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12):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11:15-18; 6:1-6

 


봄이 오면 봄맞이 집안 대청소를 많이들 하십니다. 새로은 계절을 맞아 새롭게 출발하려는 마음입니다. 우리 신앙도 늘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청소가 필요합니다. 버릴 것 버리고, 정돈할 것 정리해서, 주님 주신 말씀만 우리 속의 성전에 채우고 나아가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의도를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11-12절에 하루 전 날 성전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둘러 보셨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전 주변 감람산 일대에는 예물을 구입하거나 환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장사가 허용된 곳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사꾼들이 점점 성전으로 접근해서 경계를 넘어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당시 대제사장이 성전 가까이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받고 허용해 준 것이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성전 안이라고 말하는 영역은 지성소나 성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이방인의 뜰 정도로 보면 무관할 것 같습니다. 원래는 이곳도 성전의 영역에 속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방인의 뜰까지 들어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이 뜰 안으로 더 들어 갈 수 없기에 이곳에서 머물며 기도하던 장소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당장 장사하는 사람들이 차지해서 기도하는 것이 방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16절을 보면, 이곳이 또한 다른 곳을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다 보니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지나다녔음을 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수선 한 곳으로 변하였겠습니까? 성전으로서의 원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고 주님은 가장 먼저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쫓아 내십니다. 환전꾼의 상과 비둘기 하는 자들의 의자를 엎으십니다. 이들을 꼭 장사하는 사람으로 보아 교회에서 돈 거래나 장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그런 주장만 펼쳐서는 안됩니다. 좀 넓게 보면 교회로 밀려 들어온 세상의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을 과감히 내쫓아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으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이 교회 내에 있는지를 늘 점검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특별히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내가 받은 구원조차도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주장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성도라도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그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리를 들으면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늘 나의 구원에 대해 의심해야 되고, 내가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불안해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구원의 확신이 위협받는다면 이 땅에서 평강은 언제 맛볼 수 있습니까? 늘 불안해 하는 신앙으로 구원의 감격을 맛보았다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간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보혈은 그렇게 불안전한 구원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 내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로 8: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하면 불신할 수 있지만 성령이 증언함으로 거짓이 될 수 없음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령이 흔들림이 없는 구원의 확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강하면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다는 확신을 로8:38-39절은 소개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13-14또한 선포합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인침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 받은 사실을 누구도(사탄) 마음대로 열어서 변경할 수 없도록 철저히 도장으로 봉해 두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나의 구원의 확신은 말씀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자랄수록 더욱 확실해 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내 구원의 확신을 흔드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6:4-6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타락한 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구원을 경험한 성도가 타락한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여기서 살펴야 할 것은 한번맛보고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더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6:1),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라”(6:2)는 말입니다. 앞 뒤 문맥을 보면 신앙생활을 한번 맛만 보고 구원의 확신까지 나아가지 못함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타락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고 한번 맛은 보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탄이 시험했거나, 시련이나 고통을 참아 내지 못하거나 유혹에 넘어갔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방법 또한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2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온전해진다는 의미는 율법의 행함이 아니라 사랑의 행함이 있을 때 내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확실해 진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의 행함이 있는 믿음은 구원 받기 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고 난 뒤 그 믿음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의 확신이 흔들린다면 하나님은 완전하지 못한 구원계획을 세우신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피는 너무 값 없는 것이 됩니다.

 

게다가 구원의 확신을 주는 성령님은 사람들의 소리에 무너져 내린다면 너무 무능력한 성령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는 것이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의 구원의 확신을 흔드는 사람의 소리가 있습니다. 이 소리가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내로 들어오면 과감하게 청소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