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2): 주의 손에 다듬어 집니다 

24:2-4, 10-14, 28-29, 54-58, 63-65

 

주를 따르는 여인들의 두 번째 시간으로 리브가를 보게 됩니다. 리브가의 등장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며느리를 구하려는 시간부터 나타납니다. 늦게 얻은 아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모습을 죽기 전에 바라보는 것이 노년의 아브라함의 바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아들의 결혼을 서두릅니다. 하지만 더 관심을 갖고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3절에 가나안 여인을 며느리로 택하지 않고 자신의 고향에서 며느리를 얻겠다는 아브라함의 결단입니다. 아마도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고향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를 발견한 듯 합니다.  

이런 결심의 배경이 되는 것은 창세기 15장의 가나안 땅의 죄된 모습입니다. 그때까지 아들을 얻지 못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자녀에 대한 언약을 다시 확인 합니다(15:3-5). 그리고 후손들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5:13-14). 후손들이 400년 동안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 그 땅을 차지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직은 그 땅 거민들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15:16). 이것을 듣고 가나안에서 살면서 그 땅의 죄된 모습을 아브라함은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 여인 중에서 며느리를 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가나안 사람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이들의 정착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의 땅에 들어와 다른 문화에 이주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이때 자녀들이 서로 결혼을 하면 서로 적대시 하는 것도 없애고 문화적 이질감도 줄이는 여러 가지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른 결정을 합니다. 이런 결정의 바탕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관심이 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늘 하나님 말씀이 자리잡고 있어야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이가 많아 직접 여행을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평생동안 함께했던 신실한 종이 있었습니다(24:2).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돕는 선한 이웃들을 통해 문제가 풀려 가게 하나님은 도우십니다.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을 통해 알려지는 리브가는 16절에서 매우 아름다운 여인으로 소개됩니다. 그 아름다움은 외모만 아니라 낯선 나그네를 성 밖에서 저녁 시간에(11)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가정에서 교육과 훈련을 잘 받았음을 보여 집니다.

게다가 늦었다는 핑계로 나그네에게만 물을 주고 즉시 집으로 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나그네가 타고 온 낙타 역시 물을 마시도록 구유에 물을 급히 붓고 다시 우물로 달려갑니다(19-20).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나그네와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는 중에 리브가는 나그네에게 자신이 누구이며(24) 집에 유숙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25). 이것은 값진 선물을 받았고(22) 당돌함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누구이며 유숙할 곳이 있느냐는 나그네의 질문에(23) 대한 대답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달려가 알리고 오라비가 그를 마중하러 나오게 됩니다(28-29). 그녀가 직접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리브가는 최종 결정을 권위를 가진 가족에게 맡기는 겸손을 보입니다.

주의 인도하심속에 친척을 만난 종은 이제 결혼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딸을 열흘 정도 더 머물게 하려는 아버지와 하루 밤만 묵고 떠나려는 종 사이에 문제가 발생합니다(54-55). 이때도 리브가는 당차게 다음 날 집을 떠나는 단호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빠른 결정에는 어떤 것들이 작용했을까요? 10 마리 낙타에 싣고온 보물을(10) 보며 부유한 집안에 시집 간다는 우쭐함이 발동했을까요? 아니면 이제는 매일 물 긷는 일도 끝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동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신나는 일이 기다리는데 10 일 더 집에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그녀의 결심에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사람은 진행되는 전 과정을 보며 자신에게 보여준 신실한 여호와의 인도하심에서 모든 것을 신중하게 결정 해야 합니다. 자신이 주의 뜻 가운데 한 남자의 아내로 선택되고 있다는 믿음이 그녀로 하여금 빠른 결단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리브가에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녀는 아직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이삭은 나이가 40이 되어서야 리브가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이들의 첫 만남은 이삭이 자신의 아내를 기다리며 들에서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24:63).

리브가는 멀리서 이삭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종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 리브가는 이삭의 묵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리브가의 눈에 보인 이삭의 묵상하는 모습을 들에서 배회하는것으로(65)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65절 후반절은 단지 그녀가 이삭에 대해 취하는 모습 한 가지만을 기록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가 남편이 될 남자임을 알고 얼굴을 가리는 모습만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라의 장막으로 들어가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67). 타인들에게는 행복하고 부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런 리브가에게 아직도 부족한 모습이 있다면 수긍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를 따르는 분들이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나의 삶이 사람들에게 행복해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삶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이 부부는 하나님의 손에 만져져야 할 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대단히 궁금해집니다.

이삭은 40에 결혼해서 20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합니다(25:20, 26). 더욱 부부를 힘들게 한 것은 이복 형인 이스마엘 자손의 번성입니다(25:12-18). 그때서야 이삭은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간구하여 아들을 얻게 됩니다(25:21). 여기서 간구했다는 것은 기도 요청이 지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집와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안 되는 일을 만날 때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져져야 할 분분이 있을 수 있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부르짖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더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기도했겠지요. 그러나 본문은 이삭의 간구였다고 말할뿐 리브가가 동참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간구하는 자에게 응답하는 하나님을 리브가 자신이 경험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님은 주를 아는 한 사람과 개인적 만남을 원하십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뒤 리브가의 배가 불러 옴을 보며 그 체험을 갖게 만드십니다. 아기는 임신했는데 배속의 아이들이 너무 복중에서 뛰어서 문제였습니다(25:22). 이것은 그녀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리브가는 모두 타인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에 의해서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배웠습니다. 남편의 중보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합니다. 이제 리브가는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묻게 되고 응답받는 사람이 됩니다. 여인으로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이유를 묻고 답을 얻는 최초의 도전으로 성경은 기록합니다(25:22).

리브가는 아름다움과 재치도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져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자는 사람의 가르침이나, 가문의 전통이나, 세상 교양뿐만 아니라 반드시 주의 손에서 다듬어져 사용하기에 불편이 없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