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7): 희생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2: 2-10

 


훌륭한 인물 뒤에는 늘 어머니가 계십니다. 제가 어릴 적에 할머니로부터 듣고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떡장수를 하며 조선의 명필로 키워낸 한석봉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린 나이에 선생님께 글씨 공부를 하러 간 아들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자주 집으로 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석봉의 어머니는 호롱불을 끈체 자신은 떡을 자르고, 아들은 글을 쓰게 합니다. 불을 켜 보면 늘 자신의 글은 엉망인데 어머니의 떡은 가지런합니다. 이것을 본 아들은 다시 돌아가 글씨 공부를 꾸준히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지혜롭고 무엇보다 희생으로 자식을 길러낸 어머니입니다.  

 

오늘 읽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역시 성경 인물 중 기억에 남는 여성이며 어머니입니다. 한석봉 어머니는 아들 하나만 잘 키웠지만, 요게벳은 더 많은 자녀들을 엄청 훌륭한 자녀로 키웁니다. 잘 알려진 모세만 영웅이 아니라 형과 누나 역시 하나님께 사용된 그 시대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 앞에 서는 이스라엘 최초의 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또 엄마대신 동생을 살피며 우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흥얼거려 주던 누나 미리암은 나중 훌륭한 작곡가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나중 홍해를 건넌 후 그 역사적 사건을 노래로 만든 최초의 여 주인공이 됩니다(15:21).

 

모세는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자기 민족을 이끌고 나와 자유를 선사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는 최초의 입법자라는 명성을 얻습니다. 게다가 우주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리 내리게 하는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영웅들은 늘 위기의 시대에 태어나고 그들 뒤에는 어머니가 있고, 자식을 희생적으로 잘 길러냅니다. 모세는 요게벳의 희생 없이는 석 달은커녕 하루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동으로 지쳐 있지만 밤에 혹시 울기라도 할까 잘 씻겨 새 옷 입히고, 넉넉히 먹이느라 잠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와 함께 있기를 더 원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묵상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도 이곳을 떠날 때 야 내가 섬기는 시간이 이렇게 짧다니. 더 같이 지내며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싶은데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다니. 정말 아쉽다라는 마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요게벳은 석달이 지나자 더 이상 아이를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에 넣어 강 가에 둡니다. 3절에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매라는 단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위험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강가에 둔 아이에게 언제 배고픈 짐승들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물론 누나가 아이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10절에서 애굽 공주가 물 속에서 건졌다는 말을 보아 미리암이 함께 물 속에서 아이와 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4). 호기심으로 잠시 곁눈질이라도 하면 바람에 떠 내려 갈 수도 있는 위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한계가 있기에 그냥 안고 있다 죽는 것이 났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차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한 곳에 두고 돌아서야만 합니다. 그 심정 알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의 마음조차 알지 못하는데 하나뿐인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음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존귀와 영광을 돌리기 보다 메시야를 버릴 것이고 십자가에서 벌거벗겨 처참하게 죽일 것입니다. 이것을 다 알고 아들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죄는 사망이라는 하나님 자신이 정한 룰을 지키기 위해 죄 지은 인간 대신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아들을 주신 아버지의 사랑이며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이 사랑과 희생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를 부인하며, 자신들의 죽음과 사망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전하기 원합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분들은 아직도 밀림에도 도시에도 있습니다. 캠퍼스와 교실과 기숙사에도 있습니다. 생명 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사용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으로 보냄을 받기 전에 주님이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모세를 보면, 애굽 왕궁으로 보내기 전에 먼저 모세는 어미의 품에서 자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비록 애굽 공주가 강가에서 그를 찾았지만 바로 그를 왕궁으로 데려 가지 못합니다. 키우고 싶었지만 처녀인 공주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모를 찾아 아이를 일정기간 키우게 합니다. 그후 모세를 데리고 가는 것을 9-10절에서 봅니다. 친모이지만 유모가 되어 그 아이를 일정 기간 키워냅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되긴 했지만, 친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을 먹고 심장 소리를 들으며 성장합니다. 애굽인의 보호 속에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손길 아래서 실제 커 갑니다. 애굽 궁에서 자라지만 창조이야기와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가르침을 들으며 커 갑니다. 이것때문에 그를 어미의 가슴에 머물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먹어야 할 어머니의 젖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되는 복음의 진리, 성령의 위로를 먹고 자라야 합니다. 독생자를 주신 아버지와 아들이 십자가에서 보여준 희생을 배우며 성숙 해야만 합니다.

 

아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요게벳의 헌신과 희생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에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히브리인으로 아들을 키워내는(11절상)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희생은 자신이 진짜 어미임에도 불구하고 친 어미임을 말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아야했던 희생입니다.

 

혹시나 모세가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하기에 유모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희생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어떤 것을 요구할지라도 주님의 뜻이라면 희생하며 따르겠다는 마음입니다. 이 결단이 있는 분들은 아멘으로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