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2):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1-2

 


2020NYBC가 은혜롭게 마쳐 감사를 드립니다. 가정과 모든 성도 한 분 한 분에게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교회를 개척하고 편지를 써서 교회들에 보내곤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편지를 쓰는 당시에 나이가 많았습니다. 마치 유언처럼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 있기를간구합니다. 이 축복의 말씀은 베드로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 역시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자주 사용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즐겨 사용했던 것이라면 우리들도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평강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내 삶의 중심을 내어 드릴 때 평강이 있음을 지난 주 나누었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누구에게 더욱 많이 평강을 허락하실까 하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사랑 받는 자들을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주인에게 종이 있는데 종이 주인처럼 행동 한다면 주인이 과연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무엇보다 종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여기서 이란 단어는 노예라는 뜻입니다. 주인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심지어 그를 위해 죽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베드로의 성숙된 신앙이 보입니다. 누가 스승의 사랑 받는 자들인가 싸우고 묻던 그런 철부지가 아닙니다. 젊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는 일들이 있었습니다(2:41). 심지어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9:41) 기적도 행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명성을 한 몸에 받던 베드로입니다.

 

그런 자신을 이제 이라고 부릅니다. 거칠고 철부지 같았던 그가 주 안에서 다듬어진 것입니다. 평강이 넘치는 사람은 주님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종으로 겸손함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순간부터 다시 부르심을 받는 그 날까지 종의 마음을 가질 때 주의 은혜와 평강이 더해질 줄 믿습니다.


둘째로, 은혜와 평강이 더 많이 받는 비결은 사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인이 사도의 경험이 있기에 이런 말씀을 교회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사도로 살면 은혜와 평강이 더 있을까? 사도는 우선 초대교회 당시에 제자들이었습니다.

 

사도는 제자로서 훈련을 마치고 주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멀리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가족들과 함께 아니면 혼자 복음을 위해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교회를 세워 나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사명은 십자가와 복음의 진리를 이 땅에 선포 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위험을 안고 산을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먹고 입고 자고 다음은 어디를 가야 할지 오히려 더 많은 걱정과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떻게 평강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더 많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습니다.

 

염려와 걱정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장례식에 가 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을 보면 그 모든 것 앞에 평강을 누리는 모습입니다. 결국 우리가 더 많은 평강을 받는 비결은 내가 살아도 죽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들의 비결입니다. 실제 죽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주 안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이 경험을 못하면 늘 내 자아가 죽지 않아 살아있어 내가 주인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을 다 책임지고 살아야 하니 걱정할 것 다합니다. 걱정 염려 앞에 떨 것 다 떨고 언제 주님이 주시는 평강 한번 누려 보겠습니까?

 

내가 십자가에서 매일 죽으면 죽음에서 살아나신 주님이 나와 함께 살자고 손을 잡고 일으켜 주십니다. 종으로 순종하는 자세로 주 앞에 설 때 그리고 사도로 나는 죽었다는 마음으로 살면 주님은 2020년 남은 시간에 늘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더 많은 평강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에게 평강이 더 많이 생기는 마지막 비결이 2절에 하나 더 있습니다. 평강은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과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우리의 평강과 어떤 관계인지 사실 이해는 잘 안 됩니다. 한 예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과목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시험을 칩니다. 그 결과는 심하면 낙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경외하는지를 알아보려고 시험한다고 합니다(22:12). 그때 대충 하나님 알고서 그 시험 잘 통과하지 못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 시험을(22:1) 잘 통과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들 이삭을 받치라는 시험 문제를 받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사흘을 걸어 아들을 칼로 죽이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며 저지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미리 준비한 양으로 번제를 드린 후 그는 평강을 누립니다.

 

그에게 평강이 더해진 것은 독자 이삭을 살린 것에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안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알았는지 궁금합니다. 11:19절을 보면 아들을 죽여도 아들을 살려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이라 부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알고 아브라함은 실행했는데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가 느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러면 다시 본문 2절을 읽어 보시면 말씀의 의미가 확 들어올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더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알아 가는 방법은 성경읽기와 기도와 말씀 묵상을 체질화 하는 것입니다. 2020년에는 모든 성도가 주의 종으로 순종하며, 나는 죽었다는 사도의 마음으로 살고,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평강을 더 얻어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