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15): 하나님 나라 이루어 가는 도구   

삼하 7:16; 왕하 11:1-12

 


세상은 늘 순리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모습 중 하나를 1절에서 봅니다. 한 나라의 왕이며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친 어머니로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을 잃은 백성들과 함께 온 나라가 애도하며 다음 왕을 세울 준비를 하는데 한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가 이상한 행동이 돌출합니다(1). 왕위를 이을 왕자들을 친할머니가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따지고 보면 친손자들을 입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인생 막장 극입니다. 어떤 사람도 이 아달랴의 야욕에 찬 살생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한 어린 왕자를 구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아하시야 왕의 누이인 여호세바입니다(2). 여호세바가 죽은 아하시야 왕의 누이라면 아달랴는 그녀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손자들을 죽이면서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하고. 딸은 어린 조카를 구하는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아마도 아달랴가 친어머니가 아니기에 여호세바가 그렇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1살난 어린조카가 왕위를 이을 유일한 씨이기에 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4절에 여호세바의 남편인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을 불러 여호와의 성전에서 언약을 맺고 맹세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의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어린 왕자를 구한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삼하 7:16에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영원한 왕조에 대한 언약을 이어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기에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믿음의 결정이었습니다. 어떤 정치적인 이해나 인간적인 탐욕이 하나님의 뜻에 끼어 들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이루어진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에 대한 언약을 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기생 라합이나 이방여인 룻의 이야기에서도 보았듯이 다윗의 씨에서 메시야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달랴가 왕자들을 살해한 것은 단지 개인의 야욕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의도가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아달랴는 북이스라엘을 바알숭배로 이끌었던 아합과 이세벨의 딸입니다. 아달랴는 남유다 여호람 왕에게 시집을 올 때 그녀의 어머니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남유다를 하나님 신앙으로부터 떠나게 만들고 온통 바알을 섬기게 만들었던 장본인입니다.

 

아달랴가 여호람 왕에게 시집와서 남유다에서 여호와 신앙을 와해시키고 권력을 사용하여 이방신을 섬기게 했는지를 왕하 8:18절은 보여줍니다. “그가(아달랴의 남편 여호람 왕)()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가장 악한 북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아달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오늘 본문의 사건은 아달랴 개인의 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이땅에 오는 것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무서운 사탄의 음모에 아달랴갸 도구로 사용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여호세바는 이 사탄의 음모를 막아내고 하나님이 세운 언약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쓰임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조그마한 사건 조차도 영적 전쟁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호세바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통로로 사용 될 수 있습니다. 먼 훗날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우리를 통해 이뤄 가신 역사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늘 두 가지를 사용합니다. 첫째는, 주님이 다시 와도 이 땅이 온통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을 자신의 도구로 삼아 그들을 돕습니다. 이세벨이나 그의 딸 아달랴 처럼 권력을 장악하고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 백성들을 미혹시키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나타나게 될 적그리스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둘째는,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통해 나타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약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약점을 파고들어 죄를 짓게하고 서로 미워하고 용서가 없고 사랑이 메말라 가게 만듭니다.

 

이런 모습들을 딤후 3: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배신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심어두신 그분의 속성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세상에서 공의와 정의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나라와 나라 간에는 평화가 자리 잡도록 우리 믿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 형상이 온전히 나타나는 나라가 다윗의 계보를 통해 세워지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게 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을 때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직접 메시야로 오셨고,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고 하나님 백성들을 영원히 통치해 가실 것입니다.

 

아달랴에 대항하여 싸운 한 여인 여호세바를 통해 사탄과 싸우며 사는 우리들에게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하나님 나라 이루어 가는 귀한 도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