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4):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혀라 

                               창41: 45-52

 

먼저 코넬에 입학하신 신입생들을 축하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정착하고 믿음으로 승리해 가는 삶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학부 신입생들은 많은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많은 공부를 배웠지만 이곳에서 보고 듣는 것들이 상당히 여러분들의 흥미를 자극할 것입니다.


사실 신입생들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새 학기에는 더욱 주님을 잘 따르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자세로 새 학기에 주님을 따를 것인가를 시리즈를 통해 보아온 구약의 여성 가운데서 한 사람을 통해 나누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라, 리브가, 레아와 라헬 등은 구약에서 잘 알려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보게 될 주인공 아스낫은 북 이스라엘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어머니입니다. 게다가 요셉의 아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잘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유명한 요셉이기에 그녀 역시 사람들에게 주목 받았을 것이고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은 전혀 반대입니다. 참 관심을 끄는 여성임에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먼저 주를 따른다는 것은 주님이 너무 좋아서 다른 것 구하지 않고 그분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아스낫의 등장은 요셉이 애굽에서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총리가 된 후입니다. 이때 바로는 요셉에게 온의 제사장의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주어 그의 아내가 되게 합니다. 그녀에 대해 유일하게 아는 것은 아버지 보디베라의 이름에 ’()라는 애굽의 태양신 이름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아스낫도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 그녀가 요셉을 만나 가정을 이룹니다. 살면서 여호와 신앙을 새로 접하게 되고 어느 정도 갈등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갈등적인 모습보다 오히려 그녀가 여호와 신앙을 따르는 모습을 더 강하게 나타냅니다.

 

그 증거는 두 아들 이름이 모두 히브리식으로 불려진다는 것입니다(51-52). 아스낫의 영향력이 더 강했다면 그들의 이름이 애굽식으로 기록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애굽의 영향력이 있었다면 히브리식 이름과 함께 애굽 신의 이름 정도가 들어간 애굽식 이름도 성경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준 애굽 이름은 사브낫바네아 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의 애굽식 이름은 없습니다. 이것은 요셉 가정이 여호와 신앙을 가진 가정으로 세워져 갔고 아스낫 역시 자신이 가졌던 애굽의 신앙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어떻게 그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를 따르는 것은 과거의 믿음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음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죄 가운데 있는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너무 좋아 주인으로 삼고 나를 지배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만 위해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과거의 죄된 습관에 지배 받지 않도록 날마다 죄를 철저히 회개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지배 없이는 나를 부인할 수 없고 육체의 연약함을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 아스낫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스낫에게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만나기 전의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영향력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들은 요셉의 지혜로움과 그와 함께하는 여호와라는 히브리 신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결혼 후에도 요셉의 경건한 삶은 그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더 여호와 신앙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50절을 보면 아스낫은 애굽 전역에 가뭄이 시작되기 전에 두 아들을 낳습니다. 7년의 흉작이 오기 전 7년의 풍년 기간 동안에 두 아들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녀가 이미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이 되었음을 압니다. 물론 그녀가 요셉을 만나 결혼하여 아들을 낳기 전까지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하나님을 알고 영접하게 만드는 은혜의 시간이 요셉을 만남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오늘은 그런 질문에 답하

는 시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복음이 들릴 때 바르게 반응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분들은 코넬에 와서 복음을 접하기를 바랍니다.


주를 따르는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이 되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습니다. 이것을 믿을 때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을 때 죽음 이후 영원한 형벌이 내게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스낫은 십자가, 복음보다는 여호와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아스낫이 요셉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바로의 꿈을 해몽하는 시기입니다. 바로가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게 됩니다(41:1). 그 다음 날 마음이 편하지 못해 이집트의 마술사와 지혜로운 자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41:8).


그러나 어느 누구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나중 아스낫의 아버지도 그 자리에 갔을 것이고 요셉을 만났을 것입니다. 아스낫은 요셉 이야기를 아버지를 통해 전해 듣게 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태양 신의 제사장이라면 사실 바로의 꿈은 자신이 믿는 태양신과 관련이 있음을 문득 생각합니다.


아스낫 자신의 아버지는 대대로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애굽 전역에 미치게 될 재앙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태양신의 신탁도 없었습니다. 고작 히브리 종 하나가 모든 것을 해석합니다. 그는 또한 가뭄에 대한 대처까지도 제시합니다(41:36).


아스낫은 신전에서 자라면서 이런 일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요셉처럼 자신이 믿는 신이 역사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습니다. 아스낫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요셉이라는 히브리 사람은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스낫을 더 놀라게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이 그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41:38). 애굽인들의 입에서 시인된 것은 정말로그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스낫은 태양신 신전에서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는 사제들 정도는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통해 본 것은 다른 것입니다.

자신들의 영을 가진 종교인들이나 마술사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푼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해석하지도 못하는 것인가? 한편, 요셉은 지혜로운 대처 방안까지 제안한 것으로 보아 이 히브리 남자는 자신과는 다른 영을 소유한 것이고 진정으로 여호와가 신들 중의 신임을 증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주를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을 소유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해도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이나 경험이 아닌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세상에 알게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아스낫은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궁에서 일어나는 요셉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입니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이미 여호와의 영을 소유한 히브리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말씀을 마무리 지으면서 특별히 신입생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됩니다
. 친구도 사귀고 공부와 학위에도 집중하십시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본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기도와 말씀과 찬양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히는 승리의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