을 고난을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팬데믹은 이 천년 동안 교회가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예배당 예배를 온라인으로 바꾸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팬데믹의 의미가 아닙니다. 팬데믹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앞으로 오게 될 큰 환란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끝에 지금 영상으로나마 드리고 있는 온라인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놀라며 쓰러질 것입니까? 왜 이러냐고 원망하실 것입니까? 하나님 믿어도 아무런 혜택도 없는데 괜히 믿었네? 후회하시렵니까? 땅과 하늘에 큰 일들이 일어나도 그냥 오늘처럼 예배자로 하나님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알아야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일까?’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하나님을 제대로 잘 아는 것입니다. 학생이 책을 사서 맨 앞장 내용만 알고 마지막은 모른다면 어찌 다 안다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마지막 일들을 계시로 자세히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끝에 일어날 일들을 상세히 알려주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갖고 경건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만 갖는 것은 제대로 그분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경건의 자리에 서게 만들어 세상과 구별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제 할로윈이었는데 성도님들은 세상과 구별이 있었는지요?

 

둘째로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엡 1:18절 상반절에서 언급됩니다.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우리를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면서 묻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왜 나를 코넬로 부르시고, 무엇을 하기 원하시며, 어디로 보낼지?”에 대해 하나님은 답을 주신다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갈 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약한 인간들은 나무 앞에 물 떠놓고 빌 것입니다. 우상 앞에 돈 갖다 놓고 해답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또 질문들 앞에 고민하다 산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 막고 이 땅에서 주신 복 누리며 살게 답을 주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성도는 미래가 밝을 것이다, 잘 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긍정적인 느낌을 응답으로 받지 않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마음으로 분명한 확신을 통해 기뻐하는 응답을 받습니다. 때로 답을 주어도 듣지 못하는 경우는 너무 하나님께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내 일에 너무 몰두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이루실 모든 일을 점점 구체화 시키는 분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이 경험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과 더 나아가 무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일어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반드시 행하실 것을 확신하며 끈기 있게 그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살전 1:3을 보면 확신 있는 응답을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다림은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는 모습을 보게 하면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셋째는, 1:18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은 성도가 누릴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응답을 기다릴 때 문제가 무엇입니까? 현재 필요와 부족한 것에 마음이 빼앗겨 실망하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받을 선물을 기대하면 믿음이 식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다릴 때 실망하지 않도록 누릴 풍성함을 알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을 넉넉히 이루어 낼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 원합니다. 그래서 엡1:19절을 보면  약속에 대해 성도가 확실함을 갖는 근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힘과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옆에 늘 있어 내가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나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용할 수 없는 무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나를 위해 강력하게 역사하실 것을 약속해 줍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의 편이 되어서 세상의 악한 세력에 대해 언제든지 싸워 줍니다. 또한 나를 향한 그분의 뜻을 변경시킬 어떤 힘을 가진 영적 존재나 인간도 없음을 확실하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을 알아갈 때 이처럼 놀라운 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팬데믹 상황을 아직 남겨 두고 있는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할 일이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온 성도가 마음과 힘을 다해 더욱 하나님을 알아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