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10): 듣기만 해도 복이 옵니다 

1:6-18; 23:3; 25:1-3; 7:1-2

 


지난 주에 이어 룻기를 살펴봅니다. 기근 때문에 이스라엘의 한 가정이 이웃 나라 모압으로 이주해 왔지만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 일이 벌어집니다. 힘든 일이 있은 후 시어머니는 두 며느리와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젊은 며느리들을 생각하며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삶을 살 것을 권고합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도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두 며느리중 하나인 룻만 끝까지 홀로된 나오미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시집와서 함께 한 정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의리와 효심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롯 자신도 믿겠다는 것입니다.

 

시집왔으므로 남편 가정의 종교를 따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시집와서 경험한 것은 온통 힘든 일만 일어났습니다. 시어머니의 하나님에게서 본 것은 뭐 하나 잘 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가족들과 자신에게 불행과 슬픔을 막아주지 못한 신에 불과합니다. 다시 친정으로 가서 자신의 신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라는 16절은 더 이해가 안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결단을 하게 만들었을까요? 사실 언제 그 결단이 생겼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룻에게 그런 결단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 만남은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고 천사의 방문과 기적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누군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듣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점점 쌓여갑니다. 룻의 경우는 아마도 시집온 그녀에게 가족 중 누군가(나오미?) 들려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창조에서부터 최근 이스라엘 역사까지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민족인 압몬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것도 들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법에 의하면(23:3) 의하면 자신이 속한 모압은 이스라엘의 제사나 절기에 참석할 수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서 모압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성적타락과 그들의 신을 섬기게 해서 여호와의 진노로 이스라엘을 죽게 만들었다는(25:1-3)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룻을 놀라게 하는 가장 최근의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침공하기 앞서 정탐꾼들을 보낼 때 그들을 도왔던 가나안 여인 기생 라합 이야기입니다. 7:1-2에 의하면 가나안 사람들은 모압보다 더 심하게 멸절을 당해야 하는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정탐꾼을 숨겨주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기생 라합은 룻이 나중 베델레헴에 가서 재혼하게 될 보아스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친척 이야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1:5-6의 예수님 족보를 보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룻은 가나안의 기생 라합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신분도 상관없고, 심지어 죽임을 당할 민족도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도 모압인이지만 이제 이스라엘 가정에 시집왔으니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 정도는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어떻게 믿음으로 성장하였는지 사실 추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가나안의 여인 기생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과 결혼하여 나중 룻 자신의 남편이 될 어머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룻 자신은 나중 다윗의 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간 위대한 여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이렇게 될 것은 모르고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놀라운 사실 아닙니까? 이런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그 자체만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큰 복입니까? 성도는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어 자꾸 하나님에 대해 듣는 것을 멈추지 말기 바랍니다. 나는 왜 안 믿어지지? 말씀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는 날이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 앉아있지만 말씀이 안 들어오고, 이해가 안 되고, 심지어 졸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일 날 와서 말씀 듣는 것을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룻에게 일어난 놀라운 복은 들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듣기만 해도 놀라운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들을 때 훨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팁을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일에 5분 일찍 와서 말씀을 미리 읽기 바랍니다.

 

또 교회 웹사이트에 가면 한 학기 설교제목과 본문을 참조하셔도 됩니다. 더 바라기는 목회자와 식사나 차를 마시는 교제의 시간을 가져 보기 바랍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열리면 훨씬 설교도 잘 들리게 됩니다. 초대도 해 주시고 제가 데이트 신청하면 시간 내어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오늘 룻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누구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내게 믿음이 없는 것 같아도 말씀에 나를 노출 시킬 때 언젠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들을 때 반드시 믿음을 잉태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10:17).

 

6절을 보면 룻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사 양식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이제는 본인이 직접 듣게 됩니다. 기근으로 한 가정에 불행이 왔다면 기근이 해결 되는 것은 행복이 다시 찾아 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베델레헴을 하나님이 돌보기 시작했다면 그곳이 다시 복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확신에 찬 생각은 룻으로 하여금 드디어 그곳으로 가도 되겠다는 결단을 하게 만듭니다. 결국 말씀을 계속 들을 때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쌓여갑니다.

 

더 놀라운 복은 룻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아브라함이 친척과 아비 집과 본토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오듯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베델레헴으로 오게 됩니다. 이것을 믿음의 여정이라 부릅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지나가보면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계속 들으면 내가 만들어낸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한 것()을 받게 됩니다. 룻의 삶에 기쁨이 넘쳐났고, 걱정과 염려는 사라졌고, 안정된 삶이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슬픔으로 애통하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이 주신 풍성함으로 미소 짓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점점 쌓아가도록 예수 믿지 않는 친구와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게 살아왔던 내 삶과 그 속에 가진 상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본인도 모르게 믿음 가운데 서 있을 것입니다. 이런 복이 가정과 교회에 있을 것을 믿는 분들은 아멘으로 응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