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1):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성탄    

1:18-25


  

어김없이 성탄은 찾아옵니다. 저는 이 때가 되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이 어떤 의미인지를 늘 묵상하곤 합니다. 선물 주고 받으며 그냥 지나는 하루 보다 더 큰 의미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이 들려주는 성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셉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하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유대 풍습은 남녀가 서로 정혼하기로 약속하면 일단 법적으로 부부가 됩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요셉을 그의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두 가지 제약이 있었습니다.

 

부부관계를 갖지 못하였고 부모의 허락이 없이 신부를 집으로 데려오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18절을 보면 아내가 될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려 옵니다. “나타났다는 표현은 마리아 자신이 먼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1:26을 보면 천사가 먼저 마리아를 직접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마리아로서는 이 사실을 숨길 수가 없어 요셉에게도 알립니다. 그런데 요셉이 황당해 하는 것은 성령으로 아이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용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면 율법에 따라 그녀는 죽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고민 끝에 그는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새번역)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공동).

 

이런 요셉을 의로운 사람’(개정, , ) 또는 법대로 사는 사람’(공동)으로 번역합니다. 그가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반드시 돌에 맞아 죽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그렇게 죽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깊이 배려한다는 점에서 덕있는 사람으로(virtuous) 번역도 가능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녀의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믿지 못하지만, 마리아의 형편을 동정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19절 하반절을 보면 요셉은 법대로 하지만 약혼녀를 배려하며 조용히 그녀와의 관계를 끊고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주의 사자가 꿈을 통해 일어난 일들을 그에게 말해줍니다. 마리아가 진실로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20)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기 백성을 구원할 메시야임도 선포합니다(21). 그리고 더 확실히 믿도록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예언이 이루어졌음도 확인시켜(22) 줍니다.  


이런 말씀과 계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셉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 정도로 이해는 하지만 법에 따라 헤어지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계보를 통해 메시야가 나실 언약을 이루기위해 요셉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요셉에게는 자신과 싸우는 긴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의 사자의 말을 믿고자 해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나 경험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한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믿기 어러운 일입니다. 게다가 이들이 아직 동거하기 전입니다. 그러므로 불미스런 일이 분명 있었는데 마리아가 숨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정숙한 여인임을 알기에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신의 이해와 경험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철저한 도구가 됩니다.


이 땅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즐거움으로 수행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부정하게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이겨내며 마리아를 지키고 위로해 나갑니다. 무엇보다 이 땅에서 아버지로서 자식을 보호하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아이로 즐겁게 키워 갑니다.

 

헤롯이 유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2:13) 요셉은 아이를 피신시킵니다. 유대 사람이 애굽으로 가서 산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문화적 차이와 언어도 다른 곳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이 아이가 세상에 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 양육하는 아버지의 소명을 즐거이 감당합니다.

 

한편, 아이가 자라며 매년 태어난 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요셉은 장차 이 아이가 죄에서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야임을 생각하며 소망의 시간을 누립니다. 요셉에게 성탄은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가 장차 자신의 품을 떠나 세상을 구원할 그 날을 기다리며 소망을 품는 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말라기 이후 3-400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단비와 같은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억하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살며 잊혀진 백성들을 찾아와 구원을 베푸시고 그들과 함께 한다는 소망이 요셉의 심령에서 살아납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쁨과 소망이 성탄에 넘치기를 원합니다. 이천 년이 지난 오늘도 생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복된 소식에 기뻐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가는 문제로 힘들어 하는 우리들에게 오셔서 함께하시며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를 소망하는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