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6): 전심으로 하나님만 찾는 자가 승리 합니다  

역하 16:1-10

 


온 세상을 살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에는 사람이 주로 정보를 수집했지만 요즘은 하늘에서 비행기나 인공위성을 사용합니다. 과학의 발달로 사람들의 대화나 전파까지도 듣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군사적 움직임은 물론 구름 변화까지 추적하여 날씨도 예측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을 보니 하나님도 대단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이 온 땅을 두루 감찰한다고 합니다. ‘감찰한다는 것은 샅샅이 살핀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예리하면 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들을 찾아내기까지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하나님 앞에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하나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두 주에 걸쳐 살펴 본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충성스런 왕이었습니다. 이름없는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에도 순종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1-3절은 소개합니다. 아사 말년에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쳐 내려와 라마에 성을 건축합니다. 아사는 즉각 아람(시리아) 왕 벤하닷에게 돈을 주어(2) 북이스라엘을 쳐들어 올 것을 부탁을 합니다(3). 당연히 북쪽을 위협하면 지금 남쪽에 와 있는 군사를 돌이켜 방어를 해야 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물러나면 그때 아사는 성읍을 회복하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 전략이 먹혀 들었습니다(4-5). 북의 군대가 돌아가자 아사는 라마를 건축하던 자재들을 가지고 자신의 성읍을 건축합니다(6). 군사적으로 보면 매우 지혜로운 전략입니다. 문제는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마음에도 합당한가?’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아가 묻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7절을 보면 선지자가 등장하기에 없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선지자가 오지 않는다고 자신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자는 내가 생각하고 좋다고 판단되는 것을 하나님이 일하는 현장에 먼저 적용하지 않습니다(#1).

 

기도하고 하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을 우리는 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힘든 일이 생겨도 기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고는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힘든 일 생기는데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사실 어디 있겠습니까?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생활이 습관화 되어 있지 않다면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삶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기도 습관을 만들기도 힘들지만 지켜 나가는 것은 더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신앙생활의 연수가 좀 더 길어질수록 기도하는 신앙 체질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재위36년이 되면서 아사는 경험도 있기에 이제 묻기를 멈추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경험으로 축적된 자신의 예리한 분석과 판단을 더 믿은 것입니다. 우리도 나 자신을 한번 스스로 살펴 보기 바랍니다. 머리싸매며 고민하는 시간이 많습니까 아니면 기도하는 시간에 더 투자를 합니까?

 

고민하면 우리의 생각이 튀어 나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답이 들려지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 따라가지 않으면 아무리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잘 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 없는 것은 마지막 때 타는 유황 불 가운데 던져 지기 때문입니다. 아사를 보기 바랍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따라 갈 때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북이스라엘의 군대가 물러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겨둔 자재들을 다 차지합니다. 어쩌면 돈 주고 아람 왕의 용병을 산 돈이나 자재비용이나 비슷한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비용을 줄였는지도 모릅니다. 직접 전쟁을 한다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어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사고 싸움에 질 수도 있는 부담을 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보겠지만 계속해서 아람이 남유다를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7절에서는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지금까지는 아람이 강성하여 주변국에 위협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잡아 두었기에 유다를 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풀렸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9절에서도 유다가 더 심하게 당할 일을 9절에서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어리석은)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노하시며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8절에서 어린 시절의 아사가 구스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승리를 거둘 때를 언급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는 현재의 아사와 대조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성도님들도 변한 것이 있는지 살펴 보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는 변한 내 모습이 있을 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빨라야 합니다(#2). 그러나 아사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자신을 화나게 한 선지자를 감옥에 넣어 버립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반대하는 몇 사람을 학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사람의 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을 사는 아사였다면 선지자에게 그런 반응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도에게 이 영역이 잘 훈련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의 말로 들리면 죄에 대한 처리를 잘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예가 바로 아사입니다. 사람의 말로 들리면 선지자에게 반응을 하게 됩니다. 자신보다 낮거나 덜 배우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면 무시하거나 묵살해 버릴 수 있습니다.

 

내게 주는 말씀을 주의 음성으로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잘 반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일이면 찬양과 영광을 드리고, 죄가 있음을 들으면 철저히 회개의 자리로 나가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로 믿고 주님이 나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행하는 성도입니다(#3). 이런 복된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