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믿음(3): 끝까지 잘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8-11



두 주 동안 세상의 마지막 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생각해 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 마지막까지 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입니다. 내일 세상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마지막까지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각자 다 다를 수는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끝까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 하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보게 될 교회가 바로 그 답을 보여줍니다. 이 교회는 일곱 교회가운데 책망이 없고 오직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끝까지 주님 보시기에 잘하는 것을 지켜 나갈 것이라는 단단한 마음의 결단이 교회에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서머나 교회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서머나는 몰약이라는 뜻입니다. 향기 나는 몰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나무가 잘리고 곱게 다듬어 지는 아픈 고난을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실제로 고난을 이겨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서머나는 당시 주변 다른 도시들과 경쟁하면서 로마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빠른 성장과 부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반대 급부가 요구 되었습니다. 황제를 숭배해야만 했고 결국 그곳에 신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주님 대신 나의 주인은 황제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던 교회는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박해를 받는 계기가 됩니다. 마지막 때에는 성도들에게 죽음까지 요구하는 특별한 부담이 있을 것이 예상됩니다.

 

이것을 환난으로 9절에서 표현합니다. 서머나 역시 로마의 핍박이 점점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 위협은 그 지역을 담당하고 교회의 감독에게 까지 다가오게 됩니다. 당시 서머나에는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의 직계 제자로 알려진 노령의 폴리캅이 감독으로 있었습니다


그 역시 잡혀서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심문을 받는 도중 그에게 누군가가 예수가 주인 됨을 거부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때 그의 고백은 유명합니다주님은 한번도 지금까지 실망시키지 않으셨는데 지금 자신이 그분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합니다


우리는 이런 날이 과연 언제 올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반드시 오기에 이런 계시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주님을 철저히 고백하는 믿음의 고백만이 우리 교회와 가정과 개인들로 하여금 같은 고백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결국 그는 불에 타 죽게 됩니다.  왜 그 당시 많은 군중들이 배교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 도시가 황제숭배를 거절하면 지금까지 지원하던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사라져 궁핍하게 될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보다 사람을 택했던 것입니다.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잠시 언급했던 왜 종말의 때에 사람들이 장차 나타날 짐승을 숭배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입고 먹고 사는 것에 너무 민감한 시대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가 먹이고 입히고 살게 한다. 이 믿음을 반드시 붙들고 사셔야만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로 주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이 약속 믿지 못하면 마지막 때를 견딜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성도가 처할 궁핍이(9)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더 많이 저금해 두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런 지혜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궁핍가운데 이겨내는 믿음이 필요한 때가 바로 종말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게다가 많이 가져도 강제로라도 그것을 빼앗아 버리는 절대적인 힘이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10절에서 이것을 고난이라 부릅니다. 가지고 있어도 사용할 수 없고(666, 13:17-18), 가진 것도 빼긴 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실 것입니까? 두 가지 선택뿐입니다. 사느냐 죽느냐입니다. 현실에서 사는 길은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것은 오직 죽는 것뿐입니다. 그때 가서 선택하지요. 지금은 미룰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을 택하기 위해서는 지금 주를 위해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나의 선택이 그때의 결정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훈련이 없이는 주님을 어떤 것보다 더 사랑한다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그렇다면 그 날이 오기 전에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우리는 마지막 때를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주님이 이 땅에 우리에게 주신 교회를 통해 주를 위해 사는 희생을 훈련 받아야만 합니다. 훈련 없이 실전에 못 갑니다.

 

믿음이 있기에 나는 그 믿음 그대로 지킬 수 있어. 자만하며 안됩니다. 코넬 학생들은 특히 기말 시험 일이 주일이 아닌 날을 택하여 조금 집에 늦게 가는 희생이 있어도 이 대학에 크리스천 문화가 바로 세워지도록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는, 생명의 관을 받게 될 것이라는(10) 소망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에서 성도에게 닥쳐 올 환난과 궁핍과 비방(9)과 극심한 고난(10)을 이기는 비결은 고통도 눈물도 없는(21:4)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정말 조금만 참으면 주 앞에 모두가 서게 될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말씀하는 영원한 둘째 사망의 해가 우리에게는 없게 됩니다.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기에 주님은 이 땅에서의 고난을 이겨내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이 땅에서 받게 될 모든 시험들이 길지 않다는 인내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바로 10절의 주님의 말씀입니다. 장차 옥에도 들어가는 고난도 있지만 십일 동안이라고 말씀합니다.  

 

힘들긴 하지만 견딜만한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소망이 생깁니다. 10일만 버티면 된다. 조금만 참자. 힘들어도 서로 격려하면 이겨낼 수 있어. 이 격려와 믿음이 있어야 종말의 때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됩니다.

 

누가 핍박할 것인가? 궁금합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 성도를 힘들게 만들 것입니다. 유대인이 최초의 핍박 자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핍박하여도 너무 낙심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마지막 때에 대해 배우며 점점 더 잘 알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계1:3의 주님의 말씀처럼 더 나아가 이것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다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대교회사 참고

김기홍, 이야기 교회사 (두란노, 2010), 52.

곤잘레스, 초대교회사(은성, 1993), 7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