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11): 주 안에서 자랑  

고후10:12-18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자랑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거짓말도 자랑합니다. 초등학교 때 들은 이야기인데요. 한 사람이 방귀를 끼었는데 절구통이 날아 갔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날아간 절구통이 거미줄에 걸렸다고 말해 거짓말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대회가 실제 있는지 찾아 보았더니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 허언증 대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짓말 잘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라 좀 그렇지만 재미 정도에 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자랑은 교육적인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랑이 아무리 좋은 면이 있어도 부정적인 면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자랑이 심할 경우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듭니다. 어린 아이들은 너 이것 가지고 있어라고 직구로 날아옵니다. 그런데 어른인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지난 달에 구입했어요라고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자존심에는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은 물론 11, 12장에 계속 자랑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다 살펴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일상에서 우리가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하지 말아야 할 자랑들. 또는 자신도 모르고 하는 자랑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도 있는 잘못된 자랑들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고후 10:12절 상반절을 보면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여 비교할 수 없노라는 말씀에서 자기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이 경우는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나중에는 남들에게 왕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왕자 병, 공주 병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외모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의 것 까지도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잠 26:12절은 알려 줍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스스로 남들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심각성을 지적해 줍니다. 

 

특별히 교회는 늘 합리적인 사고와 분석과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잘 결정했다고 결론 짓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고전 2:13절은,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주의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래서 보이는 싸움은 물론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 것과 영적인 것이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늘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후 10:4절을 보면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들과 이 싸움을 언제까지 하는 가를 보면, 고후 10:5절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기까지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내 종이 아니라 우리가 주의 종(slave)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자기 판단을 내세우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런 모범이 되는 좋은 인물이 있습니다. 삼상3:10절에 하나님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사무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사무엘의 모습은 자신이 판단하고 분석하고 결론지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 놓는 것이 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 생각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를 사 55:8-9절은 하나님의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고 하늘이 땅 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아멘으로 우리 심령 가운데 늘 자리잡고 있기를 바랍니다.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교만이 있을 때 우리의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도 안 보이는데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 나의 이웃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는 출발이 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두 번째 잘못된 자랑입니다. 이 경우는 실제 남들보다 더 잘하거나, 더 많이 소유 하거나, 더 높은 직위나, 명예를 가진 것을 남들도 그 사실을 인정해 줍니다. 문제는 자신의 자랑거리인 힘이나 직위나 명예를 가지고 이익을 챙기거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 무시하거나, ‘행사를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를 고후 10:12절 하반절 새번역은 그들은 자기를 척도로 하여 자기를 재고,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자기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니, 지위가 높고, 많이 가지고 있고, 강해 보이기에 권력을 행사하고 다른 사람을 로 취급하게 되는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런 잠재적인 위험이 실제로 나타나면 사람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종처럼 여기고, 심지어 사람들을 차별하고 폭력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고 위험도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도 이런 집단들이 있었고, 지금도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서도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들이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연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운 것을 하나 보게 됩니다. 갖지 못하고, 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자존감 상한다고 폭력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누릴 것이 많고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낮은 자존감 보다 오히려 높은 자의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특권의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집단들이 점점 사회가 평등해지고, 사회적 인식들이 변해갈 때 부적응이 폭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위나 명예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무시 당한다, 특권을 빼앗겼다는 생각들이 점점 사람들을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해는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고 확실해 집니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모든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악을 행하는 죄인이라는 하나님 말씀만이 맞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성도는 비교 가능한 사람들 앞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늘 선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악한 모습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다음 세 번째 잘못된 자랑을 고후 10:13절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라는 말씀에서 찾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랑을 하면 부풀리면 부풀렸지 작게 하지는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컨설팅 회사 사장이 첫 개업을 하는 날입니다. 손님 한 분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것처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회장님 안녕하세요?’라는 소리를 하며 통화를 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 보기 바랍니다. 통화를 마치고 들어온 사람에게 어떤 일로 왔냐고 물었는데 그 사람이 전화선을 이어 주려온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까요? 지나친 자랑이 창피함을 넘어 남을 속이는 죄를 범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후 10:15절에서 마지막 네 번째 잘못된 자랑을 보면, ‘남이 수고한 것을 내 것인 양 자랑하는 경우입니다. 관계는 파괴되고 나중 그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자랑 한 그 사람의 신뢰는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잘못된 자랑들을 다루면서 자랑은 조심해야 하며 죄를 짓는데 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확실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자랑들을 듣다 보면, 자랑 할 것이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문 고후 10:17절에서 바울은 성도를 향해 자랑하라고 합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주 안에서라는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도대체 바울 사도가 말하는 주 안에서 자랑은 무엇인지 궁금해 집니다.

 

세상 성도들은 어떤 자랑을 하고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새로 오신 분들에게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요. 좋은 건물에 주차장에 교육 시설도 좋고, 프로그램도 좋아요. 게다가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유명한 분들이 출석해요. 자랑은 자랑이지만 주 안에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1. 주 안에서라는 말은 주님 밖에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가 우리 자랑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누는 대화 가운데 예수님이 한번도 언급 되지 않으면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나에게는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주 안에서의 자랑입니다.

 

이것을 고후 10:18절은 더 상세히 말해 줍니다. 최종적으로 모든 성도는 주님 앞에 서 게 됩니다. 그리고 옳다함을 하나님께로 받게 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주님의 피로 씻음 받은 나를 의롭다 인정해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영원히 함께 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자랑할 최고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러므로 구원을 말하지 않는 자랑은 주 안에서 자랑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모든 스토리는 전부 구원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에서 예수님, 십자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이 빠진다면 우리의 자랑은 세상 자랑일 뿐입니다. 세상이 칭찬해 주는 그런 자랑들은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구원을 자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계 20:15절에 의하면,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불못에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 20:10절을 보면 그 불못에는 세상을 미혹했던 마귀와 말세에 나타날 사탄의 추종세력인 짐승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던져져서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도 자신이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거나 이곳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옥은 없다.’ 그리고 믿는 성도들을 향해 거짓이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말이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만약 믿는 우리들이 그들을 위협했다면 그렇게 속이고 뭔가 얻는 것이 이 세상에서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오히려 이것을 말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핍박과 순교까지 당했습니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 것을 왜 거짓말하며 사람들을 두렵게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사기를 쳐서 세상 낙이라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것이 진실이고 그렇게 말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하나님이 진리임을 아는 것이 전부입니다.

 

주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이 왜 가족입니까? 가정에서 일어나는 힘들고 어려운 모든 일을 함께 나누고 아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3 주 안에서 자랑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시며, 성령 하나님이 나의 위로자라는 영원한 관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좋은 곳, 맛있는 것 추억에 남을 시간들을 올립니다.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보다 더 많이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누고 나에게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더 이야기 하려고 저는 노력합니다. 한번도 그런 글이나 모습이 없다면 이제라도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4. 주 안에서의 자랑은 구원의 확신을 나누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떠나 가서는 안됩니다. 가을학기 목장으로 다시 모이면 한번 자신이 주님을 만난 사건을 목원들과 함께 나누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 전에 개인적으로 조용히 일기 형식으로 한번 주님과의 기록을 남겨 보기 바랍니다.

 

첫 부분은 주님을 만나기 전의 나의 모습을 적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만든 계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예수가 나에게 어떤 분으로 고백되었는지 등을 기록하시고 마지막으로 예수를 믿고 난 뒤 나의 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이 담기 사도행전 22장을 참고 하셔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 자랑은 멋져 보이고 매력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끌리는 이생의 자랑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허상입니다. 요일 2:16절에 의하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세상 자랑을 하고 있다면 아직 세상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요일 2:15절에 의하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군가를 자랑하는 것은 관심이 있고 좋아하고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누구를 사랑하고 자랑하고 있는지를 한번 자신을 보는 시간이 있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 코넬한인교회 성도에게 필요한 점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물론 아닌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 세상 사람들이 자랑할 만한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고, 올라갈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누리는 것을 통해 주 안에서 진정한 예수 자랑 꾼들이 다 되실 줄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주 안에서 자랑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를 살피려 합니다. <1>세상 자랑은 밑천이 딸리고 한계가 있습니다. 나보다 돈도 지식도 명예도 많고 크고 높은 사람이 있기에 자랑할 수 없어 기가 죽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의 자랑은 끝없이 할 수 있습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고후 10:15절은 우리의 믿음이 자랄수록 더욱 주 안에서의 자랑이 풍성해진다고 말합니다. 풍성하다는 의미는 16절을 보면 우리의 지역을 넘어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주 안에서의 자랑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가야 하기에 멈춤이나 한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전도와 선교를 다녀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유티카 난민사역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코넬한인교회 제직회가 우간다 선교사님 사역을 돕기 위한 자동차 구입 지원금과 미종족 지역에 쌀 나누기와 과테말라 옥수수 지원금을 결정하고 보냈습니다. 더 많은 주 안에서의 자랑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2>주 안에서의 자랑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되어가는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하늘의 쌓여가는 보화를 통해 가난한 이웃들을 찾아 돕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결국 주 안에서 자랑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 미종족들을 지원하는 사역이 더욱 활발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자랑이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평생 자랑이 되야 합니다. 평생이란 말에는 일평생 헌신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즐거우나 괴로우나 주를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즐겁고 좋을 때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난과 시련 가운데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이 영원 하시기에 주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랑만이 영원합니다. 이 세상 것은 다 사라지고 주님 앞에까지 가져 갈 수 없습니다. 또한 주 안에서 나는 죽었기 때문에 주안에서의 자랑은 내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6:14절의 바울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이 나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