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1): 은혜 후에 온전해 집니다 

11: 29-31, 12: 5, 10-20

 


주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소개 됩니다. 대부분 남성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 첫 시간으로 사라입니다. 11:29-31에서 그녀는 자식이 없이 고향을 떠나는 모습입니다. 하란에 정착했다 남편과 함께 하나님 말씀에 따라 다시 가나안으로 이주합니다(12:5).

 

그런데 가나안에 정착하자 곧 이들에게 가뭄이 찾아 왔고 애굽으로 내려 가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처지가 됩니다(10). 환경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고통스런 일이 생기게 됩니다. 특별히 사라 개인에게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인생 최대의 배신을 경험합니다(13).

 

주를 따른다고 인생의 문제가 없이 만사형통의 대로를 걷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사라 자신을 아내가 아닌 누이라고 말하라는 남편을 볼 때 지금껏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그녀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애굽에 가까이 오자 갑자기 남편이 자신을 버리겠다는 소리를 합니다. 순간 하나님이 남편을 통해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여인을 아내로 삼고 자신을 버린다는 생각을 사라는 했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들은 전혀 사라 자신과는 무관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를 따를 때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도 복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도 묵묵히 자신을 향한 비전이 분명히 있기에 비전을 따라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사라는 너무 당황스런 사건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침묵을 선택합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이(11) 운명의 장난이 될 줄 정말 몰랐고 이런 저주스런 날도 없었을 것입니다. 남편은 자식이 없어도 이곳까지 올 때까지 자신만 사랑해 주었던 사람입니다. 목숨 앞에 헌 신처럼 버려 버리는 아브람을 바라보면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은 자신을 팔고 애굽의 왕으로부터 종들과 낙타까지 얻습니다(16). 정말 인생무상을 느끼는 날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그 다음을 모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존재가 그녀에게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힘든 시간이 오면 다음에 놀라운 하나님의 개입이 있다는 것을 꼭 기대해야 합니다.

 

살맛 나는 인생입니다. 그녀 일생 가운데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준 사건이 바로 이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셔서 자신을 원 위치로 돌려 보내서 남편에게 주신 그 비전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 간다는 확신을 갖게 만듭니다.

 

아브람과 나이 차이는 10년 정도이므로(17:1, 17) 그때 아브람이 75세 정도라면(12:4) 사래는65세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런 사래의 미모에 온 애굽 사람이 감탄을 합니다(14). 사실 애굽 왕이 자신을 취하여 후궁이 되면 남편이 주지 못한 부와 명예를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뭄으로 옮겨 다니는 삶도 없을 것입니다. 가축을 돌보느라 잠 못 자는 밤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그녀를 애굽의 바로에게 보낸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 뿐만 아니라 사라 자신에게도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를 따르는 사람에게 뜻이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15절에 보면 바로는 그녀를 궁으로 이끌어 들이지만 바로 그녀가 후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왕실에도 법도가 있기에 그녀도 어느 정도 교육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하심이 바로와 그 가정 위에 나타나는 시간은 바로 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렸다고 17절은 말합니다. 창세기 20장의 비슷한 사건에 아비멜렉의 경우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밝히지만 이곳에서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라의 일로 인해 여호와가 노했다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주를 따르는 사람들을 때로는 처참할 지경으로 희생시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나게 만드는 도구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라처럼 우리가 기꺼이 그분께 순종함으로 희생을 받아들일 때 세상 사람들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녀를 돌려 주지 않으면 안 되는 큰 일이 왕궁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바로는 당장 아브람을 불러 사라를 다시 데려가게 합니다(19). 이 사건을 통해 아브람이 직접 언약을 받은 사람이지만 사라 자신도 함께 소명을 받은 자로서 인식하기 시작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라는 비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라는 아브람에게 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라는” 3절의 말씀을 오히려 자신이 먼저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억울함이 있어도 묵묵히 침묵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복으로 돌려 주십니다. 

 

사라는 또한 아브람에게 주었던 다른 약속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약속도 남편에게 준 것이지만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왔을 때 결국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임을 확실히 믿는 계기가 됩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라는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다는 믿음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이 사건 이후 사라는 점점 하나님이 자신의 편에 서서 남편에게 준 약속들을 이루어 간다는 확신을 더해 갑니다. 왜냐하면 바로 13장에서 롯이 자신들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사라였을 것입니다. 롯은 조카이지만 자식이 없던 아브람에게는 상속자로 간주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 놀라게 만드는 것은 롯이 떠나지만 자식이 없던 아브람의 마음에는 계속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 약속을 이루어가려는 계획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남종을 상속자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15:2-3).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음까지도 제거하는 분임을 사라는 경험하게 됩니다(15:4).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 더 구체적인 약속을 주는 것을 사라는 듣게 됩니다(15:4).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주를 따르는 자들은 반드시 주님이 계획한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해서 그분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아도 그분의 계획을 거두어 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뜻을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한 계획표가 있고 사라와 아브람을 위한 훈련이 준비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라에게는 아직도 이 약속이 믿음으로 온전히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레같이 자식이 있어도 무슨 소용입니까? 아브람이 다른 여인을 통해 자식들을 얻는다면 사라 자신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라이지만 인간적인 계획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면 우리 생각이 나타납니다. 자신의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으면 될 것이라는 꾀를 냅니다(16:2).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꼭 싸워야 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을 제시하는 자신입니다.

 

이것마저 제거 하기 위해 다음 장 17장이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 재확인 됩니다(17:4). 언약의 재확인은 아직도 그들에게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에게 가장 큰 복이 주어집니다.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드디어 주어지기 때문이고(17:16) 아들의 이름까지 언급되기 때문입니다(17:19). 주를 따르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세운 계획들이 진행될지라도 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주권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에게 실수와 허물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주를 따르게 만듭니다. 내 의지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끝까지 더하여 주시기에 주를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비밀들을 알았다면 이제 이 놀라운 복을 누리는 온 성도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