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믿음(1):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13:3-11; 6:26-34



오늘 말씀은 앞으로 일어날 마지막 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정확히 지금 우리가 어느 시점에 있는지는 잘 모를지라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직접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는 그 시간 자체는 기대되고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오기까지 참는 것은 그렇게 반가운 것은 아닙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엄청난 혼돈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질서나 인간관계의 혼돈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먼저 영적인 혼돈을 5절에서 예수님은 언급합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을 구원자라고 말할 것입니다(6). 그러면 누구나 다 자신을 구원자라고 말하면 사람들을 속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능력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진 이 능력 때문에 사람들이 속임을 당하고 따라 간다는 것을 경고합니다(13: 13-14).

 

그들은 어떤 능력을 발휘할까요? 예수님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주님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로마 식민지로 살던 사람들에게 배부르게 해주고 전쟁과 공포 없이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라면 주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와 비슷한 능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말세에 정말 힘든 삶이 찾아온다는 것을 암시합니다(8: 7-12, 9:15).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살기 좋고,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는 세상이 올 텐데 과연 주님의 말이 맞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대체 말세는 어떤 세상이길래 사람들을 미혹하는 그런 사람들의 선동이 먹힐까를 생각해 봅니다.

 

7절에 난리와 난리로 인해 공포와 두려움이 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술들이 더 좋지 못한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더 나은 삶을 사는 세상이 만들어져도 삶의 기초를 흔들어 버리는 자연재해가 다 쓸어 버린다면 우리 삶은 어떨까요?

 

혼돈과 무질서를 상상해 봅니다. 힘든 시간일 것입니다. 인간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는 모르지만, 어떤 먹거리를 만드는 원재료 자체가 자연재해로 생산되지 않는다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불안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미혹하는 영은 활개를 치고 다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세에 미혹하는 사람들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되기 위함이고 그 다스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인류는 지금껏 많은 정치제도를 발전시키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세상 권력자들은 당연히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의 권력자들은 영적 세계까지도 지배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사탄은 이들이 하나님처럼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13: 4-5).

 

그래서 그들은 말세에 우리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믿음 자체를 버리게 할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이 가진 신앙 가운데 말세의 권력자들 눈에 안 들고, 우리를 박해하도록 만드는 것은 간단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삶에서 먹고 살아가도록 하는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먹이고 입히고 살아가게 하는데 왜 다른 것을 섬기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신처럼 세상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데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못마땅해 할 것입니다. 먹이고 살리는 자자 누구인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하나님 타령만 하는 성도들이 미울 것입니다(13: 6-8).

 

하나님은 인간들의 모든 것을 파괴해가고 힘들게 하는데 기독교인들은 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만이 자신들의 주인이라고 말하고, 그분만이 구원자라고 말하는데 사탄이 이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자연스럽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성도를 박해하는 것을 정당화 시킬 것입니다.

 

마지막을 아는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7). 이런 일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다 알고 있는데 왜 두려워합니까? 게다가 예수님은 마6: 26-34절에서 미리 우리를 향해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고 살 것과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살라고 확실히 당부하셨습니다.

 

내일은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당당히 맞이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힘이 됩니다. 앞으로 가장 힘든 시간에도 함께 하실 주님이 오늘 이 시간의 나의 고통을 이겨내도록 하신다는 믿음으로 전환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성도는 8절에서처럼 말세의 징조들을 인식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 때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신랑을 맞이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급자와 잘 연결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유소에 기름을 가져다 줄 공급자가 없고 산유국과의 관계가 부실하다면 소비자에게 제대로 기름이 공급되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성령 충만을 위해 매일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한 사람의 예배자가 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0절에서 또 다른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세상 끝까지 복음이 반드시 전파되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어떤 분들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종말이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적으로 어두운 분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이미 세상에 복음이 다 전해졌다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섭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구원을 허락하는 능력이(1: 16) 모두에게 있느냐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를 기다리지만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