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10):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까지 참고 기다리며 섬기십니다
막10:35-45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분들이 세례를 받아 너무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분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을 온 교회가 축하합니다. 앞으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겨 나갈 줄 믿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되는 가를 주님이 직접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먼저 세배대의 아들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아와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요구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울 때 높은 자리 한 자리를 달라는
요청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님의 총애를 받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청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앞33-34절에서 주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사로잡혀 죽고 살아날 것을 말하자마자 이 요청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 한 번 만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두 번이나(8:31; 9:31) 앞에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철부지 같고, 믿음도 없고,
미성숙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에서부터 정말 믿음이
신실한 분들까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 없는
모습을 본다면 믿음이 강한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힘든 것 압니다. 말이 안 통하고 내 신앙과 참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향해 다들 각자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주님 모습만 따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35절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구하는 무엇이든지 허락하여 주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벌써 감이 잡힙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36절에서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말하며 요청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여기까지는 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요청이 맞는 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7절에서 제자들의 연역함이 드러납니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합니다. 주님과 같이 다녔는데도 미성숙하고 전혀 믿음이라고는 없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꾸짖지 아니하시고 대화를 진행해 갑니다. 더 나아가 잘못되고 연역한 믿음을 고쳐 주십니다.
그들이 요청한 것은 십자가에 주님과 동참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당시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제자들 중에 제일 먼저 순교자가 됩니다. 요한은 가장 어린 제자였지만 위기에
빠진 초대교회에 종말에 관한 하늘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 핍박 가운데 교회를 인내하도록 돕는 귀한 역할을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가 따라야
할 섬김은 세상과는 대조됨을 42절에서 명백히 합니다. 교회는, 성도는 주님이 가르친 것을 따라야 합니다. 처음
믿는 연약한 나를 품어 준 성도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 눈에 약한 분이 보이면 인내하며
참아주었던 주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대하기 힘들다고 약한 사람들을 외면해 버리고, 서로 이해 되고, 마음 맞는
사람들만 모인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도 시간이 가면 그들 가운데도 약한 사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또 어쩌렵니까? 주님은 교회의 속성을 너무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 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가르치는 섬김의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45절에서 어리고 약한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것만큼 귀한
섬김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섬기려 왔고 그 섬김의 마지막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희생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 내 마음에 안 들어, 신앙생활 같이 할 수 없어 보이는 성도를 볼 때 자기 희생을 감수하며 그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품고 이끌지 않는 성도는 주님을 따르지
않는 제자입니다. 심지어 딛3:10은 이단들도 한 두 번 권고 후 멀리하라고
합니다. 먼저 말씀으로 권고하고 시간을 주어 돌아오기를 청해야 합니다.
왜냐면 돌아오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벧후 3:9절에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왜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이 세상의 악을 쓸어 벌어 버리지 않고 심판을 연기하는 이유입니다. 항상 약한 성도를 구원에
이르도록 품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보인 이것을 섬김의 자리에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을 훈련할 때 보여주신 섬김이야말로 진정한 섬김이기에 제자들은
나중 그것을 철저히 깨닫고 따라 갔고 교회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약한 분들이 있을 때 그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참고 기다려 주는 섬김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