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믿음(4): 약한 곳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12-17



오늘은 일곱 교회 가운데 세 번째인 버가모 교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이하게 이 교회를 소개하는 주님의 모습이 12절에서 보입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 여기 주님은 검을 가지고 계실까 참 궁금해집니다.

 

검은 세상 권력과 힘을 상징합니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대항하여 이기고 돌아 옵니다. 삼상18:4을 보면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을 다윗에게 선물로 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비록 당시 요나단은 왕자였지만 장차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리고 삼상13:22에 블레셋과 싸우는 사울의 군대를 보면 백성들은 칼과 창이 없이 전쟁에 나갑니다. 단지 사울과 요나단 만이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은 권위과 힘을 상징합니다.

 

권력을 가진 왕은 자신의 권좌를 가지게 됩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버가모에 사탄의 권좌가 있다고 합니다. 버가모가 세상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 아닌 다른 로마의 신들을 섬겨 신전을 짓고 우상숭배를 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아시아 지역에서 로마의 행정 수도였기 때문입니다황제를 위한 신전을 짓고 황제를 숭배하는 충성스런 모습으로 인해 아시아를 다스리는 권위를 누리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버가모는 로마로부터 엄청난 권위와 힘을 부여 받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정치적인 기구라 불리는 공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종교재판을 열어 신성모독 죄로 사형에 처한다는 결정까지는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형집행권은 파견된 로마 총독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빌라도에게로 끌고 가서 다시 재판을 받았던 이유입니다. 버가모는 아시아의 로마 행정 수도답게 다른 어떤 도시들이 갖지 못했던 사형 집행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주님이 칼을 들고 있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권력에 대한 심판의 모습입니다. 누가 가진 칼이 더 무서운지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세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세상 칼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10:28).


몸과 영혼을 멸하는 칼을 가진 분을 더 두려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대상을 알고 싸우는 진정한 싸움꾼이 말세에는 필요합니다. 우리 형제끼리, 교회끼리 싸우는 것은 혈과 육의 싸움입니다.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권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통치자와 권세들의 의미가 버가모를 보면 좀더 명확해 질 것입니다.

 

그냥 세상을 다스리는 정치가들이 아니라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권력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이용해서라도 권력을 잡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구별하고 당당히 맞서는 진정으로 용기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이들과 싸웠습니다. 버가모 성도들은 많은 로마신들의 신전을 짓고 황제숭배를 강제로 요구하는 권력자들과 맞서 당당히 싸웠습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회는 충성스런 주의 증인이(순교자의 의미와 동일) 나왔습니다.

 

서머나에 폴리캅이 있었다면 버가모에는 안디바가 있었습니다본문을 보면 그의 순교에 대한 칭찬만이 아니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교회 성도에 대한 칭찬도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장차 내 동료가 잡혀가 예수를 증거하다 죽어가는 공포스런 분위기에도 지속적으로 주를 증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공포스런 분위기가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겠지만 예상된 셋팅입니다.

 

성경의 증인들은 어떤 환경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깊은 홍해 앞에선 모세도, 강 둑이 넘을 정도의 출렁거리며 흘러가는 요단강을 보았던 여호수아도 떨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일으킬 역사를 기대하며 당당히 현실 앞에 섭니다.

 

두렵지 않아서 겁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두려움보다 더 큰 주님이 함께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우리 개인은 물론 교회도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시대에 충성된 증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4절을 보면 순교자가 나온 충성된 교회가 바로 무너지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을 살아가는 성도는 고전10:11-12절 말씀을 기억하며 정말 주님 앞에서 겸손한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열심을 다하고 충성된 모습을 보이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주님으로부터도 칭찬을 받고도 넘어지는 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인터넷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멈추게 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감동이 있었습니다. 비판은 자신을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겸손보다는 교만에 더 가까이 가도록 늘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뒤 스스로를 보니 자신도 남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한 대상을 비판을 너머 세상 가치관으로 정죄하는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의 참 모습을 어느 날 성령이 보게 만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우리 개인의 가장 약한 부분이 유혹 받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도 모르게 세상 유혹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늘 발람과 같이(14) 우리 성도들의 약점을 파고 들어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돈으로 매수된 선지자 발람은 성령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하나의 방책을 모압 왕에게 선물합니다.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한 후 나중 점차 우상숭배에 참가하도록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만듭니다.  


사탄은 우리의 돈, 성적타락, 각종 중독 등의 약한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도록 성도에게 3가지 이 땅에서의 아름다운 제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서로 약함을 돕는 배필인 부부, 가정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또 다른 영적 무기는 매일 말씀으로 나를 늘 무장시켜 약한 곳이 공격받아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찬송으로 사탄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로 사탄을 쫓아 버리는 무장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