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3): 나는 가리워져야 합니다 

29:31; 30:3, 9, 14-15,22

 


성경은 참 특이한 사건들을 많이 다룹니다. 그 가운데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두 자매 이야기를 오늘 나누고자 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들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야곱의 아내들이 되었는지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29:1-30).

 

문제는 남편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두 자매는 경쟁하는 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사랑을 덜 받는 레아를 보시고 그녀에게 먼저 자녀를 허락하는 복을 주었다고 말씀합니다(29:31). 그 이후 레아는 네 아들을 얻게 됩니다(29:32-35: 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

 

그 이후 동생 라헬은 질투심에 불타 결국 자신의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 단과 납달리 두 아들을 얻게 됩니다(30:4, 6,8). 이를 본 레아 역시 이미 네 아들이 있었지만 실바를 통해 갓(30:11)과 아셀(30:13)을 더 얻게 됩니다(6). 인간의 욕심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하여 지는가 봅니다.

 

두 어미의 경쟁에 이제는 레아의 아들까지 동참시키게 됩니다(30:14). 레아는 큰 아들 르우벤이 구해온 합환채를 라헬과 거래에서 주고 자신이 야곱에게로 들어갑니다. 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지 못할 때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려 갈 때 형제자매, 부부, 성도간이라도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아무 상관 없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끌어들여 죄의 길에 서게 만듭니다. 내 속에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미 주의 뜻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가 미워하는 극한 상황이 오기 전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는 골3:13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나님 뜻도 이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야곱 가정의 아내들을 통해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경쟁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는 서로가 위로해 주고 힘든 사람을 격려해 주며 서로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는 병원과 같은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연약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과 차별화된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성도는 주님 따라 살아야 합니다. 회개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약함이 나타날 때 나도 약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되도록 서로 돕고 약한 자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연약한 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예수를 만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의 자리로 나오기 까지 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약함을 몰라 함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외면 당하고, 교회도 정죄하는 사람들을 안고 가는 것이 진정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가기에 교회에 썩은 냄새가 날 것으로 착각합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주님이 보여 주신 용서와 사랑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약한 분들을 세워서 그 약함 속에 그리스도의 강함이 나타나도록 사랑과 신뢰로 그들을 세워 나가는 것이 주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시스템을 갖추고 사람들을 걸러 내고, 훈련을 시켜도 약함은 여전히 드러납니다. 사람은 어느 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고 세운 사람도 쓰러집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전혀 기초도 없는 사람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신앙고백과 훈련을 통해 사람을 세워 가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약함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히4:15을 보면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주님이 그 연약함을 동정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회개로 나아가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에 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을 더욱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두 여인이 보여주는 모습은 경쟁뿐입니다. 누가 더 사랑 받느냐가 온 가정의 이슈입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을 동원하여 그들의 경쟁에 참가시킵니다. 두 여인들이 서로 위로해주고 아껴주던 아름다운 소녀 시절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이 그들 인생에 끼어들고 난 뒤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애쓰는 여인들로만 나타납니다. 문제는 주님이 이들 두 자매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 경쟁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라는 부부나 가족들이나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남의 잘못이 보이고, 그것을 더 소리내어 비난하고 내가 좀 잘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과 행동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를 인정하게 되면 가정에서, 교회에서, 세상에서도 경쟁을 멈추고 주님의 뜻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 여인들의 집에는 아이들의 소리는 있었지만 웃음소리가 넘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변화시켜 가고 있었습니다. 참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 변화를 누구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여인들의 경쟁심을 누그러뜨리고 하나 되는 모습으로 하나님이 바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분임을 인정하는 고백이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이 나서서 뭔가를 고치려고 하는 부작용을 최소화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잠잠해야 합니다. 내가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태도를 내려 놓아야 주님이 관여하십니다.


두 자매가 경쟁 속에서 한 가지 안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먼저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29:31). 사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레아를 보셔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한편, 하나님은 라헬도 생각하여 소원을 들으시고 태를 열어주셨습니다(30:22). 야곱으로부터 사랑 받는 라헬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비전을 보시기에 그들을 생각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 나갈 주님의 위대한 비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두 여인은 서로 다투고 경쟁하는 싸움꾼이 아니라 비전을 이루어 낼 주인공들입니다. 우리는 싸움 닭처럼 맨날 싸우고 마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갈 동역자들입니다. 가정에서 서로 싸우는 부부나 자녀들이 있으면 이제 하나님의 꿈을 이룰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고 그렇게 서로 부르기 바랍니다.


서로 이해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자녀들을 길러내며 한 민족을 이루어 가는 큰 비전을 바라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분열되고 서로 미워하며 정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어떻게 세운단 말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해 주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녀들은 결국 변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경쟁자에서 화해자가 되어 야곱을 돕는 협력자가 됩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아내들에게 들려줍니다(31:11,13). 이때 두 사람은 야곱을 지원하고 서로 의견을 같이합니다. 경쟁자에서 동역자로 돌아섭니다.


그녀들이 하나가 된 모습은 우리라는 대명사가(31:14-16)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살아오면서 그녀들에게 베푼 하나님의 사랑과 그들을 통해 이룰 비전이 서로를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질투가 이해로, 분열이 화합 이 되었습니다. 이때 그녀들이 사용하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단어입니다(31:16).


서로 싸우던 그녀들이 자신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을 앞에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나의 이해와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주님을 앞세워 갈 때 우리는 가리워지고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교회를 향하신 주의 뜻을 볼 줄 믿습니다. 이런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