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2): 구원과 전하는 삶  

1:4-6


 

지난 주부터 에베소서를 보고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었습니다. 4절에서 창세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에덴에서 타락이 일어나자 갑자기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가장 먼저 믿음으로 선포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6절에서 구원을 경험한 성도에게 세 가지를 더 당부합니다. 첫째,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인간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둘째,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획한 구원은 너무나 완전하기에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 찾지 말고 십자가만 만족하며 찬송할 것을 부탁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죄와 사망에서 예수의 피로 죄 용서함을 받게 하시며,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확실히 보증해 주십니다. 이 모든 신령한 복들이 하늘로부터 왔기에, 바울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릴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모든 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복음을 들려주고, 교회에 데려나가도, 예수를 결국 믿지 않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내 부모, 자녀, 형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께 선택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복잡한 주장들을 가장 쉽게 단순화시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택하면 구원을 받게 되고, 반대로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성경구절도 있습니다. 6:44을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두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강조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를 예수 믿게 만들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택하여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간혹 하는 분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반응은 무관심입니다. 또 불신자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귀찮아 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나를 원래부터 선택해 주지 않은 하나님이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 복음 듣기 싫어서 전도하는 분들 말 끊어 버리고, 도망갈 때 자주 사용 하기도 합니다.

 

구원 받도록 미리 결정해 두었다는 이 주장은 어떤 성도에게는 멋진 고백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분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되곤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가족을 전도해도 안 믿는 것을 보는 분들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선택 받지 못해서 예수에 대해 관심도 없고, 다니던 교회조차 떠난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네요라고 말합니다.  

 

미리 하나님이 구원 받을 자를 선택해 두었다면 왜 돈 쓰고 시간 낭비하느냐? 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며 전도하고 선교할 필요가 있느냐? 어차피 구원받을 자는 교회로 오게 될 것인데라고 말하며 반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받아들이든 vs 거부하는 것은전적으로 자신의 자유 의지가 결정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역시 이런 주장을 지지해 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의 역사 가운데 자신의 최종적 의지로 예수를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믿는 사람에게 구원이 허락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는 하나님이 전에 미리 택하여 구원 받을 사람들만 사랑하였다는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 땅에 오실 때도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선택한 그 사람들만을 위해 인간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역시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도 선택된 그들만을 위해 죽은 사건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세상이라는 단어를 분명히 사용합니다.

 

어떤 특정인들이 아닙니다. ‘온 세상 모든 개개의 한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은 자기 몸을 십자가 위에서 대속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1:29절에서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성경은 두 가지 다 지지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긴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명확한 설명이 불가능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성도의 자세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신비로운 영역으로 보아야 합니다. 2) 서로 모순되는 것을 억지로 하나로 묶어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3) 오히려 그냥 서로 다른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4) 어는 쪽을 지지하고 vs 안 하고를 떠나, 구원이 세상 속에서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을 자세히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5)성경이 아니라 인간 해석에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구원의 진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 이런 마음을 갖고 딤전 2:4절을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진리를 아는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구절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개인의 의지적 결단으로 모두가 구원에 이르는지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관점에서 이 구절을 본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미리 선택해 두면 간단히 해결 될 것 같네라고 말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어떻습니까? 현실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습니까? 현실 세계에는 불신자들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눈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왜 세상에 구원받는 사람들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가에 대해, 답을 하라고 하면, 각각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라는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미리 구원 받도록 선택했을지라도,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도록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주장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든지 vs 거부하는 것은 복음 앞에 선 인간의 자유 의지에 따라, 믿는 사람이 생기도 하고 또 안 믿는 사람이 현실에서 나온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약한 부분들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약점들을 나누기 전에, 빠뜨리고 넘어 온 타락을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구원은 타락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했다면, 이미 타락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인간 타락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에덴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하나님이 조치를 취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을 알고도 타락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에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스스로 순종으로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지켜

나가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어떻게 인간이 사용하도록 계획 했을까요?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들을 미리 선택하는 것 자체가, 자유 의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일부만 구원 받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 당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자유 의지는 제한된 것입니다.

 

둘째, 타락한 인간 전부를 구원 받지 못하도록 선택했다면(물론 아님), 이 경우도 자유 의지가 전부 무시된 것입니다. 반대로 모두 구원 받도록 선택하는 경우도(역시 아님), 역시 자유 의지는 철저히 침해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 의지적 관점에서는, 구원받을 사람들을 세 가지 옵션으로 선택하는 것 자체가 모두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뭔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한 한계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주장을 전적으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오늘 구원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문제점을 더 깊이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상세하게 다루진 않지만, 분명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 성경에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주장에 따르면, 구원 받을 자로 선택되어 살다가, 죽어 천국 가는 케이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기 전에, 이미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자신은 천국 갈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어 천국 가니 너무 좋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탁월한 선택으로, 자신이 천국에 온 것에 감사와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문제는 지옥에 온 사람들입니다. (1)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지옥 왔으니 억울합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만세 전부터 지옥에 올 신세가 되어야 합니까? 나의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셔서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사려됩니다.”

 

이런 소리들이 지옥에서 엄청나게 들려 올 것입니다. 만세 전부터 모든 것을 공의롭게 다스리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 마지막에 난감해지려고 그런 일을 자초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난처해진다고, 심판대 앞에서 지옥 갈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천국 행 버스 태워 보내야 할까요? 그러면 지옥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갈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못에 던져지게(20:15) 됩니다. 이들은 분명 믿지 않은 자들(21:8)입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21:3) 눈물이 없고 사망도 없고 애통해 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2) 20:12절에 의하면 사람의 행위를 기록한 책이 있다고 합니다. 미리 구원 받지 못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에게, 행위가 기록된 책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리 착한 일 많이 기록되어도 지옥 행이 정해졌던 그들은 너무나 억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독기를 품고, 이렇게 소리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꼭두각시로 만들어져 예수 안 믿고 살다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얼마나 충성된 종입니까?”

 

(3) 세계인구 조사에 의하면 대략 기독교인은 33%라고 합니다. 이들만 구원받도록 선택되었다면 나머지 67%는 지옥 가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이것보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는 안 된다면 90%는 허락해야 은혜의 하나님의 속성에 맞는 것 아닐까요?

 

(4)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전도와 선교는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누구를 선택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성도는 땅끝까지 가서 선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께로 멀어진 땅끝의 사람들도, 복음 듣고 구원의 대열에 동참하도록 우리가 국경을 넘어 가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멀어진 사람들이 사는 땅끝에서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예수가 나의 구원자임을 입술의 고백을 통해, 목사의 강요나 다른 사람들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자신의 결단에 따라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출발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은, 선택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딤전 2:6절을 보면,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요일 2:2절 역시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이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일부 선택과 예수님의 온 세상 사람을 위한 십자가의 상반된 모습을 보면, 구원 계획에 성부 성자가 함께 동참 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니면 두 분 동참했는데 의견이 달라 계획을 따로 발표한 것일까요?

 

(6)예수 믿고 죽어 천국 가보니, 하나님이 나만 선택해서 그 곳에 왔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닌 아내는 택함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못 왔습니다. 아들은 아예 하나님이 택하지도 않았는지 교회 근처도 오지 않더니, 천국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아는 아버지는 사랑하는 가족들 지옥 보내고 천국 문 기쁘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천국 못 오니 가슴 아픈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 천국 못 온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깊어질 것입니다. “전도 아무리 해도 안 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해 두셨군요!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에 이런 의미가 있다면 열심히 복음을 전하던 사람도 실망되지 않겠습니까?

 

 

(7) “택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전도 해도 믿지 않을 거야. 세상에서 즐기다 지옥 가게 놓아 두자.” 전도하려는 마음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는 분명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 하기 원하는 성부와 성자의 마음 때문입니다. 11:28절에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초청장은 누구를 제한 하지 않습니다. 죄 가운데서 힘들고 어려운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분의 전도 대상자들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의 구원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지상에서의 주님의 삶 역시, 바리세인에서부터 창녀 세리까지 찾아가,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해 주시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벧후 3:9절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은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심판 날이 다가올수록 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성도들에게서 커가야 할 것을 보여주십니다. 

 

설령 하나님에 의해 구원 받기로 결정되어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그 사람들 조차도 무조건 복음은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부각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선택 되었기에 전도 안 해도 구원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 전도와 선교에 대한 게으름을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지금 내 가족, 내 형제, 내 친척과 이웃들에게 전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팬데믹이라고 전도와 선교가 막힌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전도 사역에 더 열심히 동참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전도합니까? 누구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교회에 다니면 구원 받는다고/받았다고 생각하는 구원 보장론’(교리없음)을 주장하는 분들입니다. 내 목장의 성도 그리고 내 집에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은 복음을 들어야만 합니다. 전도가 일어나야 합니다. 진정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입술로 고백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는 확신이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도 평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인가?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희생한다는 생각 없이, 섬김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구원이 뭔가를 행해야만 얻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한 가지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 보면 됩니다.

 

그것은 마 28:19-20절의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오늘 다룬 주제와 같이 복잡한 것들이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2:8) 라는 구원 방법과 우리가 복음을 들고 가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선택해 둔 사람일지라도,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든지 복음을 들어야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 얻는 사람들이 충만하기까지, 전도와 선교에 기도와 관심이 식지 않고, 열정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