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예배: 준비하며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역하 28:1-8, 18-25; 29:1-3, 10


 

어릴 적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집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나무를 아버지가 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베고 난 자리에 엄청나게 큰 나이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동일한 굵기로 자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간격이 좁은 것은 매우 힘들게 자랐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올해 졸업생들은 참 힘든 인생의 나이테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매듭을 지었고 성장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 낯선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잘 견디어 냈고, 드디어 졸업이라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에게 졸업을 축하를 드리고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다닌 코넬한인교회는 우리 청년들에게는 제 2의 고향과 같고, 기혼자들에게는 친정 집과 같은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추억을 만들어낸 곳이고, 또 어떤 분들은 이곳에서 주님을 만나 영적으로 거듭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부부들은 이곳에서 자녀를 한 두 명식 낳고 기르면서 부모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또 자녀들 데리고 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곳입니다. 아이들 기르고 본인도 학교 다니면서 힘든 일도 많았겠지만 또 되돌아보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내었던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상처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곳에서 생긴 상처들은 새로운 마음의 결단과 각오가 되고, 힘들었던 일들은 앞으로 다가올 날들의 좋은 교사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도할 때 응답 받고 감사했던 순간들을 잊지 마시고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시며 도우시고 나에게 승리 주시기를 좋아하는 하나님을 사모하기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올해는 얼굴과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여러분들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졸업생들과 이곳을 떠나는 분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더 넘쳐 날 줄 압니다. 그리고 2020년 졸업은 정말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겨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 낼 수 있는 백신이라는 좋은 선물을 가지고 갑니다. ‘나는 인생의 고난을 이겨내는 백신 맞았어라고 자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싸울 준비가 되신 졸업생 여러분들! 당당하게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한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한 전 과정을 여러분들과 같이 잘 마친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일국의 왕자로 태어나서 왕의 수업을 받으며 그날만을 기다려 왔을 것입니다. 29:1절을 보면 드디어 왕관이 머리에 쓰여지는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역대 왕들을 쭉 살펴 보고 있지만 히스기야처럼 잘 준비된 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증거로 29:3절을 보기 바랍니다(#1).첫째 해 첫째 달에라는 것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가 왕이 되기 전에 미리 자신의 왕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청사진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왕이 된 첫 해 첫 달부터 그대로 계획했던 모든 일이 시행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런 왕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유다 왕들 중에 가장 어린 나이인 7살에 왕이 된 요아스가 있습니다(역하 24:1).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왕이 해야 할 일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대하24: 3-4절을 보면 장가 들어 자녀를 낳고 난 뒤에 성전을 보수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아달랴로부터 자신을 구해주고 성전에서 키워준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을 봅니다.

 

오늘 본 히스기야처럼 25살에 왕이 된 유다 왕들은 4(아마샤, 요담, 히스기야, 여호야김)이 있습니다. 다들 동갑의 나이에 왕이 되긴 했지만 히스기야처럼 준비된 왕은 없습니다. 29:10절에 그의 준비된 모습이 한번 더 보입니다(#2). 하나님을 위해 유다를 새롭게 하려는 마음이 내게 있노라는 표현을 통해 전달 됩니다.

 

오랫동안 준비된 그의 결심과 계획들은 29장에서 32장까지 무려 넉 장에 걸쳐 소개됩니다. 이제 궁금한 것은 그의 첫 번 결심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29:3절을 보면, 성전의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문을 열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모든 제사가 중단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아니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28:24절에 의하면 바로 아버지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왕들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전 안에 이방신을 가져와 섬기고 이방 성전구조를 본 따 만든 왕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문을 전부 닫아 아예 제사장의 출입을 막아버리고 제사를 못 드리도록 한 왕은 없었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는 당시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이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악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고 28:25절은 전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가장 먼저 성전에서 제사가 다시 시작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아버지의 악한 행위를 끊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아버지의 종교 정책을 뒤 엎어 버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아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졸업생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어느 곳에 가든지 가장 먼저 예배 처소인 교회를 찾으십시오. 예배는 하늘의 복의 문을 여는 시간입니다. 이타카를 떠나는 분들은 매일 개인이 드리는 경건의 시간(새벽기도회), 그리고 가정예배를 살려 여러분의 삶에서 예배의 문이 닫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사함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사함 받은 의로운 백성들을 하나님이 만나 주는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막히고 안 될 때 여러분들이 진정한 예배자로 나아가 내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로 하나님의 얼굴을 돌리는 주인공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민 6:24-26절을 보면 이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이 두 번이나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된다는 그런 의미로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이어지는 27절 말씀입니다. “ 그들(제사장들)은 이 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이 이 시대에 누구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는 모든 성도를 벧전 2:9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선포되는 축복의 소리를 듣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성도가 목사에게, 목사가 성도에게, 교회가 세상을 향해 축복을 선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 거룩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니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서로 축복의 말을 서로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이 새일 것입니다. 우리 코넬한인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여러분의 평생을 통해 닫히지 않는 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다음 질문은 히스기야는 어떻게 왕이 되기 전에 이런 준비를 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을 통해서입니다<1>. 훌륭한 아버지 밑에 훌륭한 아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아하스와 히스기야 부자 관계입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악한 아버지 밑에서 선한 아들이 나온 경우입니다.

 

아버지 아하사는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였다고 역하 28:1절은 말해 줍니다. 28:2, 3절을 보면 바알을 숭배하고 어느 왕도 하지 않던 인신제사를 드립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가 형제 중 하나를 불 가운데 던지는 모습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악행에 대해 하나님은 철저히 벌하는 모습을 확실히 히스기야는 왕이 되기 전에 보았습니다. 역하 28:5절에 하나님은 아람 손에 아버지 아하스를 넘겨주어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게다가 28:6절을 보면 북이스라엘 베가 왕에 의해 12만 명의 군사가 죽임을 당합니다.

 

28:8절에는 이십만 명이나 되는 남유다 사람이 북으로 잡혀 가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북쪽의 오뎃이라는 선지자의 말을 들은 북이스라엘 형제들이 남유다 사람을 집으로 돌려 보냅니다. 히스기야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도 왕이 되기 전에 들었거나 경험을 하게 됩니다<2>.  

 

이 일 후에 28:18절을 보면 블레셋이 침입해 유다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차지해서 살게 됩니다. 서쪽의 지중해로 나아가는 길과 남방으로 가는 교역로가 막혀 물류가 유통되지 못하고 유다는 고립 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28: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아하스가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게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고 분명히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들은 나중 역사가들의 견해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시대 살았던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히스기야 때 이사야 선지자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이 히스기야에게 올바른 신앙관을 심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침입을 받고, 그리고 병들어 죽게 된 때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던 사람이 이사야라는 것을 사 37:4은 말해줍니다.      

 

아들은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질 왕국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다스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 아하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블레셋과 에돔이 유다를 괴롭히자 아버지 아하스는 28:20절을 보면 드디어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유다를 돕지 아니하고 오히려 침공해 도움이 안되었습니다.

 

상황이 더 힘들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28:22절을 보면 아버지 아하스는 곤고한 일을 당하면서 더욱 여호와께 범죄를 이어갔습니다. 28:23절에는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지난 주에도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도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25:14).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이런 잘못된 신앙을 반면교사로 삼아 왕이 되고 난 뒤에는 더욱 힘든상황이 올 때마다 더욱 하나님을 찾는 자로 서게 됩니다. 이사야 37장을 보면 앗수르가 쳐 들어와 나라가 위기에 놓입니다.

 

당시에는 북이스라엘을 집어 삼킨 앗수르가 남유다까지 넘보던 최고의 절정기였습니다. 이때 힘든 위기 앞에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전철을 따르지 않습니다. 37:1을 보면 자기 옷을 짖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갑니다. 그리고 37:15-20절에서 유명한 그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졸업생들은 히스기야의 마음에 있던 그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내 삶을 힘들게 만들어도 나는 하나님을 멀리 하지 않겠다. 더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반드시 경험할 것이다. 이 이름다운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자신에게 복 주지 않는 하나님께 대하여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화를 내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 드리지 못하게 성전기구들을 모아 부수어 버리고 성전 문들을 닫아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정말 없을까요? 이런 사람이 나오지 않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안 도우면 여기까지는 안 가지만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합니다.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예배가 점점 멀어집니다. 교회도, 주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모습을 보고 반대로 믿음을 가진 아들이 나왔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교회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힘든 일, 어려운 일, 심지어 내가 입은 손해까지도 하나님은 그분을 철저히 신뢰하는 주의 자녀들을 위해 선으로 바꾸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만날 교회에서 히스기야와 같이 나쁜 경험들을 좋은 교훈으로 활용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혹시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상처 받은 분들이 있다면 변명이 아니라 오늘 말씀이 위로가 되기를 진정으로 소원합니다. 잠시 남은 시간에 우리 교회 졸업생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올해 코로나로 인해 졸업생들에게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올해2020년 박사과정 포닥과정 분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분들이 미국대학의 교수로 임용되는 해입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가 넘쳐나길 바랍니다. 앞으로 졸업을 위해 달려가는 청년, 기혼자 분들 여러분들도 앞으로 History Maker가 될 주로 저는 믿습니다. 믿는 분들은 계시는 자리에서 다 아멘으로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히스기야가 왕이 되기 전에 잘 준비 되었던 또 하나의 비결이 있습니다. 29:2절에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남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선한 왕으로 기록된 왕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영예는 다윗의 행실을 따라갔다는 표현입니다.

 

왕들 가운데 이 표현이 사용된 왕은 세 명뿐입니다. 여호사밧(17:3)과 히스기야(29:2) 그리고 요시야(34:2)에게만 주어진 명예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윗을 자신들의 영적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허물이 많지만 왕상15:5절에 헷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살았던 다윗을 보며 히스기야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려는 아름다운 마음을 품었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은 누구를 여러분의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계십니까? 다윗보다 뛰어나시고 흠도 없고 죄도 없으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주님 바라보며 앞으로 주어질 미래를 위해 다시 준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을 주는 사람을 만날지라도 예수의 마음으로 용서하시고,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예배의 문을 닫지 않겠습니다. 이런 단단한 마음을 품는 우리 2020 졸업생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은 그 얼굴을 여러분들에게로 향하시사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은혜와 평강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