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11): 살아나셨습니다 

16: 1-6; 고전 15:14-17

 


기독교가 세상 종교에 대해 유일하게 자랑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바로 부활입니다. 세상에서 부활을 가르치는 종교는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믿음의 대상이 직접 죽고 살아나셨기에 부활을 믿지는 않습니다. 기독교는 막연한 개념만을 제시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실제 일어난 사건이며 주님이 살아나신 것을 목격한 증인들에 의해 세워진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어떤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처럼 너무 상세히 현장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확정해 주는 것이 2절의 안식 후 첫 날이라는 구절입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시간상으로 금,,일 삼 일이  흘렀다는 의미입니다. 삼 일은 한 사람이 죽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1절에 세 명의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건을 확정하는 증인 수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그 증인들이 남성이 아닌 여인들이라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런 약점을 알고도 여인들을 증인으로 등장시킴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신빙성을 더해 줍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뿐만 아니라 나중에 더 많은 남성 증인들이 추가 되기에 그런 주장은 힘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예가 바로 고전15:5-6로 제자들과 일시에 500명의 형제들에게 보였다고 말합니다.

 

, 그들 중에는 대다수가 바울이 서신을 쓰고 있는 중에도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바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당장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거짓말이 바로 드러날 상황에서 바울이 그런 편지를 보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게다가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가복음에서는 세 번이나 직접 죽으심과 사흘 뒤에 부활하실 것을 확실하게 언급하셨기 때문입니다(8:31, 9:31, 10:34).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냐 거짓이냐의 세상 사람들이 일으키는 논쟁에 빠진다면 우리가 믿는 신앙의 본질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관심은 부활이 왜 나의 신앙의 핵심이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고전15:14의 바울 사도의 말을 인용한다면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하는 것이나 믿는 것이 모두 헛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구원의 본질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존재할 가치도 없고 존재하지도 못한다는 뜻입니다.

 

왜 부활이 나의 구원에 그렇게도 중요할까요? 고전 15:17절 하반절이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부활은 죄 용서함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죄 용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대신 죽음으로 해결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부활이 또 필요할까요? 예수님의 죽으심은 분명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것으로 마무리된 것 아닙니까? 다르게 말하면 예수의 죽음만 믿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왜 부활을 함께 믿어야만 구원을 얻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마무리는 증서나 증명이(졸업)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죽음이 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죽음이라는 확증도 없는데 섣불리 믿을 수는 없습니다. 물건을 사거나 돈을 빌린 후 갚을 때 영수증 받지 않아 오리발 내미는 사람들 많습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거래를 하면서 계약서로 서로 거래가 성사 되었음을 증거로 남겨 둡니다.

 

예수 믿고 죽었는데 네 죄가 여전히 남았다는 소리 들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아니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고 그것만 믿으면 내 죄 용서 해준다고 해서 잘 믿다 왔는데요라고 소리칠 것입니까?  들려오는 소리는 그런데 네 이름이 생명책에 없네라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만 믿고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나의 구원에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부활은 예수가 나의 죄를 위해 죽고 하나님이 확실히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증명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부활을 믿지 않고 내가 죽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내 죄를 위해 대신 죽었다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열어 확인했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죽은 수 많은 위대한 영웅들이 정말 다른 사람들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살아나서 전해주었습니까?

 

이 세상에는 예수 외에는 다시 살아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죽음은 모두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 나의 죄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메시야다. 나를 믿으면 영생한다고 말하는 세상 종교들이 모두 거짓이고, 속임수이고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 속임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도 복 받지 못하게 하지만 죽어서도 골치 아픕니다. 지옥에서 가장 많이 들려오는 소리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 동네 오셨을 때 한 번 가볼 껄, 회개하라고 말씀하실 때 나를 한 번 살펴 볼 껄, 친구가 복음전해 줄 때 믿을 껄. 전부 후회 하는 소리뿐입니다.    

 

6:23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의미는 사람은 죄 때문에 죽고, 다시 영원히 망하기에 누구도 다시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으로 온 예수만이 죄가 없기에 사람의 죄를 위해 죽을 수 있고, 사망을 이기고 살 수 있고, 부활로 대신 죽은 그 사람들의 죄도 용서 받았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유일하기에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고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르러 영원히 하나님과 사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에게 부활이 있는 이유는 사망을 이긴 주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속에 심어져 있기에 주님 다시 오실 때 죄 없는 의의 모습으로 살아나 영원한 심판을 면하게 됩니다. 

 

부활은 또한 예수에 대해 믿었던 모든 것이 헛것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해줄 것입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이 땅에서 일으키신 기적도 믿어야 되지만 우리는 로 10:9-10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만 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술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통성기도 대신 사도신경(PPT준비)을 다 함께 하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외아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