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11): 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삼상25:1-19

 


지난주 은혜 가운데 부흥회를 잘 마쳤습니다. 부흥회는 평소에 먹지 못하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 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삶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나쁜 습관들이 나를 다시 집어 삼킨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베터리가 방전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충전이 지속 되어야 합니다. 재충전은 평소에 하나님과 갖는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받은 은혜가 삶에서 잘 흘러 가지 않아 여전히 오랜 습관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손에 말씀을 들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도전 드립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다시 집 밥을 먹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족장 시대에 사라 리브가 레아와 라헬. 애굽에서 종 살이 하던 시대에 십브라와 부아, 요게벳. 가나안 정복 시기에 라합. 사사 시대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나오미와 룻을 살펴 보았습니다. 드디어 왕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정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아비가일입니다. 남편은 갈멜이라는 곳에서 목축업을 하는 대단한 부자입니다(2). 마침 그때 다윗은 무리들과 함께(13) 사울을 피해 갈멜 근처 바란 광야로(1) 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발을 포함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7) 경제적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이 아비가일의 일상으로 찾아옵니다.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4). 이날은 광야의 모든 나그네들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11). 다윗도 이 소식을 접하고 전령들을 나발에게 보내 먹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나발의 반응은 너무 야박합니다(11). 심지어 전령들에게 다윗이 사울을 배신하고 도망쳐 나온 종으로 멸시합니다(10). 좀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3절은 나발을 갈렙족속으로 소개합니다. 갈렙은 가나안 정탐꾼으로 유다 지파입니다. 그렇다면 나발과 다윗은 같은 지파입니다.

 

나그네도 돕는데 같은 지파 사람을 박대합니다. 심지어 약탈자들로부터 재산을 보호해준 것에 대한 감사도 없습니다. 사실 이런 나발의 태도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삼상 15:12을 보기 바랍니다. 나발의 목축지가 있는 갈멜은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자신의 기념비를 세운 곳입니다.

 

사울의 영향력이 강한 곳으로 지지세력이 넘치는 지역임을 의미합니다. 나발은 더 강한 자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부를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다윗보다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사울 왕에게 더 충성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너무 세상 권력에만 의지하다보니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도 자신을 벌할 칼이 있음을 잊고 삽니다.

 

나발은 사울 왕에게 밑 보여 손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윗에게 600명의 군사가 있을지라도(13), 사울 보다 적었고, 당시 살아있는 권력자는 사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치는 신세라 감히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다윗을 멸시하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다윗은 무장을 갖추고 갑자기 찾아옵니다(13, 17).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뒤 오래 참아오던 심판 역시 주님이 친이 하늘 군대를 거느리고(19:11, 14, 16) 갑자기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을 풀무불에 던져 넣어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마13:42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한편, 나발과는 달리 다윗을 맞이하는 아비가일은(18) 너무 대조 됩니다. 앞으로 왕이 될 다윗의 위엄 앞에 엎드려(23) 영접하며 라 부릅니다(24). 가족이 멸절될 위기에서 살 수 있는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그래서인지 3절은 아비가일을 소개할 때 어떤 여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보다 총명함을 먼저 언급합니다.

 

그녀 역시 종을 거느리고(42)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어느 날 죽음이 다가 옴을 압니다. 순간 지금까지 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나발은 잔치로 아침까지 깨지 못하는 삶은 그때까지 지속됩니다(36). 다윗이 병사들을 이끌고 오는 것조차 모릅니다. 우리도 세상에 취하면 심판을 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66:15-16은 심판의 격렬함을 이렇게 경고합니다.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 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심판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시는 여호와께 죽임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성도라 할지라도 심판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송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의 성공여부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순간이든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어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포장지가 선물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느 것도 하나님 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시간은 돈입니다. 그러나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면 주님을 위해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게다가 좋은 대학 입학하고 좋은 직장 들어가 남들 부러움 산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서 영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이웃을 위해 쓰임 받지 못하면 그것들은 나의 자랑일 뿐이며 나는 이미 상을 받은 것입니다. 성공한 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고 말하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는 희생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그때 영광은 우리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나발은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가 가진 재물에 노예가 되어 살았고 자신이 다윗에게 죽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일은 없어안심까지 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인 심판을 무시하고 오실 주님을 멸시합니다. 심판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옵니다. 다시 기회가 없는 마지막입니다. 하찮게 여길 신화가 아닙니다. 살아계시고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섭리)입니다. 심판을 믿고 준비하는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