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믿음(6): 거듭난 성도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3:1-6

 


오늘 보게 될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인 교회는 참 행복한 교회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데 지역은 금 생산지로 알려져 있어 물질이 늘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금이 나온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 들었을 것입니다.

 

황금의 도시로 알려진 사데는 고대 리디아 제국의 수도이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금화를 만들어 낸 나라입니다. 서부 개척시대와 비슷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사람들이 늘 분비는 이런 곳에 복음이 들어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몰려 드는 사람들과 풍성한 헌금으로 이 교회는 많은 사역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네 행위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데교회는 주의 일을 너무 안 해서가 아니라 많이 했지만 뭔가 부족한 것 때문에 책망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많은 사역이 아니라 왜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본질을 추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본질이 퇴색되면 형식만 남기 때문입니다. 형식만 있는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자라는 질책을 받기 때문입니다.

 

정말 무서운 질책입니다. 죽은 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아(5) 마지막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본질이 빠진 형식만 남은 교회 성도는 이런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잊어 버리고 스스로를 높입니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아닙니다. 교회는 나와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의 개념을 인간이 고안해 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세상 종교들 가운데 너무 미신적이지 않아 선택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분은 하나님을 찾는 종교행위는 있지만 장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자신들이 형식을 입힌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형식이 있어 보이지만 본질만을 추구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타나 보이시고 심지어 오셔서 보이신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삶이 신앙입니다.

 

가정에 부모를 보면 예배 안 가면 복 못 받으니 체면으로 간다고 합니다. 자식은 부모가 가야만 한다고 하니 예배에 끌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보러 간다고 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내가 살아 있으면 안됩니다. 성도는 온전히 내 몸을 산 제물로 바쳐 죽어야 그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 받아주십니다. 드리지 않고 보러 온다면 가인의 제물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는 거룩을 치장한 가장을 걷어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만을 받지 않는 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속지 않습니다. 가장 형식만 살고 본질이 죽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예배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살았지만 죽은 성도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좋은 말 듣고, 세상 살아가면서 인격수양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 설교를 이해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산 하나님을 만나야만 그런 마음이 사라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죽어 있기에 산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산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간이 육신으로는 숨도 쉬고 활동도 하기에 살아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내 영이 죽은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하나님을 체험 못했다는 사실로 증명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믿은 것을 입술로 고백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것이 가장 신앙의 기초이며 전부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의 할 것은 입술로 시인한다고 해서 마음으로 믿는 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단지 입술의 고백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입술로 시인한 분들 중에는 정말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시인한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생각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이 입술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믿지 않는 상태로 교회에 오는 분들은 마음이 없기에 일단 재미가 없습니다.

 

사데 교회는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시인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네가(사데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받았으며 어떻게 (복음을)들었는지 생각하고 (그 복음을 마음으로 믿지 아니한 것을)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죽은 믿음은 복음을 마음에 두지 않는 종교 생활입니다. 더 이상 구원의 역사가 교회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내 믿음이 흔들리고 확신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이런 성도가 많아지면 사데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아직 안 된다고 분들이 늘 교회에는 있어 왔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머리로 믿는 것은 생각의 단계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단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더 잘 아는 분이 거짓된 고백을 가지고 구원 받은 것처럼 생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배려가 있습니다. 3:20절에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 계속 다가와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실 살아있는 하나님을 불신자들이 만나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본인만 모를 뿐이지 주님은 계속 만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아직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분들도 주님이 나를 만나주고 계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10:10에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이 우선입니다입술로 시인은 했지만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분들께 두 가지를 권고 드립니다. 먼저 이기적인 자신의 마음을 쳐서 복종시켜 보기 바랍니다.

 

아직 미루고 있거나 하기 싫은 교회 일들을 한번 마음껏 섬겨 보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은 우선 주님과의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잘 안 되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솔직하게 상태를 아뢰는 것과 동시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11:13) 마음으로 믿을 수 있도록 성령을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거듭난 성도가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